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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4. 숙녀들의 세계1.

Joyfule 2009. 3. 15. 01:0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4. 숙녀들의 세계 1   
    칼퍼니아 아줌마는 방금 풀을 먹여 다린 듯한 빳빳한 앞치마를 두르고 
    쟁반에 푸딩을 나르느라 엉덩이로 문을 지긋이 밀었다. 
    나는 음식이 가득 담겨 있는 쟁반을 
    그렇게 손쉽고 자연스럽게 다루는 솜씨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알렉산드라 고모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오늘은 칼퍼니아 아줌마가 식탁을 차리도록 했다.
    벌써 구월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내일이면 딜은 메리디안으로 떠날 것이다. 
    오늘 그와 오빠는 베이커스에디 강으로 떠났다. 
    오빠는 자기에겐 마치 걷는 것만큼이나 쉬운 수영을 
    딜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놀라워했다. 
    그들은 샛강에서 이틀 낮을 보냈는데 
    발가벗고 있을 거라며 나는 오지 못하게 했다. 
    따돌려진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으로 
    칼퍼니아 아줌마와 머디 아줌마 사이에서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알렉산드라 고모는 그녀가 가입한 선교단체 사람들과 함께 
    거실에 가득 모여 유익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므루너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관해 보고하는 
    그레이스 메리웨더 부인의 목소리가 부엌에까지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므루너 사람들은 때가 되면 여자들을 오두막 밖으로 내보낸다고 했다. 
    그들은 가족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 부분이 고모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열네 살이 되면 무시무시한 의식을 치르게 하는데 
    그것은 지렁이처럼 지그재그로 기게 한다든가, 
    나무껍질을 씹어서 각자 준비한 항아리에 뱉아놓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 나무껍질에 취하는 경우도 있고.....
    그레이스 부인의 보고가 끝나자 다과를 들기위해 토론을 잠시 보류했다. 
    나는 식탁 쪽으로 가야 할지 밖으로 나가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고모는 이런 자리에 어울릴 필요도 없을 뿐더러 
    보나마나 지루한 일이니 다과를 들 때만 함께 있으라고 했었다. 
    나는 일요예배 때 입는 분홍색 원피스와 구두 그리고 패티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실수로 뭐라도 묻히게 된다면 칼퍼니아 아줌마는 내일을 위해 
    즉시 내 옷을 빨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그녀에게 무척 바쁜 날이지 않은가.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아줌마? 
    내가 도울 만한 몇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대하며 말을 건네자, 
    칼퍼니아 아줌마가 출입문에 멈춰서서 대답했다.
    저쪽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내가 오면 쟁반에 담는 일을 도와주렴. 
    그녀가 문을 열자 부인들의 부드러운 콧노래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알렉산드라, 난 정말이지 이렇게 맛있는 푸딩은 처음이에요.
    정말 훌륭해. 난 빵껍질이 이렇게 되도록 구워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정말 안되던데 ,,, 누가 이 작은 딸기파이를 ,,, 칼퍼니아? ,,, 
    그것을 누가 생각이나 ,,, 
    그 목사부인에 대해 누가 말해주지 않았나요 ,,, 
    아뇨, 아, 그녀는 아직 걷지를 못하고 ,,, . 
    그녀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새로운 음식이 나왔음이 분명했다. 
    칼퍼니아 아줌마는 엄마가 쓰던 은주전자를 쟁반에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 커피 주전자는 참 진기하기도 하지. 
    요즈음은 이렇게 만들지 못해. 
    내가 가져 갈까요? 
    그럼 한 번 해보렴.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져가서 테이블 끝에 내려놓고 
    잔도 함께 내려놓아라. 
    따르는 건 고모가 하실 테니까. 
    나는 칼퍼니아 아줌마가 했던 대로 
    등으로 문을 밀어보았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줌마가 지긋이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조심해, 무거우니까 그걸 쳐다보지 말아라. 
    그러면 엎지르지 않을 거야. 
    나의 모습은 성공적이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여기 앉으렴, 진 루이스. 
    이것은 나를 숙녀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일부이리라.
    그날의 모임을 주관하는 여주인들은 침례교도든 장로교도든 
    그들의 이웃을 티타임에 초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것은 라이첼 아줌마, 머디 아줌마, 
    그리고 스테파니 크러포드 아줌마의 참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머디 아줌마 옆에 앉았다. 
    숙녀들께선 왜 길 하나를 건너오는 데도 모자까지 써야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 . 
    부인들 여럿이 모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녀들에게선 종잡을 수 없는 염려와 
    어딘가에 숨겨진 확고부동한 욕구들로 가득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알렉산드라 고모가  망쳐버렸다 라고 표현하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파스텔 톤의 부서질 듯한 얇은 옷차림을 한 부인들의 모습은 시원해 보였다. 
    대부분은 파운데이션만 두껍게 펴바르고 립스틱은 칠하지 않았다. 
    한 명만이 립스틱을 칠했는데, 그렇다 
    해도 엷은 주홍빛 정도였다. 
    손톱에는 연분홍빛이 반짝였는데, 몇몇 젊은 부인들은 장밋빛이었다. 
    그녀들의 향기는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 의자의 팔걸이를 단단히 움켜잡고는 누군가 말을 건네오길 기다렸다. 
    드디어 머디 아줌마의 금니가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