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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2

Joyfule 2009. 2. 7. 01:3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2    
    "그래서 열 살짜리 어린애가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한 거야. 
    어떤 것으로든 그 난폭한 사람들을 진정시켰던 것은 
    간단히 말해 그들이 아직은 인간이기 때문이야. 
    으흠, 거기에 아이들 경찰대가 필요했던 거야....
    바로 너희 어린이들이 월터 커닝햄을 잠시나마 
    이 아빠의 입장에 서게 한 거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다, 
    나는 오빠가 더 자라서 사람들을 많이 이해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월터가 학교에 온 것이 첫날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 
    나는 확인하듯 말했다.
    "그 아이를 그냥 놔둬라.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너희들이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 않기를 바란다." 
    "보세요, 무슨 일이든 일어나겠어요. 
    제가 말리지 않았다고는 말씀 못하실 거예요." 
    고모가 말했다.
    아버지는 결코 그러지는 않을 거라며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할 일이 많아 먼저 가봐야겠다. 
    젬, 오늘 너희들은 시내에 나오지 않도록 해라. 부탁이다, 알았지?" 
    아버지가 나가자 딜이 복도에서 식당 쪽으로 펄쩍 뛰어내려왔다.
    "오늘 아침 읍내 전체로 퍼졌어. 
    우리 어린아이들이 맨손으로 백 명의 어른들은 어떻게 해치웠는가를 ..... 
    알렉산드라 고모가 말없이 딜을 쳐다보더니 입을 뗐다.
    "백 명이란 사람은 있지도 않았고 누가 누구를 해치우지도 않았다. 
    그건 단지 술 취하고 무질서한 커닝햄 같은 인간들의 소굴인 것뿐이야." 
    "저, 고모, 그건 딜의 말투가 그런 것뿐이에요." 
    오빠가 변명해주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너희들 모두 앞마당에서 놀아야 한다." 
    우리가 현관을 빠져나올 때 고모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날은 마치 토요일 같았다. 
    메이컴 남쪽 끝에서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한결같은 속도의 걸음걸이로 한가로이 우리집 앞을 지나쳐 흘러갔다.
    돌퍼스 레이먼드 씨는 그의 혈통 좋은 말에 올라타 건들거리고 있었다.
    "안장도 없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어." 
    오빠가 계속 중얼거렸다.
    "어떻게 아침 여덟시도 안 돼서 취할 수 있을까?" 
    숙녀를 가득 태운 왜건 한 대가 덜컹대며 지나갔다. 
    그들은 무명 선보닛을 쓰고 소맷자락이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모직 모자를 쓴 턱수염이 긴 사내가 마차를 몰고 있었다.
    "저기 메노파 사람들 좀 봐. 
    그들은 단추를 사용하지 않고 숲속 깊숙이에 살고 있는데 
    대부분 강 건너 무역을 하느라 메이컴엔 오지 않아." 
    오빠가 넋이 빠져 쳐다보고 있는 딜에게 설명했다. 
    "메노파란 개신교도들의 한 갈래였다.
    그들은 모두 푸른 눈에다가 결혼하고부터는 수염을 깎지 않는댜. 
    그 아내들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한다나봐." 
    엑스 빌업 씨가 노새 위에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저 아저씨는 재미있는 분이야. 엑스(X)가 약자가 아니라 진짜 이름이거든. 
    언젠가 법정에서 이름을 물었더니, 엑스 빌업이라고 했겠지. 
    서기가 철자를 물었어. 그래도 엑스라고 했지. 
    그러니 다시 와서 물었고, 또 엑스라 대답한 거야. 
    결국 흰 종이에 엑스라고 써서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보여야 했다나봐. 
    그래, 누가 이름을 지었냐고 물었더니 
    그가 태어났을 때 어른들이 써놓은 사인이었다는 거야." 
    그날 오빠는 우리 앞을 지나가는 메이컴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견해와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내력을 딜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텐소 존스 씨는 터부시되는 일에 유독 관심을 보인다는 둥, 
    에밀리 데이비스 양은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둥, 
    바이런 월러 씨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는 둥, 
    제이크 슬레이드 씨는 세 번씩이나 이빨이 부러졌다는 등등이었다.
    그 순간 말쑥하게 차려입은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때 머디 애킨슨 아줌마는 마당에 나와 있었다. 
    마당은 여름 꽃들로 불타는 듯 보였고, 머디 아줌마는 현관에 파수꾼처럼 서 있었다. 
    그 현관은 아줌마의 표정을 읽기에는 먼 거리였는데도 
    우리는 늘 그곳에 있는 아줌마의 모습만으로도 당시의 기분을 알아차리곤 했었다. 
    그녀는 팔꿈치를 굽혀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어깨를 약간 쳐진 듯이 내려뜨리고
    얼굴을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안경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지독히도 심술궂은 웃음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