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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4.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야 4.

Joyfule 2009. 1. 27. 01:2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4.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야 4.    
    이곳엔 어떻게 왔니? 
    오빠가 물었다.
    그는 어머니의 지갑에서 십삼 달러를 꺼내 
    메리디안에서 아홉시 차를 타고 메이컴 행 터미널에 내렸고, 
    메이컴까지 십사 마일 중 십에서 십일 마일 정도는 걸었다고 했다. 
    그를 찾으려는 경찰관을 피해야 했으므로 
    간선도로를 빠져나와 관목숲을 걷거나 목화 마차 뒤에 매달려 왔다는 것이었다.
    딜은 두 시간 가량 우리집 침대 밑에 숨어 있었으며 
    식당에서 들리는 소리 탓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오빠와 내가 이 방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둘이 싸울 때는 훨씬 큰 오빠를 내 대신 때려줄까 별렀지만, 
    그때 마침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딜은 지쳐 있었고, 쳐다보기 힘들 만큼 지저분하고 형편없었다.
    그분들은 네가 여기 있는 걸 모르시겠지? 
    널 찾고 계신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오빠가 말했다.
    메리디안의 모든 영화관을 뒤지고 있을 걸 생각하면 ,,, . 
    딜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넌 어머니께 이곳에 있다는 걸 알려드려야 해. 
    오빠가 말했다.
    딜이 눈을 끔뻑이며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방바닥을 골똘히 내려다보더니 복도로 나가 
    우리 어린시절의 약속을 깨뜨렸다.
    아빠, 이곳에 잠깐 올라오실 수 있으세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먼지투성이의 딜은 하얗게 질렸다. 
    나는 오빠의 행동에 역겨워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미 문 앞에 서있었다.
    아버지는 방 한가운데로 걸어오더니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딜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괜찮아, 딜. 무엇이든 몇 가지만 물어보실 거야. 
    딜이 나를 쳐다보았다.
    괜찮대두, 아빤 널 괴롭히지 않아, 무서워할 필요도 없구. 
    난 겁나지 않아 ,,, . 
    딜이 중얼거렸다.
    그저 배만 고프겠지, 그렇지?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건조한 쾌활함이 담겨 있었다.
    스카웃, 식었지만 옥수수빵을 좀 가져다주어야겠다. 
    우선 이 녀석의 허기를 해결해놓고 나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핀치 아저씨, 라이첼 이모껜 말씀드리지 말아주세요. 
    제발 절 돌려보내지 마세요. 그럼 또 도망쳐버릴 거예요. 
    아니다, 딜. 누구도 널 보내지 않는다, 
    그 어디로도. 잠시 후 침대로 가는 것 빼놓고는 말이다, 알겠지? 
    난 그저 네 이모께 가서 네가 여기 있다는 것만 알리고, 
    우리와 함께 있어도 될지 알아보려는 거야. 괜찮겠지, 응? 
    그리고 얼굴의 그 흙먼지는 제자리로 좀 보내줘야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토양의 침식이 심각하니까. 
    딜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빤 네 기분을 바꾸시려는 것뿐이야. 목욕을 좀 하라는 말씀이셔.
    거봐, 아빤 널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했지? 
    오빠는 마치 배반자인 양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딜, 난 알려야만 했어. 엄마 몰래 삼백 마일이나 도망쳐올 수는 없는 거니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버려두었다. 딜은 먹고 또 먹었다. 
    차표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려서 지난 밤부터 굶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 해본 경험을 살려 기차에 올라 
    낯익은 차장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아이들의 무전여행에 만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돈이 떨어졌을 때는 저녁 값을 빌려주고 
    기차종점에서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딜은 내가 준 것을 다 먹고도 돼지고기 캔과 찬장 속의 통조림을 집어 들었다. 
    그때 라이첼 아줌마의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오, 하느님 맙소사. 
    아줌마가 불쑥 들어오자 딜은 토끼처럼 떨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부모들 걱정 따윈 아무 것도 아니지. 
    내일 당장 집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기다려. 
    라이첼 이모의 꾸지람을 꿋꿋하게 듣고 난 딜은
     한참 있다가 미소지으며 능청을 떨었다.
    그래도 해리스는 이모의 조카인걸요. 
    하룻밤만 재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오랫동안 포옹을 했다.
    아버지가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얼굴을 문질렀다.
    네 아빤 피곤하시다. 
    알렉산드라 고모가 말했다. 
    몇 시간 만에 입을 떼는 듯했고, 옆에 계속 있었는 데도 
    난 갑작스런 사태에 멍청해져 있어 못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