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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6.

Joyfule 2009. 2. 5. 01:3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5.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6.   
    충고하듯 얘기하고 있던 나는 
    그들 모두를 향해 연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몇몇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기도 했다. 
    아버지도 더이상 오빠를 다그치지 않았다. 
    남자들은 딜 곁에 그렇게 서 있었다. 
    결국 그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황당스러운지 그 특유의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예 감아버렸다.
    아빠, 전 그냥 상속인 한정이 나쁘다는 것을 커닝햄 아저씨께 말씀드리려는 거예요. 
    아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구요 ,,, 
    그리고 아저씨는 함께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 . 
    순간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상속인 한정이란 거실에서의 잡담 정도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뒷덜미에서 진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여러 낯선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커닝햄 씨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묘한 행동을 보였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의 양어깨를 잡은 것이었다.
    내가 그 녀석에게 안부를 전해주마, 꼬마 아가씨. 
    그리고는 다시 몸을 세워 그 커다란 손을 흔들었다.
    자, 그만 돌아들 가지. 
    그들은 하나, 둘 흩어져 덜컹대는 차 안으로 사라졌다. 
    차문이 세차게 닫히고 엔진이 기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돌아갔다.
    나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감옥 벽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따라가서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집에 가요, 아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천천히 문지른 다음 코를 힘껏 풀었다.
    핀치 변호사님. 
    부드럽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위쪽에서 어둠을 뚫고 날아왔다.
    그들은 모두 갔나요? 
    아버지는 조금 물러서서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갔소. 눈좀 붙여요, 톰. 
    다시는 귀찮게 굴지 않을 거야. 
    다른 방향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선명하게 밤을 가로질렀다.
    어지간하십니다, 변호사님. 언제나 엄호를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쌍발식 권총을 찬 언더우드 씨가 (메이컴트리뷴) 
    사무실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작스런 피곤이 나를 누르기 시작하자 
    아버지와 언더우드 씨가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는 듯이 느껴졌다. 
    언더우드 씨는 창문 밖으로 반쯤 몸을 내밀고 있었고, 
    아버지는 올려다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얘기를 끝낸 아버지는 전깃불을 끄고 의자를 집어들었다.
    제가 들고 가겠어요, 핀치 아저씨. 
    딜이 말했다. 딜은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고맙구나, 얘들아. 
    딜과 나는 아버지와 오빠의 뒤를 따라갔다. 
    딜은 의자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이미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빠를 단단히 나무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완전한 기우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치며 
    아버지는 손을 뻗어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이다. 
    그건 아버지의 애정표현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