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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3

Joyfule 2009. 2. 8. 05:0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3  
    마부가 노새의 속력을 늦추자 웬 여자가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허영에 물든 자, 어둠 속에 사라지리라." 
    머디 아줌마가 대답했다.
    "즐거운 마음이 아름다움을 주리라! "
    마부는 노새에 속력을 가했다. 
    저 이상한 침례교도들은 악마 같은 우리들이 
    사리사욕을 위하여 성경을 인용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낮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머디 아줌마이기는 하지만 성경에 대한 믿음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머디 아줌마의 정원을 혐오하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점점 고개를 들었다.
    "아줌마도 오늘 법정에 가시나요?' 
    오빠가 물었다. 
    우리는 한가로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오늘은 법원에 아무 볼 일이 없구나." 
    "구경하러 가시지 않느냐구요? "
    딜이 물었다.
    "아니. 재판을 가장하여 그 불쌍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끔찍하구나. 
    저 사람들 좀 봐라. 마치 로마 사육제의 광란 같지 않니?" 
    "하지만 재판은 공개적으로 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긴 그렇지.. 공개적이니까 내가 꼭 가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때 스테파니 아줌마가 모자를 쓰고 면 레이스 장갑을 끼고 지나갔다.
    "우후후, 저 사람들 좀 보렴. 
    마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이라도 들으러 가는 것 같구나." 
    "어디 가요, 스테파니?' 
    머디 아줌마가 물었다.
    "시장에 좀 가려구." 
    모자를 쓰고 시장에 간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머디 아줌마가 대꾸했다.
    "응, 난 그저 법원구경도 하고 애티커스의 변론도 좀 들어보려구." 
    스테파니 아줌마가 대답했다.
    "애티커스가 당신한테 소환장을 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머디 아줌마의 대답은 스테파니 아줌마가 그 재판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어 증인으로 불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오까지 할 일 없이 돌아다녔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아버지는 오전 내내 배심원 선발을 했다고 들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난 우리는 딜을 불러내어 읍내로 갔다.
    읍내는 마치 축제를 연상시켰다. 
    노새를 매어놓을 수 있는 공공 장소는 아니었지만 
    나무 아래에는 어디에나 노새와 마차들이 매여 있었다. 
    법원 마당은 신문지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로 뒤덮였는데
    과자 부스러기는 흩어져 있고 주스병에선 따끈한 우유가 흐르기도 했다. 
    식어버린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좀더 여유있는 사람들은 잡화상에서 산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아이들은 땀으로 번질번질해진 얼굴로 군중 사이를 누비고 다녔고, 
    젖먹이들은 엄마의 젖가슴을 열심히 빨고 있었다.
    그늘이 없는 광장 저쪽 구석에는 흑인들이 조용히 앉아 
    정어리 통조림과 과자로 식사를 하며 맛이 강한 니히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돌퍼스 레이먼드 씨가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형, 저 사람은 종이백 안에 있는 뭔가를 마시고 있어. 
    딜이 말했다. 
    돌퍼스 레이먼드 씨는 그렇게 보였다. 
    갈색 종이백 밖으로 두 개의 노란 빨대가 삐죽이 나와 있었다.
    "저렇게 마시는 건 처음 보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저러고 있을까?" 
    딜이 중얼거렸다.
    오빠는 갑자기 킬킬거렸다.
    "저 사람은 코카콜라 병에 위스키를 잔뜩 넣어가지고 다녀. 
    숙녀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거야. 
    오후 내내 저걸 입에 달고 있을 테니 봐. 잠깐 나가선 다시 채워오곤 하지." 
    "그런데 저 사람은 왜 흑인들과 어울려 앉아 있지?" 
    "언제나 그래.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더 좋은가봐. 
    경계선 근처에 혼자 살다가 흑인여자를 얻었어.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혼혈아야. 
    그 아이들이 나타나면 누군지 가르쳐줄게." 
    "건달 같지는 않은데." 
    딜이 말했다.
    "그래, 맞아. 
    저 아래 강둑 저편이 모두 그의 땅인데다가 아주 전통있는 가문 출신이거든." 
    "그런데 왜 저렇게 살까?" 
    "그거야 그 사람 맘이지." 
    오빠가 말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첫결혼 직전의 끔찍한 사건을 극복하지 못해서 그러는 거래. 
    원래 스펜더 집안 아가씨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여자는 교회에서 결혼 예행연습을 한 후 이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머리를 날려보냈대. 
    산탄총을 거꾸로 들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는 거야." 
    "왜 그랬는데?" 
    "글쎄, 돌퍼스 씨 빼고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은 흑인여자가 있다는 걸 그 아가씨가 알았기 때문이라고들 해. 
    그는 그 흑인여자도 돌보며 한편으론 결혼하려고 했나봐. 
    아마 그때부터 술을 저토록 마셔댔는데 ,,, 
    그래도 저 사람 자기 아이들에겐 굉장히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