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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3. 내 마음속의 카스트 제도1.

Joyfule 2009. 1. 20. 08:1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3. 내 마음속의 카스트 제도1.   
    칼퍼니아, 이 가방 내 침실로 갖다놔요. 
    알렉산드라 고모의 첫 번째 주문이었다.
    진 루이스, 머리는 좀 그만 긁도록 하지. 
    두 번째 주문이었다.
    칼퍼니아 아줌마는 고모의 무거운 여행가방을 집어들고 문을 열었다.
    내가 할게요. 
    젬 오빠가 받아 들었다. 
    그 여행가방이 침실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음이 들려왔다.
    잠깐 다니러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핀치 영토에 살고 있는 알렉산드라 고모의 방문은 참 드문 일이었고 
    고모는 주 전체를 고루 여행하곤 했었다. 
    한때는 고모도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밝은 녹색의 스퀘어 뷕 자동차와 
    흑인 운전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것을 볼 수가 없었다.
    너희 아버지가 말씀 안 하시던? 
    오빠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잊으셨나보구나, 아직 안 돌아오셨니? 
    네, 보통 오후 늦게 돌아오세요. 
    오빠가 말했다.
    그래? 너희 아버지와 상의해본 결과 
    내가 너희들과 당분간 함께 있어야 할 시기라고 결정을 했단다. 
    메이컴에서의  당분간 이라는 의미는 사흘에서 삼십 년까지를 모두 내포하는 말이었다. 
    젬 오빠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젬은 자라고 있고, 너도 마찬가지야. 
    고모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서 이집에 여자가 있어서 너희들을 돌봐야 한다고 결정을 했단다. 
    난 오래있진 않을 거야, 
    진 루이스. 네가 사내아이와 옷에 신경을 쓰게 될 때까지만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몇 가지 할 말이 있었다. 
    칼 아줌마도 여자이며 내가 남자아이에 흥미를 느끼려면 몇 년은 더 지나야 할 테고 
    더욱이 옷에 관해서라면 나는 결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지미 고모부도 오시나요? 
    젬 오빠가 질문했다.
    아니, 그곳에 남아 집을 돌보실 거야.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말했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 
    이 질문은 그다지 재치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고모부는 말수가 적었으므로 고모부는 있으나 없으나 별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나의 질문을 못 들은 채 그냥 넘겼다.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실은 고모께 무슨 말을 할까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젠가 있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모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어떠니, 진 루이스? 
    좋아요, 고모. 고모는요? 
    응, 좋다. 무얼하며 지내지?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네. 
    너 친구있지? 
    네. 
    친구와는 뭘하고 지내지? 
    아무 것두요. 
    고모가 나를 엄청나게 답답해 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 내가 좀 둔한 것 같다고 아버지께 전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고모의 느닷없는 방문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난 고모에게 따져 물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요일이었던 그날 알렉산드라 고모는 왠지 조바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는 뚱뚱한 편은 아니었지만 날씬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적당한 코르셋을 선택해서 가슴높이까지 끌어올리고 
    허리는 핀으로 있는 대로 조여 고정시킨 덕분에
    히프에서부터는 나팔꽃처럼 퍼져 있었다. 
    그 모습은 모래시계를 연상시켰으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장관이었다.
    오후의 나머지 시간은 친척이 방문했을 때 특유의 
    조용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자동차 소리로 그 분위기는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몽고메리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젬 오빠는 위엄과 품위도 잊은 채 나와 함께 뛰어나갔다. 
    그리고 아빠의 서류가방과 여행가방을 움켜잡았다. 
    나는 아버지의 팔에 뛰어올라 일상적인 키스를 받으며 말했다.
    책 사오셨어요? 고모 오셨어요. 
    아버지는 두 가지 말에 모두 긍정으로 답하셨다.
    고모와 함께 지내는 거 좋지? 
    나는 아주 좋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