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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3. 이유 있는 의혹 2

Joyfule 2009. 3. 11. 01:10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3. 이유 있는 의혹 2   
    어느 날 저녁 나는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다.
    만약 상소에서도 지면 톰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전기의자에 앉혀져 사형당하게 될 거야. 
    주지사가 형을 감해준다면 모를까 ,,, 
    하지만 아직 걱정할 때는 아니다, 스카웃. 우린 좋은 기회를 확보한 거니까. 
    오빠는 소파에 앉아 기계에 관한 잡지를 읽다가 팔다리를 길게 뻗으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건 옳지 않아요. 
    그가 죄를 지었다고 해도 누굴 죽인 건 아니잖아요.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았어요. 
    앨라배마에서는 강간죄가 사형이라는 걸 모르니? 
    알아요, 아빠. 하지만 배심원들에겐 그를 사형시킬 권리가 없어요. 
    이십 년 정도의 징역형이라면 모를까 ,,, . 
    사형선고를 내리고도 남지. 톰 로빈슨은 흑인이야, 젬. 
    세상 어떤 배심원도  유죄이긴 하지만 조금 유죄일 뿐이다 라고 하진 않는단다. 
    무죄방면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란다. 
    오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이 잘못된 건 분명한데, 뭐가 잘못된 건지 찾을 수가 없어요 ,,, . 
    단지 강간죄 하나로 사형까지 시키지는 말아야 해요. 
    아버지는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강간에 관한 법규에 대해선 할 말이 전혀 없지만, 
    주 정부의 허락과 완전한 상황증거에 기인하여 내려진 배심원들의 사형선고에도
    의심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거라고 했다. 
    잠시 말을 멈춘 아버지는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좀더 쉽게 설명해나갔다.
    내 말은 말이다, 
    한 인간에게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내리려면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의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란다. 
    예를 들어  네, 나는 거기에서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걸 봤습니다 라는 정도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황증거만으로도 교수형을 당하잖아요. 
    그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이 그런 형을 받아 마땅하지. 
    하지만 목격자가 없을 때는 언제나 피고가 정말 유죄인지 의혹을 품게 된단다. 
    물론 아주 미묘한 의혹의 그림자 정도일 때도 있어. 
    법에서는 그것을  이유있는 의혹 이라고 한단다. 
    원래 피고에게는 그런 의혹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항상 가능성이 있는 거지. 
    얼마만큼 있을 법한 일이냐에 관계없이 결백할 수도 있는 거야. 
    그렇다면 그땐 다시 배심으로 되돌아가야 하나요? 
    오빠는 집요하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지 않으려 애썼지만 참지 못하고 말았다.
    네가 나보다도 더 철저하구나. 좀더 나은 길이 있을 게다. 
    법을 바꿔야겠지. 사형의 경우, 형벌을 결정하는 힘이 오직 재판관에게 있도록 바꾸는 거야. 
    그럼 몽고메리로 가서 법을 바꾸면 되잖아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 너도 놀랄 게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될 거고 너희들 세대에 변한다 해도 
    네가 늙었을 때쯤에라야 겨우 될 게다. 
    그 정도 설명으로도 오빠에겐 충분치 않았다.
    아뇨, 아빠. 우선 배심원 제도를 철폐해야 할 거예요. 
    그들은 유죄도 아닌 걸 유죄라고 했으니까요. 
    네가 배심원이었다면 ,,, 
    그리고 나머지 열한 명도 너같은 소년이었다면 톰은 풀려났을 게다. 
    아버지가 얘기를 계속해나갔다.
    지금까지 너의 이성이 발달하는 것을 방해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톰의 배심원들과 같은 배심원들이 열두 명이나 있다면, 
    넌 거기에서 그들 자신과 네 이성 사이에 가로놓인 벽을 보게 될 거야. 
    그날 밤 교도소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경험했던 거지. 
    그들이 돌아간 이유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단다. 
    그중 하나는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공명정대할 수만은 없다는 거지. 
    우리 법정만 보더라도 백인이 흑인을 걸고 들어가면 언제나 백인이 이긴단다. 
    물론 비열한 짓이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란다. 
    말도 안 돼요. 
    오빠가 무신경하게 말하곤 주먹으로 무릎을 쳤다.
    그 정도의 증거로 한 인간에게 유죄를 선고할 순 없어요. 절대 할 수 없어요. 
    그래,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들은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했다. 
    네가 더 자라면 더 많은 일을 겪게 될 게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법정이란다. 
    그 안에서의 개인은 무지개의 모든 빛깔이 되어볼 수도 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심원석까지 그들의 원한을 갖고 가는 것이지. 
    네가 앞으로 좀더 자라면 백인이 흑인을 속이는 일을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될 거야. 
    여기서 네게 분명히 해둬야 할 말이 있다. 
    그건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가 부자거나, 
    또는 훌륭한 가문 출신이거나 하는 것에 관계없이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거다. 
    아버지는 아주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지만, 
    그 마지막 말은 우리의 귓전에 쟁쟁하게 울렸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몹시 흔들렸고 격렬해보였다.
    저속한 백인이 흑인의 무지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네 자신을 바보로 만들지 말아라. 
    언젠가는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할 날이 올 게다. 
    나는 그날이 너희들 세대에 찾아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