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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5.

Joyfule 2009. 2. 4. 08:2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5.   
    썩은 위스키 냄새와 돼지우리 냄새 때문에 주위를 흘끗 둘러보고 나서야 
    그들이 낯선 사람들임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강렬한 당혹감이 나를 뚫고 지나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의 소굴로 
    의기양양하게 뛰어들어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났다. 
    마치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노인처럼 천천히. 
    그리고 주저하는 듯 신문의 귀를 맞추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젬, 집으로 가거라. 
    스카웃과 딜을 데리고 집으로 가 있어. 
    아버지가 흔쾌히 묵인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의 명령에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나 그날 오빠는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자, 오빠. 
    오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양팔을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주먹을 쥐자 오빠도 따라했다. 
    얼굴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외모는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 
    엄마를 닮은 오빠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과 눈, 달걀 모양의 얼굴형, 
    아담한 크기의 귀가 아버지의 짙은 잿빛 머리카락, 
    각이 진 얼굴 등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닮은 듯 보였다. 
    두 사람의 도전적인 태도가 조금은 닮아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가라고 했다. 
    오빠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녀석들은 내가 보내야겠군. 
    건장해보이는 남자가 오빠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낚아챘다.
    오빠를 건드리지 말아요! 
    나는 순식간에 맨발로 그를 걷어차고 말았다.
    그는 매우 아픈 듯 웅크렸다. 
    정강이를 차려했던 것인데 너무 높게 겨냥이 되었던 것이다.
    자, 그만, 스카웃. 사람을 걷어차면 못써.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았다. 
    내가 변명하려 하자  그만 이라고 못박았다.
    누구든, 오빠에게 그런 식으로 대할 순 없어요. 
    내가 말했다.
    좋습니다, 변호사님. 저 애들을 먼저 보내십시오. 
    아버지는 이런 낯선 사람들 속에서 오빠를 설득하려 최선을 다했다. 
    오빠는 아버지의 위협과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확고하게 대답했다.
    전 안 가요. 
    젬, 제발 동생들을 데리고 집에 가 있어. 
    마침내 아버지는 애원하듯 말했다.
    물론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갈 작정이었지만 
    나는 점점 짜증스러워져 슬그머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름밤이었는데도 옷을 잔뜩 껴입고 있었고 
    멜빵이 달린 청바지에 두꺼운 무명천 셔츠를 입었는데 
    목과 소매까지 단추를 채운 것으로 보아 추위를 심하게 타는 듯 여겨졌다.
    몇 명은 귀까지 모자를 눌러쓰기도 했다. 
    모두들 늦은 시간에 익숙지 않은 듯 
    졸리운 눈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무룩해 있었다. 
    그 반원모양으로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커닝햄 아저씨?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안녕하세요, 커닝햄 아저씨? 
    아저씨네 상속인 문제는 잘 되시나요? 
    월터 커닝햄 씨의 법정소송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으므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키 큰 아저씨는 눈을 끔뻑거리며 
    엄지손가락을 가죽 멜빵에 걸고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큰기침을 몇 번 하고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의 친절한 인사치레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커닝햄 씨의 모자로 가리워졌던 이마의 부분이 
    햇빛에 그을린 얼굴과 대조되어 하얗게 빛냈다. 
    항상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가 무거운 장화를 옮겨놓았다.
    저를 모르세요, 커닝햄 아저씨? 
    전 진 루이스 핀치에요. 
    언젠가 히코리 땅콩을 보내주셨잖아요, 그렇죠? 
    나는 점점 우연한 만남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의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 월터하고 같은 학교에 다녀요. 
    나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월터는 아저씨 아들이죠, 그렇죠? 그렇죠, 아저씨? 
    커닝햄 씨는 힘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전 월터하고 같은 학년이에요. 
    걔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좋은 아이구요. 
    나는 계속했다.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점심때 우리집에 초대한 적도 있어요. 
    나는 잠시 시무룩해져서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해 들으셨을 거예요. 사실 전 월터를 때린 적이 있거든요. 
    그때 월터는 정말 멋지게 행동했어요. 
    안부 전해주세요. 그러실 거죠?
    아버지는 예의바른 사람은 자신의 관심거리보다 상
    대방의 관심거리에 대해 얘기하는 법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커닝햄 씨는 아들에 관한 얘기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어보려는 결사적 노력으로 
    다시 한 번 상속인 한정 문제를 들먹거렸다.
    상속인 한정은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