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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4. 숙녀들의 세계4

Joyfule 2009. 3. 18. 03:3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24. 숙녀들의 세계4   
    그것으로 나는 세상여자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머디 아줌마와 고모는 한 번도 가까이 지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고모는 그녀에게 무언의 감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고모가 도움받은 것에 대해 사무치도록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녀들의 세계인 듯 했다. 
    물론 나 역시 얼마 후면 온갖 향내를 풍기며 천천히 흔들거리며 
    우아하게 부채질하면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있는 
    이 숙녀들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난 아직은 아버지의 세계에 더 가까이 있었다. 
    헥 테이트 씨 같은 사람들은 짐짓 순진한 질문으로 
    상대방을 골탕먹이거나 놀려댈 마음이 없는지도 모른다. 
    젬 오빠까지도 상대가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는 이상 크게 비판적이지는 않았다.
    숙녀들은 남자들에 대해 어렴풋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꺼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들이 좋았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도박을 하고 폭언을 퍼붓더라도 말이다. 
    몹시 신이 나서 떠들어댈 때라도 그들에게선 왠지 깊이가 느껴졌다. 
    그들에겐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그 무엇이 ,,, .
    위선자란, 퍼킨스 부인, 타고난 위선자란 말입니다, 
    최소한 그런 죄의식을 양 어깨에 지고 있진 않아요. 
    메리웨더 부인이 계속했다.
    저 북부 양키들이 그들을 놓아주긴 했죠. 
    하지만 그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걸 볼 수는 없을 거예요, 
    절대로. 최소한 우리는  그래, 너희들은 우리와 동등하다. 
    그러니까 저만치 물러나 주시지 라는 식의 기만은 없어요. 
    여기 우리 남부 사람들은  너흰 너희 방식대로 살아라. 
    우린 우리대로 살겠다 라고 말할 뿐이니까요. 
    제 생각으론 그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은 실성한 것 같아요. 
    단지 실성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죠. 
    버밍햄까지 내려와서 그 검둥이들과 같이 앉다니 
    ,,, 만일 내가 버밍햄 시장이었다면 난 ,,, . 
    그렇다, 우리들 중 누구도 버밍햄 시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단 하루만이라도 앨라배마의 주지사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교회의 선교단체가 숨돌릴 틈도 없이 톰 로빈슨을 풀어주리라.
    나는 어느 날 칼퍼니아 아줌마가 라이첼 아줌마네 요리사에게 
    톰이 그 판결을 그렇게 간단히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딱한 일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말을 그치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쉽게 침묵하는 건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톰이 교도소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핀치 변호사님. 
    이젠 해주실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애쓰셔도 소용없습니다. 
    또한 톰은 교도소로 가면서 모든 희망을 버렸는데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위로한 아버지의 말씀을 전했다. 
    라이첼 아줌마네 요리사는 아버지가 왜 석방될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했다면 톰에게 훨씬 큰 위안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칼퍼니아 아줌마는 그건 법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법률가의 가정에서 가장 먼저 배울 것은 
    어떤 일에도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엔 절대 함부로 약속하는 분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때 일을 떠올리고 있는데 
    앞문이 세차게 닫히고 아버지가 복도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반사적으로 시간을 떠올렸다. 
    아직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시간이 아니었고 
    게다가 선교모임이 있는 오늘 같은 날에는 대개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모자는 손에 들려 있었고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신경쓰지 말고 모임을 계속하십시오. 
    알렉산드라, 잠깐 부엌으로 나올 수 있을까? 
    난 잠깐 칼퍼니아와 갈 곳이 있어서 ,,, . 
    아버지는 식당으로 곧장 가지 않고 뒤쪽 복도를 지나 
    뒷문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알렉산드라 고모와 나도 따라갔다. 
    잠시 후 식당문이 열리고 머디 아줌마가 들어왔다. 
    그러자 칼퍼니아 아줌마가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칼, 헬렌 로빈슨네 집에 같이 좀 가줘야겠소. 
    무슨 일인데요? 
    고모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톰이 죽었어 ,,, . 
    고모는 하얗게 질린 채 손을 입에 갔다댔다.
    그를 쐈다는구나. 
    그때가 운동시간이었는데 그가 도망쳤다는군. 
    별안간 이성을 잃고 미친 듯 뛰어가 담을 넘더라는 거야. 
    바로 그들 앞에서 말이다 ,,, . 
    그를 막으려고도 하지 않았대요?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느냐구요? 
    알렉산드라 고모의 목소리가 평정을 잃고 있었다.
    그렇게 했겠지. 보초병들이 그를 세우려고 소리치고 공포를 쏘았는데도
     말을 듣지 않자 죽였다는 거야. 
    그가 막 담을 넘으려는 순간이었다더구나. 
    마치 그의 두 팔이 멀쩡하기라도 한 듯 재빨리 움직였다는구나. 
    열일곱 발이나 쏘았다니 ,,,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 . 
    칼, 헬렌에게 말할 때 날 좀 도와줘요. 
    네, 변호사님. 
    칼 아줌마는 앞치마를 더듬으며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머디 아줌마가 칼퍼니아 아줌마의 앞치마를 풀어주었다.
    그에겐 아직 기회가 있었는데 ,,, 
    이번 기회가 그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는데, 
    오빠. 
    알렉산드라 고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