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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2. 나도 검기 때문이지 2

Joyfule 2009. 1. 15. 02:03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2. 나도 검기 때문이지 2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몽고메리 신문)에 실린  메이컴의 핀치 라는 표제를 단 만평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맨발에 짧은 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책상에 쇠사슬로 묶인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석판에 쓰고 있고, 
    그 옆에는 천박한 여자가 야유를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저건 칭찬하는 거야, 스카웃. 
    아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거든.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으응?   요즈음 들어 젬 오빠는 매사에 아는 척을 하려고 들었다.   
    오, 스카웃, 
    그건 국가의 조세제도를 재편성하는 거와 같은 거야. 
    그런 일들은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힘들고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오, 혼자 있게 해줘, 스카웃.
     신문을 읽고 있는 중이라구.   
    오빠의 소원대로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콩깍지를 까고 있던 칼퍼니아 아줌마는 나를 보자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이번 일요일에 교회 갈 때 내가 도울 일 없냐?    
    네, 아빠가 헌금 낼 돈을 주시고 가셨어요.  
    칼퍼니아 아줌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칼 아줌마,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교회에서 얌전하고 예절바르게 행동한 거 아시죠?   
    지금 칼퍼니아 아줌마는 오래 전 아버지도, 
    교회 선생님도 없었던 비오는 일요일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날 우리는 보일러실에서 성경놀이를 한답시고
     유니스 앤 심프슨을 의자에 묶어놓았다. 
    그애의 역할은 포로인 사드라쉬였다. 
    그런데 예배시작을 알리자 우리는 그애의 존재를 깜빡 잊고는 
    교회 이층으로 떼지어 올라가 조용히 설교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아래층에서 라디에이터 관이 터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그곳을 조사해보고 결국 유니스 앤을 꺼내주자 
    풀려난 그녀는 더이상 사드라쉬 역은 하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 
    그일에 대해 젬 오빠는 그 유니스 앤의 신앙심이 투철했다면 
    불에 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어찌됐건 보일러실은 몹시 더웠던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아빠가 우리만을 남겨두고 가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교회 선생님께 확실히 부탁하셨는데, 
    이번엔 아무 말씀도 안 하셨거든. 잊으셨나봐.   
    칼퍼니아 아줌마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갑자기 미소지었다.   
    너희들 내일 나와 함께 우리 교회에 가는 것이 어떨까?    
    정말?    
    그래, 어떻게 생각하지?   
    칼퍼니아 아줌마가 싱긋이 웃었다.  
    그 토요일 저녁 아줌마는 전에 없이 내 몸 전체에 비누칠을 두 번이나 해주었고, 
    욕조에서 새 물을 퍼내어 헹궈주었다. 
    머리를 세면대에 숙이게 하고는 
    옥타곤 비누와 카스틸 비누를 번갈아 칠해서 감겨주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젬 오빠를 신용해왔으면서도 
    그날 만큼은 오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 오빠를 화나게 했다.   
    이 집에서 혼자 목욕 못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칼퍼니아 아줌마는 옷가지 더미에 묻혀 있었다. 
    어젯밤 그녀는 부엌에 있는 간이 침대에서 잤던 것이다. 
    그날 아침 집 안은 온통 우리들의 일요일 복장이 널려 있었다. 
    내가 입고 갈 드레스는 풀을 너무 매겨서, 앉으면 텐트 모양이 되곤 했다. 
    아줌마는 페티코트를 입힌 후 허리엔 분홍색 장식띠까지 단단히 매주었다. 
    게다가 에나멜 구두는 비스킷으로 닦아서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였다.   
    우린 마치 마디 그래스(참회의 화요일로 사육제 마지막날의 카니발)라도 가는 것 같은데요? 
    왜 그러는 거죠, 칼 아줌마?   
    오빠가 물었다.   
    너희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소리를 누구에게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녀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젬! 그 양복에 그 넥타이는 절대 안 돼, 그건 초록색이야.    
    이게 어때서요?    
    양복은 푸른색인데 구분 못하겠어?    
    히히, 오빠는 색맹이래요.   
    내가 떠들어댔다. 
    오빠는 화가 나서 얼굴을 붉혔다. 
    그때 칼퍼니아 아줌마가 말했다.   
    자, 이젠 다 됐다. 
    미소를 머금고 퍼스트 퍼처스 교회에 가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