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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4

Joyfule 2009. 2. 9. 07:14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6.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 4    
    "오빠, 혼혈아가 뭐야? "
    내가 물었다.
    "반은 백인이고 반은 흑인인 사람이야. 너도 봤을 거야. 
    그 잡화상에서 배달하는 빨간 곱슬머리 해야 혼혈아인데, 정말 비참해." 
    "뭐가 비참한데?"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니까. 
    흑인들은 반은 백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백인은 백인대로 그들을 멸시하지. 
    그러니까 어중간하게 백인도 흑인도 아닌 채 살아가면서 어쩌지도 못하나봐. 
    그렇지만 돌퍼스 씨는 두 아이를 북쪽으로 보낼 거라는 거야. 
    북부에선 괜찮은가봐. 저기 그중 한 명이 온다." 
    조그만 아이가 흑인여자의 손을 잡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내게는 모두 흑인처럼 보였다. 
    그 아이는 윤기 흐르는 초콜릿빛 피부에 코는 넓적했으며, 이는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흑인여자는 즐거운 듯 깡총거리는 아이를 똑바로 걷게 하려고 손을 잡아당기곤 했다.
    오빠는 그들이 우리 앞으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고 속삭였다.
    "쟤가 그런 아이야." 
    "어떻게 구별하는데? 다 똑같잖아." 
    "때론 혼혈인 걸 모르면 잘 알 수 없어. 
    하지만 저 아이의 반은 분명 레이먼드 씨 아이야." 
    "어떻게 알아?" 
    내가 다시 물었다.
    "말했잖아, 그냥 누군지 아는 것으로 구별한다구." 
    "그럼, 우리가 흑인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
    잭 삼촌이 그러셨는데 정말 모르는 거래. 
    하지만 핀치 가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봐도 조상중 흑인은 없대. 
    창세기 때부터 순수하게 이어졌다고 하셨어."
    구약성서의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에겐 너무 먼 얘기야, 그렇지?" 
    "맞아,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너는 온통 검둥이가 돼버리는 거야. 
    야, 저기 봐." 
    어떤 신호가 있었는지 광장에서 점심을 먹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문지 조각, 셀로판 포장지 조각이 흩어졌고,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뛰어갔다. 
    어느새 젖먹이들은 엄마의 등요람 안에 있었다. 
    땀에 절은 모자를 쓴 남자들이 가족을 모아 법원 안으로 떼지어 들어갔다. 
    그 동안 마당 한구석에서 흑인들과 돌퍼스 레이먼드 씨가 일어나면서 엉덩이를 털고 있었고, 
    몇 안 되는 여자와 아이들이 그들과 섞여 있었다. 
    그곳만은 휴일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백인들이 다 들어갈 때까지 인내심있게 기다렸다.
    "이제 들어가, 형." 
    딜이 말했다.
    "안 돼. 맨 나중에 들어가자. 아버지 눈에 띄면 안 좋을 것 같아." 
    오빠가 말했다.
    메이컴 법원 건물은 옛날의 앨링턴 묘지를 어렴풋이 연상시켰다. 
    남쪽 지붕은 받치고 있는 기둥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보여 얼핏 보기에 짐스럽게 느껴졌다. 
    그 원형 건물은 1865년에 불타버리는 바람에 
    겨우 남아있던 기둥 위에 다시 건물을 세웠던 것이다. 
    남쪽 현관은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북쪽에서 보면 훌륭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다른 쪽에서 보면 그리스 시대를 옮겨놓은 듯한 원주가 
    십구 세기 스타일의 어마어마한 녹슨 시계탑과 겹쳐져 있었다. 
    몇몇 선각자는 이 모든 과거의 유물들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이층으로 올라가면 햇빛이 들지 않는 비좁은 복도에 
    고만고만한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액 사정관, 관세 징수관, 군 서기관, 군 법무관, 순회재판 서기관, 
    유언검인 재판관이라 씌어 있는 간판들이 
    서늘하고 흐릿한 건물 안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방들은 기록문서가 썩어드는 냄새, 
    오래되어 낡은 건물의 습기찬 시멘트 냄새와 오줌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낮에도 불을 켜야 했고 먼지 낀 마루판자에는 항상 거미줄이 널려 있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람이나 햇볕에 조금도 그을리지 않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일층 복도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빠와 딜을 놓쳐버려 혼자 벽을 따라 밀려가다 보니 
    오빠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러즈 클럽 사람들 틈에 끼여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 클럽은 하얀 셔츠에 카키색 바지를 유니폼으로 입고 
    황혼기의 일상을 보내는 할아버지들의 모임이었다. 
    법원 업무에 관해 상당한 비평가인 아버지도, 
    그들은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법원장만큼이나 법률에 밝다고 들려주었다. 
    보통 때는 그들만이 법원의 유일한 참관인이었으므로 
    오늘의 그 많은 인파에 의해 방해받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듯 보였다. 
    무심코 하는 말에도 왠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야." 
    한 사람이 말해다.
    "지금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애티커스 핀치는 학식이 높아, 아주 높지.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처음에 얘기를 꺼냈던 사람이 말했다.
    "사실 그가 하는 일이 그것뿐이니까." 
    다음 사람이 말을 받자, 그 클럽 전체가 킬킬대며 웃었다.
    "빌리, 이번 흑인 변호를 위해 법원에서 직접 그를 지명한 걸 알고 있나? "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음, 그러나저러나 문제는 애티커스가 
    그 변호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