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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1.

Joyfule 2009. 2. 6. 07:35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1.  
    내가 흐느끼는 소리에 오빠는 연결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불이 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에서 잠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오빠는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서 누우라고 하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자려고 해봐. 내일이면 모든 것이 지나가버릴 거야. 
    우리는 고모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조용 들어왔다. 
    아버지는 차의 엔진을 끄고 차고에 밀어넣은 후 뒷문으로 말없이 올라왔다.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다. 
    텅 빈 거리에서 안경과 모자가 뒤로 젖혀진 채 
    침착하게 신문을 접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그려졌다. 
    그날 밤 있었던 모든 상황들의 의미가 
    그제서야 충격으로 다가와 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오빠는 나에게 극진히 잘해주었다. 
    더 고마운 것은 열 살 먹은 아이의 행동거지에 대해 들먹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건 오빠의 크나큰 배려였다.
    다음날 아침은 모두들 입맛을 잃고 있었는데, 오빠만은 예외였다. 
    이미 달걀을 세 개째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감탄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커피를 홀짝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 담은 채 
    아이들이 밤에 나돌아 다니는 짓은 집안의 수치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에 뒤따르는 불명예를 기꺼이 받겠다고 하자 고모가 다시 말을 받았다.
    "넌센스예요, 언더우드 씨가 그곳에 있었을 거 아니에요? "
    "저 말이지, 그 브랙스톤은 아주 재미있는 구석이 있거든."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흑인을 경멸하고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구." 
    감정적이고 이단적인 작달막한 키의 언더우드 씨는 지나친 편견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유머 감각이 유별난 그의 아버지는 
    남북전쟁 연합사령관의 이름을 빌어 그에게 브랙스톤 브레즈라는 이름을 지었던 것이고, 
    그 또한 특별한 세례명답게 엉뚱하게 사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에 대해 아버지는 연합사령관 이름을 딴 사람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한 술꾼이 되어가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칼퍼니아 아줌마는 고모의 커피잔에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간청하는 애교스러운 나의 눈길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커피 마시기엔 아직 어려." 
    나는 커피를 마시면 뒤틀리는 위장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칼퍼니아 아줌마는 이번 한 번뿐이라며 
    찬장에서 컵을 꺼내 커피 한 스푼에 우유를 가득 부어주었다. 
    나는 아줌마에게 감사하며 컵 주둥이에 혀를 갖다댔다. 
    그때 경고하듯 눈살을 잔뜩 찌푸린 고모를 올려다보고 말았다. 
    그건 내가 아닌 아버지를 향한 불만의 표시였다.
    고모는 칼퍼니아 아줌마가 부엌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들 앞에서 그런 소릴 하면 어떻게 해요." 
    "누구 앞에서 무슨 소리를?" 
    아버지가 반문했다.
    "칼퍼니아 앞에서 브랙스톤 언더우드 씨는 흑인을 경멸한다고 그랬잖아요. 
    바로 그녀 앞에서." 
    "그래? 난 칼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지, 
    칼뿐 아니라 메이컴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 
    나는 요즈음 들어 아버지의 말씀이 다소 
    복잡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는데, 
    고모와 얘기를 나눌 때면 특히 두드러졌다. 
    짜증스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안으로 파고드는 듯한 목소리는 약간 거북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식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말은 칼퍼니아가 들어도 괜찮은 거야. 
    우리 가족에서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좋지 않아요, 오빠. 그건 단지 그들을 부추길 뿐이에요. 
    그들끼리 모였을 땐 어떤 말을 하는지 아실 거 아니에요. 
    이 마을 모든 사건이 거의 그들 지역에서 벌건 대낮에도 일어나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률조항은 없다. 
    그들에 대해 우리가 먼저 입을 다문다면 그들도 조용해질 거야. 
    스카웃, 커피를 왜 안 마시지?" 
    나는 찻숟가락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커닝햄 아저씨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 
    아빠가 오래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는 아직도 우리 친구란다." 
    "하지만 지난밤엔 아빠를 해치려고 했는데도요?" 
    아버지는 포크를 나이프 옆에 놓고 접시를 밀어놓았다.
    "커닝햄은 좋은 사람이란다. 
    단지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무모한 면을 갖고 있을 뿐이지." 
    그때 오빠가 말했다.
    "무모하다고만 말씀하지 마세요. 
    지난밤 그가 거기에 갔던 건 아빠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날 조금은 다치게 했을지도 모르지 ,,, 
    네가 좀더 자라서 인간을 더욱 이해를 하게 되면 
    폭도란 항상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될거야. 
    커닝햄도 지난밤엔 폭도일 수 있었어.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인간이란다. 
    남부의 작은 마을 폭도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지. 
    그들에 대해 더이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겠지?" 
     "네." 
    오빠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