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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7. 당신은 왼손잡이군요, 이웰 선생 3.

Joyfule 2009. 2. 13. 07:1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7. 당신은 왼손잡이군요, 이웰 선생 3.   
    서리가 내리는 십이월의 어스름녘, 
    그 오두막에선 푸른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고 집 안은 호박색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문간은 제법 말쑥하고 아늑해보였다. 
    황혼녘의 공기처럼 바삭거리는 닭고기나 베이컨 굽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오빠와 난 다람쥐 고기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아버지 또래의 시골 출신은 그 냄새가 주머니쥐나 토끼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그 냄새는 이웰네 집을 뒤로 하여 사라져갔다.
    잿물비누에 뜨거운 물로 문질러댄 
    이웰 씨의 하얀 피부를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버트 이웰 씨?" 
    길머 씨가 물었다.
    "네, 제 이름인뎁쇼, 검사님." 
    길머 씨의 등이 굽어보였다. 나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연유된 감상이었다.
    법률가의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법정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일 때에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들어왔다. 
    논쟁의 상대방을 부모의 개인적인 적으로 오판하여 
    좋지 않은 감정에 휩쓸리게 되다가, 
    정작 첫휴식 시간에 자신의 부모가 논쟁하던 사람들과 
    팔짱을 끼고 다정스레 나가는 것을 보면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빠와 나에게 그런 혼란은 적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논쟁이 소란으로 이어져 시끄러워져도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한 변호사로서 지켜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귀먹은 증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길머 씨도 아버지처럼 자신의 일을 할 뿐이며, 
    이웰 씨는 길머 씨의 증인일 뿐이었다. 
    그가 이웰 씨에게 무례하게 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당신이 마옐라 이웰의 아버지입니까?" 
    두 번째 질문이 던져졌다.
    "그렇습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걔 에미는 죽었습죠." 
     테일러 판사가 제지했다. 
    그는 회전의자를 천천히 돌리면서 증언자를 자애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 마옐라 이웰의 아버지입니까?" 
    아래층에서 들리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네, 재판장님." 
    이웰 시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테일러 판사는 호의적인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을 이곳에서 본 적이 없는데, 법정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오?" 
    증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판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한 가지 명백히 해둘 것이 있소. 
    내가 여기 앉아 있는 한 이 법정 안에선 어떤 주제로든 
    풍기문란한 공론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
    이웰 씨는 끄덕였지만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테일러 판사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자, 됐으니 시작하시오, 길머 씨! "
    "고맙습니다, 재판장님. 
    이웰 씨, 십일월 이십일일 저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신이 직접 얘기해주십시오." 
    오빠가 싱긋 웃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당신이 직접 이라는 말은 길머 씨의 등록상표였다. 
    우리는  당신이 직접이 아니면 누가 한다는 말인지 
    우스꽝스럽게도 캐묻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까 십일월 이십일일밤 제가 불쏘시개감을 갖고 
    숲에서 돌아와 막 울타리를 넘는 뎁쇼, 
    집 안에서 저년이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네." 
    "이때 테일러 판사는 증인을 날카롭게 힐끗 쳐다보곤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다시 졸린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때가 몇 시였습니까, 이웰 씨?" 
    "해가 막 지려는 중이었죠. 
    그러니까 제가 ,,, 마옐라가 ,,, 아이쿠 맙소사, 
    어마어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했습죠." *
    얘기가 딴 방향으로 흐르자, 재판장이 이웰 시를 제지했다.
    "예?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구요? "
    길머 씨가 물었다. 
    이웰 씨는 당황하며 판사를 보았다.
    "그 지독한 소리는 점점 커졌고, 전 짐을 내리다 말고 힘껏 뛰었습니다. 
    울타리로 뛰어들어 정신을 차리고 창문으로 가보니 ." 
    이웰 씨의 얼굴이 점점 새빨개졌다. 
    그러더니 일어나 톰 로빈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검둥이가 저년을 덮치고 있지 뭡니까? "
    테일러 판사는 그의 망치를 오 분간이나 계속 두드려야 했다. 
    아버지가 의자에서 일어나 무언가 헥 테이트 씨에게 말을 했고, 
    그는 복도 가운데서 법정의 소동을 진정시키는 이 마을 최초의 보안관이 되었다. 
    우리 뒤에 선 흑인들이 성난 신음소리를 억제하고 있었다.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가 딜과 나를 건너 오빠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젬 군, 진 루이스 양과 집으로 가는 게 좋겠는데 ,,, 젬 군, 알겠지?" 
    오빠가 머리를 돌려 말했다.
    "스카웃, 너 집에 가. 딜, 너 스카웃 데리고 집에 가라." 
    "가려면 오빠부터 가." 
    무슨 일을 할 땐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대꾸했다. 
    오빠는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나서 말했다.
    "괜찮아요, 목사님. 쟨 들어도 모르니까요." 
    나는 기분이 몹시 상해버렸다.
    "오빠가 알아듣는 정도는 나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어." 
    "조용히 해. 쟨 몰라요, 목사님. 아직 열 살밖에 안 됐거든요."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의 검은 눈이 걱정스러운 듯 보였다.
    "핀치 변호사님이 너희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계시냐? 
    이 재판은 진 루이스 양이나 너희 둘에게는 맞지 않는데.... " 
    오빠가 머리를 저었다.
    "아빤 저희를 보실 수 없어요,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