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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4.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야 5

Joyfule 2009. 1. 28. 09:5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4.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들이야 5.   
    너희들도 이제 자야지. 
    우리가 식당을 떠날 때까지도 아버지는 여전히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강간에도 폭동에 가출까지.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두 시간 후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태가 생각보다 잘 풀려나가는 듯하자 
    딜과 나는 오빠에게 다시 친절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딜은 오빠의 침대에서 함께 지내야 할 처지여서 그러는 편이 나았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책을 읽다가 나는 
    갑자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피곤에 휩싸였다. 
    딜과 오빠는 잠잠했고, 
    내 방 스탠드를 껐는데도 오빠방으로부터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울어지는 달빛 속에서 방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조금만 비켜, 스카웃. 
    오빠에게 너무 화내지 마.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일 테니까. 
    내가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냥 네 옆에서 자고 싶어 온 거야, 너 깼니? 
    나는 잠이 달아나버렸지만 졸린 듯 물었다.
    왜 그랬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왜 도망쳐 나왔냐구? 새아빠가 정말로 널 그렇게 미워했니? 
    아니 ,,, . 
    편지에 배 만든다고 하더니 만들었니? 
    말만 하구선 아무 것도 안 했어. 
    나는 팔꿈치를 괴고 옆으로 누웠다. 딜의 윤곽이 보였다.
    그건 도망칠 이유가 못돼. 약속한 것을 못 지킬 수도 있다구 ,,, . 
    그런 건 아니야. 그저 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지. 
    그런 일로 가출을 한다는 건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어떻게 대하는데? 
    응, 언제나 어디로들 나가버리구, 집에 있다 해도 자기들끼리만 지내. 
    거기서 무얼 하는데? 
    아무 것두, 그냥 책만 읽어. 그러면서도 내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나는 베개를 침대머리에 밀고 앉았다.
    널 이걸 알아야 해. 
    난 오늘밤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도망치고 싶었어 ,,, 
    부모님이 항상 네 곁에 있다 해도 넌 역시 끔찍해 할 거야, 딜 ,,, . 
    딜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잘 자. 우리 아빠는 하루종일, 어떤 때는 새벽까지도 입법부에 계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네 부모가 항상 네 곁에 있는 것 또한 원치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넌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거든. 
    그건 그렇지 않아. 
    딜이 설명하는 동안 난 오빠가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걱정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나라는 존재의 도움과 조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떨까. 
    칼퍼니아 아줌마까지도 내가 없으면 잘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할 것이었다.
    딜,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네 부모는 너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야. 
    틀림없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실 거야. 내가 말해볼까? 
    딜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분들에겐 내가 없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거야. 
    나는 어떤 것으로도 그분들을 도울 수가 없어. 
    내 도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구.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잔뜩 사주곤  이걸 사줬으니 이젠 갖고 가서 놀아라. 
    방안 가득 장난감이 있잖니? 책도 있고  이런 식이지. 
    딜의 목소리는 자못 심각한 투로 바뀌어 있었다.
    넌 사내아이가 아니라서 몰라. 
    사내아인 나가서 야구든 뭐든 하고 노는 거야. 
    집 안에 처박혀 눈치만 보진 않아. 
    딜의 목소리가 본래의 음성을 찾았다.
    어휴, 그들은 그저 키스하고 잘 자라, 잘잤니, 잘가,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스카웃, 우리 애기 하나 데려오자. 
    어디서? 
    딜은 보트를 가진 남자가 안개 낀 섬으로 노를 저어가서 
    아가를 데려온다고 알고 있었다. 
    한 명을 신청하면 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야, 고모가 그러시는데 하느님이 아기를 
    굴뚝으로 떨어뜨려주시는 거래. 
    그건 내가 상상했던 것이기도 하구. 
    이 말을 해줄 때의 고모는 더듬거리는 어투였다. 
    지금까지 그러한 고모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아니야, 아이들은 각자 얻는 거다. 
    어떤 사람은 아기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숨을 불어넣어 준다는 거야 ,,, . 
    그러고 나서 딜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름다운 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 책을 빌려 읽기도 좋아했지만 자신이 발명한 마술을 더 좋아했다.
    그는 덧셈 뺄셈을 번개치듯 해치울 수도 있었지만, 
    아가가 고요히 잠들어 있고 아침햇살을 받고 피어날 
    순백의 백합을 갈망하는 그 자신의 여명을 더 좋아했다. 
    그는 입속 말로 웅얼거리며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었고 나도 그랬다. 
    그 순간 안개섬의 정적 속에 갈색 문이 있는 
    슬프디 슬픈 회색집의 빛바랜 영상이 떠올랐다.
    딜! 
    으음? 
    넌 부 래들리가 왜 도망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딜은 길게 숨을 내쉬며 돌아누웠다.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일 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