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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3. 이유 있는 의혹 5.

Joyfule 2009. 3. 14. 08:4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3. 이유 있는 의혹 5.   
    오빠는 옷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앞머리만 내려와 있을 뿐 머리카락은 전부 뒤로 넘겨져 있었다. 
    그 머리모양이 아저씨 같아 보여서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적당한 위치에 말끔하게 자라 있었고, 눈썹도 더 짙어져 있었다. 
    게다가 요즘 들어 유난히 호리호리해보였다. 
    오빠는 키가 점점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뒤돌아본 오빠는 내가 또 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을 건넸다.
    네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보여줄 게 있어. 
    그게 뭔데? 
    오빠는 셔츠단추를 풀고는 겸연쩍은 듯 싱긋 웃었다.
    근데 뭐? 
    뭔가 보이지 않니? 
    아니. 
    자, 여기 이 털을 좀 봐. 
    어디? 
    여기, 바로 여기. 
    오빠는 내가 볼 수 있도록 그곳을 가리켰고, 
    나는 근사하다고 말했지만 아무 것도 보지는 못했다.
    정말 멋지다, 오빠. 
    여기 겨드랑이에도 난다. 
    내년엔 축구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스카웃, 고모를 화나게 하지 마. 
    오늘처럼 전에도 고모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했던 오빠의 말이 떠올라 마치 어제일처럼 느껴졌다.
    고모는 여자아이한테 익숙하지 못하신 거 알잖아, 
    특히 너 같은 여자아인. 고모는 널 숙녀로 만들려는 거야. 
    너 바느질이나 뭐 그런 것 좀 배울 수 없니? 
    끔찍해. 고모는 날 좋아하지 않아. 그게 전부야. 
    하지만 상관 안 해. 내가 아빠의 골칫거리라고 해서가 아니라 
    월터 커닝햄을 천박하다고 했기 때문이야. 
    사실은 내가 골칫거리냐고 솔직하게 여쭤봤었는데, 아빠는 아니라고 하셨어.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건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어. 
    그리고 두 번째로 신경쓰시는 내 지능도 큰 걱정은 아니랬어. 
    아니야, 월터 커닝햄은 쓰레기 같은 애가 아니야, 
    오빠. 그 아인 이웰 사람들과는 달라. 
    오빠는 신발을 벗어 내던지고 침대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베개에 기대앉아 스탠드를 켰다.
    스카웃, 너 이거 아니? 난 이제 모든 것을 알 것 같아.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해보고 정리한 건데,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나와 우리 이웃들로 이루어진 보통사람들, 
    숲 저쪽에 사는 커닝햄 같은 사람들, 
    쓰레기더미에 묻혀 사는 이웰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흑인이 있지. 
    중국인들이나 저 아래쪽 발드윈에 사는 루이지애나 원주민들은? 
    내 말은 메이컴 안에서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커닝햄 류의 사람들을 싫어하고, 
    커닝햄 사람들은 이웰 사람들을 멀리하고 이웰 사람들은 흑인들을 경멸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커닝햄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왜 톰을 무죄석방하지 않은 거지? 
    이웰 사람들을 골탕먹이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오빠는 내 말을 유치한 질문으로 치부해버렸다.
    너 그거 아니?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아빠가 발장단을 맞춘다는 사실 말이야. 
    그리고 아빤 그 누구보다도 술을 좋아하신다구. 
    그건 우릴 커닝햄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거잖아. 난 왜 고모가 ,,, . 
    잠깐, 내 말 먼저 들어봐. 
    그렇다고 해도 우린 아직 커닝햄 사람들과는 달라. 
    언젠가 아빠께서 고모가 우리 가족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이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어. 
    그건 우리가 가풍을 제외하곤 단 한 푼도 물려 받은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어휴, 오빠. 난 모르겠어. 아빤 내게 전통있는 가문 사람들은 어리석은 편인데, 
    그건 가문이 오래된 만큼 속물근성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그래서 흑인들이나 영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냐고 여쭤봤더니 그렇다고 하셨는걸. 
    가풍이 오랜 가문을 뜻하는 건 아니야. 
    가문이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읽고 쓰기를 해왔느냐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스카웃, 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했는데, 이것이 유일한 이유일 거야. 
    핀치 집안의 조상 가운데 어느 분이 
    이집트 어디에선가 상형문자나 숫자를 배워와서 아이들에게 가르쳤겠지. 
    오빠는 웃으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고모가 증조할아버지가 읽고 쓰셨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걸 생각해봐. 
    여자들은 별 희한한 걸 가지고도 자랑으로 여기니까. 
    나도 증조할아버지가 읽고 쓰신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빠가 읽고 쓰시지 못했다면 난 곤경에 빠졌을 테니까. 
    그래도 난 그런 것이 가풍과 관계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오빠. 
    그렇다면 커닝햄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월터 아저씨가 힘겹게 사인하는 걸 봤어. 
    우리 가문이 그 집보다 더 오래 전부터 읽고 쓰기를 해온 거야. 
    아니야, 사람은 다 배우면서 알아가는 거야.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아는 건 아니라구. 
    월터도 자기가 하는 일은 잘 알아. 
    밖에 나가서 아빠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뿐이지.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오빠, 난 사람들은 모두 한 종류뿐이라고 생각해. 
    오빠는 몸을 돌려 베개에 펀치를 먹이곤 머리를 편하게 기댔다. 
    오빠는 차츰 우울해졌고 나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오빠의 눈썹이 한데로 모이고, 입술은 가는 선이 되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오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걸까? 
    그들이 모두 동등하다면 왜 고의적으로 서로를 경멸할까? 
    스카웃, 난 이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
    난 왜 부 래들리가 집 안에만 틀어박힌 채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 . 
    그건 단지 그 안에 머물고 싶기때문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