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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2.

Joyfule 2009. 1. 31. 02:43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2.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계단 맨 아래로 물러서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서자,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오빠가 소리쳤다.
    아버지, 전화예요. 
    사람들이 조금 움찔하더니 흩어졌다. 
    그들은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상인과 마을 농부들이었다. 
    레이놀드 선생님과 에이베리 아저씨도 한쪽 구석을 서 있었다. 
    알았다, 젬. 
    아버지가 외치자, 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가 거실 스위치를 올렸다. 
    오빠가 하얗게 질린 채 서 있었는데 
    창문에 비벼댔던 코만이 발갛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니, 왜들 이렇게 컴컴한 데 앉아 있는 거지? 
    오빠는 의자로 가서 저녁신문을 집어올리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 생애의 모든 위기는 (모빌레지스터)나 (버밍햄 뉴스), 
    (몽고메리 신문) 등에 펼쳐진 객관적인 평가에 귀결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저 사람들 아빠를 따라온 거죠, 그렇죠? 
    오빠가 다그치듯 물었다.
    아빠를 해치려고 했어요. 
    아버지가 신문을 내려놓고 쳐다보았다.
    이런 판국에 뭘 읽으시려는 거예요? 
    아니다, 젬. 그들은 내 친구들이야. 
    아니에요, 갱들 같았어요, 그렇죠? 
    오빠는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웃음으로 넘기시려 했지만 
    이미 굳어진 표정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아니야, 메이컴에서 폭도란 있을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난 메이컴에 갱이 있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이 없어. 
    쿠 클룩스가 카톨릭 신자를 해친 적이 있잖아요. 
    메이컴에 카톨릭 신자는 없다. 넌 뭔가 혼동하고 있는 거야. 
    1920년이라면 클랜이 있었지만 그건 정치조직의 하나였고, 
    누구에게 겁주려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밤이었지. 
    그 클랜이 포목상을 하는 유태인 샘 레비의 집에서 시비를 벌였는데, 
    샘이 현관에 선 채 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그 하얀 천은 어디서 생겼겠느냐며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거라고 망신주는 바람에 그들 자존심이 크게 상했단다. 
    레비 가문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집안이고 
    최고의 지성으로 메이컴에서만 오 대째 살아오고 있었다.
    쿠 클룩스는 사라졌다. 다신 나타나지도 않을 테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딜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고모에게 하는 말을 무심코 들었다.
      ,,, 누구에게나 남부의 여성상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 가며 
    우아한 허구를 지켜나가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버지의 어투로 보아 두 사람이 또 다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보였다.
    오빠는 침대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두 분이 그 일에 대해 말씀 나누시는 거야? 
    내가 물었다.
    대충 그래, 고모는 톰 로빈슨에 관한 한 아빠에게 지지 않을 거야. 
    아빠가 우리 가문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시니까 ,,, 
    스카웃, 난 두렵다. 
    뭐가 두려운데? 
    아빠가 걱정이야. 누군가 아빠를 해치려고 할 거야. 
    오빠는 말을 하다가 괜시리 멈춰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궁금하게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리곤 한다는 소리가 혼자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주일학교 수업을 마치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 
    휴식을 취하며 또다른 사람들과 마당에 서 계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헥 테이트 씨도 있었다. 
    난 그가 성령이라도 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지금까지 교회에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메이컴트리뷴)지 외엔 어떤 조직도 상대하지 않는 
    언더우드 씨까지도 거기에 있었다.
    그 신문사의 유일한 소유주인 그는 편집인인 동시에 발행인이었다. 
    그는 주조활자와 함께 살다시피 하다가는 다량의 체리와인을 마시며 활기를 되찾곤 했다. 
    직접 뉴스거리를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에게 뉴스를 제공해주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메이컴튜리뷴)의 모든 편집은 
    언더우드의 머리에서 만들어져 활자화되는 거라고들 했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일까.
    나는 교회문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톰 로빈슨이 메이컴 감옥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단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내게 말했지만 
    그것은 아버지 자신에게 확인시키려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