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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3. 내 마음속의 카스트 제도 4.

Joyfule 2009. 1. 23. 01:4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3. 내 마음속의 카스트 제도  4.   
    너희들 사촌이 이 책을 쓰셨단다. 
    아주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셨지. 
    젬 오빠가 조그만 책을 검사하듯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분이 그렇게 오랫동안 감금되었던 사촌 조슈아인가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거요? 그분이 대학에서 술마시며 떠들고 다녔다고 아빠가 얘기해 주셨는데요.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급사일 뿐이라며 
    학장님을 산발총으로 쏘기까지 했지만 불발로 터져버렸다고 하셨어요. 
    그분을 꺼내기 위해 오백 달러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고요. 
     알렉산드라 고모는 황새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알았다. 우리 이점에 대해 생각 좀 해봐야겠구나.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책을 빌리러 오빠 방에 가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노크하고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오빠 침대에 앉아 우리를 찬찬히 바라보고는 싱긋 웃었다.
     어 ,,, 으흠. 
    얘기를 꺼내시려는 듯 했다. 
    아버지의 쉰 목소리에는 잡음이 섞여나왔고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외모로 보아서는 그다지 늙어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냥 말씀하세요. 저희가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나요? 
    아버지는 무척 난감해 하며 쩔쩔맸다.
    아니다. 그저 좀 설명해줄 것이 있어서 ,,, 
    너희들 고모께서 당부를 했거든 ,,, 
    젬 너는 핀치 가문의 후손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여태 얘기하셨던 거잖아요. 
    눈끝으로 쳐다보는 젬 오빠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가 무릎에 양손을 포개어 올려놓았다.
    난 너희들에게 삶의 실상을 말해주려는 거다. 
    아버지가 갑자기 진지한 태도로 바꿨다. 
    억양과 감정이 배제된 변호사의 목소리였다.
    너희 고모는 너와 진 루이스가 아무렇게나 찍어내어진 것이 아닌 
    오랜 전통의 점잖은 가문 출신이라는 걸 마음속에 새겨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단다. 
    잠깐 말을 멈춘 아버지는 내 다리에서 교묘히 움직이는 빨간 풍뎅이를 바라보았다.
    명문 집안으로 ,,, . 
    내가 풍뎅이를 털어버릴 때에도 아버지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답변을 무시한 채 쉬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
    고모는 너희들이 어린 숙녀와 신사로 행동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했고,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온 그 가문이란 이 메이컴 안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너희들이 알고 있기를 바라신단다. 
    그러나 지금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처신을 바꾸기 바란다. 
    아버지는 단숨에 결론을 지어 얘기를 끝마쳤다.
    오빠와 나는 얻어맞은 듯 얼떨떨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게 시선을 옮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즉시 젬 오빠와 거울로 가서 빗을 집어 이빨에 대고 드르럭거렸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겠니? 
    아버지의 퉁명스러운 핀잔이 나를 저지했다. 
    나는 이빨 중간 쯤에 멈춰진 빗을 그대로 집어던졌다. 
    이유없이 울고 싶었다. 그리곤 멈출 수 없었다. 
    이 순간만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충고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알렉산드라 고모가 선동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젬 오빠를 보았다. 
    오빠도 나와 닮은 꼴의 고립된 웅덩이에 빠져 있었다. 
    머리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피해갈 곳도 없었지만 난 돌아서서 걷다가 아버지의 조끼에 부딪혔다. 
    난 거기에 머리를 묻고 푸른빛 옷감 저 안쪽에서 
    계속되는 작은 내장으로부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머니시계의 째깍소리, 풀먹인 셔츠의 엷은 구김소리와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뱃속에서 구르륵 소리가 들려요. 
    나도 안다. 
    사이다라도 좀 드셔야겠어요. 
    그래야지. 
    아빠? 그런 쓸데없는 것들이 일을 좀 다르게 만들어주나요? 
    제 말은 아빠가 ,,, . 
    아버지의 손길이 내 뒷덜미에 느껴졌다.
    걱정하지 말아라. 아직 걱정할 때가 아니지. 
    그것으로 난 아버지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리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난 머리를 들었다.
    아빤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길 바라세요? 
    전 외울 수도 없지만 그 핀치 가문이면 해야 하는 ,,, . 
    잊어버려라, 나도 너희들이 기억하길 원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방을 나섰고 문을 닫았다. 
    거의 쾅하고 닫혀지려는 순간에 문고리를 잡아 살짝 놓았다. 
    오빠와 내가 닫힌 문을 응시하고 있을 때 
    다시 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눈썹이 올라가고 안경은 흘러내려온 아버지의 얼굴이 ,,, .
    내가 점점 조슈아 사촌을 닮아가는 것 같지? 
    나도 결국 오백 달러를 가족들에게 부담시키게 될까? 
    나는 아버지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자였다. 
    그런 일은 여자들이 맡아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