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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8.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고 5

Joyfule 2009. 2. 20. 06:2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8.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고 5   
     한 번에 한 가지만 질문 하십시오, 
    애티커스. 증인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어야지요. 
    테일러 판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려고 했어요 ,,, . 
    그러려고 했다구? 무엇이 못하게 끌어당깁디까? 
    그가 홱 넘어뜨렸거든요. 나를 넘어뜨리고는 내 위에 올라탔어요. 
    그래서 당신은 내내 소리를 질렀겠죠? 
    분명 그렇게 했어요. 
    그럼 다른 아이들은 왜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쓰레기더미에?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어디에 있었소? 
    왜 아이들은 증인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달려오지 않았소? 
    그 쓰레기장은 숲속보다 가깝지 않소? 
    그녀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증인은 당신의 아버지가 창문으로 볼 때까지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건 아니었습니까? 
    그때까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역시 대답이 없었다.
    당신은 톰 로빈슨이 아닌 바로 당신의 아버지를 보고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침묵이 계속되었다.
    누가 당신을 때렸습니까? 
    톰 로빈슨이요, 아니면 당신의 아버지요? 
    그녀는 전혀 입을 떼지 않았다.
    당신의 아버지가 창문을 통해 본 것은 무엇이었소? 
    강간이요, 아니면 그것을 방어하려는 몸짓이었소?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가, 이 어린 아가씨야. 
    봅 이웰이 때리지 않았다구? 
    아버지는 마옐라에게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마치 위경련을 일으킨 듯 보였다. 
    마옐라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뒤엉켜 일그러져 있었다. 
    피곤에 지친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았다.
    갑자기 마옐라가 한 마디 한 마디를 짚어가며 말을 시작했다.
    할 말이 있어요. 
    아버지는 얼굴을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까?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권유에 섞여 있는 어떠한 동정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가 할 말이란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저기 저 검둥이가 저를 겁탈했어요. 
    변호사님이 훌륭한 신사라면 그에 대해 어떤 것도 변호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은 겁쟁이에 악취를 풍기는 비겁자들이에요. 
    더러운 비겁자들이라구요. 
    당신의 그 터무니없는 변덕은 엉터리에요. 
    아가씨니 마옐라 양이니 모두 돼먹지 않은 수작이라구요. 
    그녀는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어깨는 격한 흐느낌으로 들썩거렸고, 
    말했던 대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길머 씨조차도 그녀의 지난 일을 추적하려 했지만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그토록 무지하고 가난하지만 않았더라도 
    당장 감옥에 집어넣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이에게 보여준 치욕만으로도 테일러 판사는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다소 그녀를 몰아세웠다 해도 심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건 아버지의 개인적인 흥미를 위한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는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증인석을 떠나 아버지의 책상을 지나며 보여준 증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것이다.
    길머 씨가 휴식 시간이라고 말하자 테일러 판사는 휴정을 선언했다.
    휴정합니다. 십 분간 쉬겠습니다. 
    아버지와 길머 씨가 의자 앞에서 만나 
    무엇인가를 속삭이듯 주고받고는 증인석 뒤쪽 문으로 나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기지개를 켤 수 있다는 신호였다. 
    그제서야 나는 벤치 맨 끝에 걸터앉아 있어서 온몸이 마비된 걸 느꼈다. 
    오빠가 일어나 하품을 하자 딜도 따라했다. 
    리버렌드 사이크스 목사가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화씨 구십 도는 되겠는걸. 
    브랜스톤 언더우드 씨는 취재기자석에 조용히 앉아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머릿속에 모든 증언을 빨아들고 있었다. 
    문득 눈을 들어 흑인들이 앉아 있는 발코니를 휘둘러보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슬쩍 웃음을 보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오빠, 언더우드 아저씨가 우릴 봤어. 
    괜찮아, 아빠께 이르지는 않을 거야. 
    (트리뷴)지 사회면에 기사를 내긴 하겠지만. 
    오빠는 딜에게 등을 돌리고 설명했다.
    그 공판은 오빠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걸까. 
    왠지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아버지와 길머 씨의 논쟁은 길지 않았다. 
    길머 씨는 마지못해 그일을 수행하는 듯 보였다. 
    거의 이의제기 없이 자신에게 할당된 부분을 증인들로부터 빼내는 데 그쳤다. 
    언젠가 아버지는 아무리 뛰어난 법률가라도 
    대부분 테일러 판사로부터 지시를 받는다고 말했었다.
    테일러 판사는 게을러보이고 잠에 취해 있는 듯해도 
    일반적인 상황을 거의 역전시키지 않았는데, 
    그것은 오랜 연륜에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훌륭한 재판장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였다. 
    테일러 판사가 회전의자에 앉아 조끼 주머니에서 시거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딜을 툭 쳤다. 
    한참 동안 점검한 시거를 심술사납게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우린 가끔 저걸 보려고 여기 올 때도 있어. 
    내가 말했다.
    아마도 오후 내내 저걸 씹을 거야. 자, 봤지? 
    알아차릴 수 없는 세밀한 검사를 마치고
    끝까지 씹은 시거를 입술을 움직거려 교묘하게 밖으로 내밀어  
    퉤 하고 침뱉는 그릇에 정확히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 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정도였다.
    마치 스핏볼을 내던지는 것 같군. 
    딜이 중얼거렸다.
    대개 휴정은 일반적 의미의 탈출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가엾은 사람들까지도 벽에 기댄 채 남아 있었다. 
    그래도 헥 테이트 씨에게는 공무원을 위해 남겨진 의자라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와 길머 씨가 돌아오고, 테일러 판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네시가 되어가는군. 
    그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법원시계가 최소한 두 번은 쳤을 텐데도 나는 진동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테일러 판사가 물었다.
    오늘 오후까지 끝낼 수 있겠습니까, 애티커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증인이 얼마나 더 있습니까? 
    한 명입니다. 
    좋아요, 그를 부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