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3.

Joyfule 2009. 2. 1. 01:55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3.  
    주께로 가까이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으며 아버지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고모나 우리와 함께 앉지 않았다. 
    교회에서 만큼은 혼자이고 싶은 듯했다.
    일요일을 짓누르고 있는 거짓 평온은 
    알렉산드라 고모와 더불어 짜증을 더욱 가중시켰다. 
    아버지는 식사 후 곧장 사무실로 갔고 
    알렉산드라 고모는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나서 
    이웃에게 방해가 된다며 조그만 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다.
    어른 티를 내는 오빠는 산더미 같은 축구잡지에 파묻혀 있었고 
    딜과 나는 사슴목장을 살금살금 기어다녔다. 
    일요일에는 사냥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딜과 나는 목장 주위에서 오빠의 축구공을 차며 놀았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딜은 또다시 부 래들리를 움직이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고싶지 않다고 답변한 나는 지난 겨울에 일어난 사건을 들려주었다. 
    오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딜은 나의 얘기에 상당히 감동받은 듯했다.
    우리는 저녁 무렵에 헤어졌고 오빠와 나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쉬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손에는 흥미로운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전구가 달린 기다란 전기코드를 갖고 나온 것이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오마. 
    돌아올 때쯤엔 너희들은 자고 있을 테니, 지금 굿나잇을 해야겠구나. 
    그리곤 모자를 쓰고 나갔다.
    차를 타고 계셔. 
    오빠가 말했다.
    아버지는 몇 가지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후식을 먹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걷기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적인 업무를 제외하고 우리집 차 샤보레는 
    최적의 상태로 차고에서 쉬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무실까지 하루 네 번, 합치면 이 마일은 족히 될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운동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메이컴에서의 괜한 산책은 
    그 사람의 무능을 드러내는 거라고 여겨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미 고모와 오빠에게 굿나잇을 하고 나서 독서에 열중해 있었다. 
    오빠가 잠자리에 들며 내는 소리는 내게 익숙해 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부스럭댔다. 
    마침내 나는 오빠방 연결문을 두드리고야 말았다.
    안 자고 뭘 해? 
    잠깐 시내에 좀 다녀와야겠어.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오빠가 말했다.
    지금 열시야. 왜 가려는데? 
    지금이 몇 시쯤 됐는지 알고 있겠지만 오빠는 무조건 갈 태세였다.
    나도 갈래, 나 꼭 갈거야, 알았지? 
    오빠는 더이상 실랑이를 벌인다면 
    고모를 깨우게 될 것 같아 마지못해 호의를 베풀었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고모 방 불빛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뒷계단으로 빠져나왔다. 
    그날따라 달도 보이지 않았다.
    딜도 가고 싶어할 거야.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겠지. 
    오빠가 침울하게 말했다.
    우리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라이첼 아줌마네 마당을 지나서 딜의 창문으로 다가갔다. 
    메추라기 
    휘파람을 불자 딜의 얼굴이 창문에 나타났다. 
    그 얼굴이 사라진 지 오 분 만에 딜이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노병은 보도에 닿을 때까지 한 마디도 없이 따라왔다.
    무슨 일이야? 
    오빠 영감이 발동을 했대. 
    칼퍼니아 아줌마가 그건 모든 사내아이들의 재난이라고 했어. 
    난 그저 느낌이 이상해서 그래. 그냥 느낌 말이야. 
    오빠가 말했다.
    우리는 두보스 할머니네 집을 지나고 있었다. 
    뒷문이 모두 내려져 있는 그집은 썰렁해 보였고, 
    동백꽃은 잡초와 존슨풀로 뒤덮여 있었다. 
    우체국 있는 곳까지 가려면 아직도 여덟 집을 지나쳐야 했다
    광장 남쪽은 황량한 벌판으로 커다란 칠레 삼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있었으며 
    나무 사이로 뻗어 있는 철로가 가로등 아래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군청 화장실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화장실과는 대조적으로 법원은 캄캄했다. 
    법원 광장은 가게들에 둘러싸여 커다란 상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상가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은 처음에는 법원 건물에 있었으나, 
    몇 년쯤 지나서 좀더 조용한 메이컴 은행 빌딩으로 옮겨졌다. 
    광장을 돌아가보니 은행 앞쪽에 샤보레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빤 여기 계셔. 
    젬 오빠가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긴 복도 끝에 있는 아버지의 사무실 앞에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 라는 평범한 글씨체가 
    불빛에 반짝이고 있어야 했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캄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