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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4. 부래들리와 떡갈나무

Joyfule 2008. 12. 3. 01:06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4. 부래들리와 떡갈나무  
    그후의 학교생활도 처음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느릿느릿 계속해야 하는 지루한 숙제 같은 거였다. 
    주 정부의 배려로 공급된 수마일 정도의 도화지와 크레용에 불과했다.
    또한 나에게 교집합을 가르치는 일은 헛된 노력이었다.
    듀이 대시멀이라는 교수법은 일학년 말경 학교 전체로 퍼졌으므로 
    나는 다른 교수법과 비교할 새도 없이 내 경험 안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아버지와 잭 삼촌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최소한 두 분 중 한 분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수년간 반대 없이 주 입법부에 당선되었고 
    선생님들이 주장하는 선량한 시민의 필수인 
    청렴결백 또한 아버지에게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는 반은 듀이 대시멀로 반은 던스캡을 기초로 교육받았기에 
    혼자서나 그룹에서나 적응력이 뛰어난 듯 보였다. 
    그러나 오빠는 적당한 본보기가 아니었다. 
    책으로 배우는 걸 막으려고 개인교수제가 고안된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은 (타임)지나 손에 닿는 모든 읽을거리에서 얻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메이컴의 단조로운 학부제에 대부분 적응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나는 어쩌면 덜 지루했을 그해 열두 살 시절이 
    정확히 어떤 마음의 상태였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다.
    한 해가 지나면서 나는 세시에 끝나는 젬 오빠보다 삼십 분 일찍 수업에서 풀려났다. 
    그러고 나면 나는 래들리 집 근처에서부터 
    우리집 현관에 닿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멈추지 않고 뛰었다.
    내가 달리기를 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무언가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본 후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래들리 집 마당 끝엔 두 그루의 떡갈나무가 서 있었다. 
    그 뿌리는 길 위까지 울퉁불퉁 뻗어나와 있었다. 
    그중 한 그루가 나의 눈길을 끈 것이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내 눈높이의 옹이구멍에 은박지 같은 것이 오후의 태양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서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본 다음 그 구멍 속으로 손을 넣었다.
    겉포장이 없는 두 개의 껌. 
    나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입 속으로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서야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고는 
    다시 우리집 현관까지 뛰어와서 나의 전리품을 살펴보았다. 
    그 껌은 새것 같았다. 
    킁킁 냄새를 맡아봐도 별 이상이 없어 그것을 슬쩍 핥은 다음 
    죽는지 아닌지 기다렸다가 별 기미가 없자 마구 씹어댔다. 
    리글리 회사의 더블민트껌.
    오빠가 와서 그런 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주웠다고 대답했다.
    주운 걸 먹으면 어떡하니?
    땅에서 주운 건 아냐. 나무 위에 있었어. 괜찮은 거야.
     학교에서 오다가 저 나무옹이 안에서 주웠어.
    뭐라구? 당장 뱉지 못해! 오빠가 엄포를 놓았다.
    나는 뱉아버렸다. 어쨌든 단맛은 다 빠졌으니까.
    여태 씹어도 죽지 않았잖아. 아프지도 않더라.
    오빠가 발을 굴렀다.
    저 나무에 손대면 안 돼. 죽는단 말이야.
    오빤 그 집을 만지기까지 했잖아.
    그건 달라. 너 당장 입가심해. 내 말 안 들려? 
    안 그러면 칼퍼니아 아줌마한테 이른다.
    오빠의 명령에 따랐다. 
    아줌마랑 얽히게 되느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몇몇 이유에서 나의 학교생활은 
    칼퍼니아 아줌마와 나와의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칼퍼니아 아줌마의 전제군주적인 불공평함과 
    지나친 간섭이 일상적인 불만의 표시 정도로 그쳤고, 
    더 많은 말썽을 일으켜도 그다지 성을 내지 않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와 나는 조바심을 내며 다가오는 여름을 기다렸다. 
    우리에게 여름은 최고의 계절이었다. 
    뒷현관 간이침대에서의 휴식, 나무집에서의 낮잠, 
    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며 음식 등이었다. 
    또한 여름의 이글거리는 대지 위엔 갖가지 오색 빛깔이 펼쳐지곤 했다.
    그러나 여름을 가장 기다리게 하는 건 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