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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4.

Joyfule 2009. 2. 3. 01:25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4.    
    오빠가 은행문 안을 들여다보며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문은 잠겨 있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위로 올라가보자, 
    언더우드 아저씨를 찾아가셨는지도 모르니까. 
    언더우드 씨는 (메이컴트리뷴) 사무실에서 
    일만 할 뿐 아니라 숙식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무실은 교도소나 군청에 관한 뉴스거리를 
    위층 창문에서 내려다보아도 간단히 취재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무실 건물은 광장의 북서쪽 코너에 있었으므로 교도소를 지나쳐가야 했다.
    메이컴 교도소는 군내의 건물 중 가장 비밀스럽고 으스스한 곳이었다. 
    아버지는 그 건물 양식이 마치 사촌 조슈아 세인트 클레어가 
    디자인했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하곤 했다. 
    그 건축양식은 누군가의 꿈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건물의 지붕은 경사진 모양새였고, 
    직사각형의 주변 가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서 있었다. 
    넓은 감방 하나와 높은 감방 두 개가 있는 
    고딕식 축소형 건물로 총안이 있는 흉벽과 위태로운 버팀목, 
    더욱이 두 개의 검붉은 색 외벽과 굵은 쇠기둥으로 된 철책은 
    교회의 창문모양과 함께 더욱 으스스하게 보였다. 
    그 건물은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틴데일 철공소와 (메이컴트리뷴) 
    사무실 사이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그 교도소는 메이컴의 건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며 
    비방하는 사람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변소라고 떠들어댔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권위있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을 가득 채운 흑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정신이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보도를 따라 올라가자 멀리서 외로운 불빛 한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상한데, 교도소 밖에는 전깃불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오빠가 말했다.
    불빛이 문 밖에 있는 것 같아. 
    딜이 말했다.
    전깃줄이 이층 창문 철책 사이로 나와 아래로 길게 내려져 있었고, 
    알전구의 강한 불빛 아래 아버지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사무실 의자 하나를 빼내와 신문을 읽고 있었다. 
    멍청한 날파리들이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뛰어가려 하자 오빠가 붙잡았다.
    가지마,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아빠한테 아무 일도 없으면 됐어. 집으로 가자, 
    난 아빠가 어디 계신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우리가 광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을 때 
    먼지를 뒤집어 쓴 네 대의 자동차가 줄지어 천천히 간선도로에서 진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광장을 휘돌은 자동차들은 은행 건물을 지나 교도소 앞에 멈추었다.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신문에서 눈을 떼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문을 접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모자를 뒤로 젖혔다. 
    그들이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이리 와봐. 
    오빠가 조그맣게 말했다.
    우리는 광장을 가로질러 힘껏 뛰어 수퍼마켓 문에 몸을 숨겼다. 
    오빠가 보도 쪽을 엿보았다.
    좀더 가까이 가보자. 
    다시 틴데일 철공소까지 뛰었다. 
    그곳은 안전하기도 하고 가까이 볼 수도 있는 곳이었다. 
    하나, 둘 ,,, 남자들이 차에서 나왔다.
    건장한 몸집들이 감옥을 향해 움직였고 
    그림자들은 불빛 아래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남자들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았다.
    그자가 이 안에 있겠죠, 핀치 변호사님. 
    한 남자가 말했다.
    그렇소, 잠들어 있으니 깨우지 마시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음성을 낮춰 속삭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한 편의 웃지 못할 
    역겨운 코미디 장면을 기억해내곤 한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아실 거 아닙니까? 
    그 문에서 비켜서세요. 변호사님. 
    또 다른 남자가 말했다.
    돌아가시오, 월터. 헥 보안관이 이 근처에 있소. 
    아버지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어림없어요. 헥 일당은 숲속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아침까지는 안 나올 겁니다. 
    또 다른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래요? 왜 그렇지? 
    도요새 사냥에 정신을 몽땅 뺏겨버렸을 겁니다. 
    자, 이제 어떻습니까, 변호사님? 
    그래도 난 믿지 않아요. 
    당신들한테는 그것이 사태를 바꿀 수도 있겠군, 그렇소? 
    아버지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그렇지요. 
    낮은 음성의 그림자가 말했다.
    당신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오늘 난 이 질문을 두 번째 듣게 되었다. 
    그건 누군가 순식간에 아버지를 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난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불빛 속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오빠가 소리를 지르며 붙잡으려 했지만 
    난 이미 그들을 훨씬 앞질러 거무죽죽하고 냄새나는
     남자들을 제치고 불빛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나는 익살스럽게 놀라는 아버지의 표정을 기대했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그 기대는 사라졌다. 
    공포로 가득차 있는 아버지의 눈빛과 마주친 것이다. 
    난 딜과 오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불빛 아래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