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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5. 그집은 그저 슬픈 집을 뿐이야 1

Joyfule 2008. 12. 7. 01:25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5. 그집은 그저 슬픈 집을 뿐이야 1.  
    나의 투정이 받아들여져서 당분간 
    그 놀이가 지연되리라 판단했지만 오빠는 여전히 놀이를 계속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확실하게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못하게 하더라도 오빠는 
    배역의 이름만 바꾸면 어떤 연극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딜은 이 계획에 무조건 찬성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놀이를 시도할 땐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젬 오빠의 모든 점을 추종했다. 
    초여름에 딜은 내게 결혼신청을 했는데, 금방 잊어버린 듯했다. 
    또한 나를 잘 지켜보고 점찍어 놓았으며 
    자기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애라고 말했다가도 역시 금방 잊어비린 듯했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그를 때렸지만 효력이 없었다. 
    여전히 오빠라고만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집 위에서 함께 궁리를 하다가 
    오로지 세 번째 역할이 필요할 때만 나를 불렀다. 
    나는 계집애라 불리는 것이 속상해 바보 같은 놀이에는 절대 끼여들지 않고 
    머디 애킨슨 아줌마와 함께 아줌마네 현관에서 
    저녁노을이 물들어가는 광경을 바라보곤 했다.
    오빠와 나는 철쭉꽃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 후 
    늘 머디 아줌마네 마당을 자유로이 뛰어다녔지만 
    아줌마와는 그다지 가깝게 사귀진 못했다. 
    오빠와 딜이 나를 소외시키기 전까지는 단지 인자한 성품의 이웃 아줌마일 뿐이었다. 
    우린 그집 정자만 빼놓고는 언제나 잔디 위에서 놀기도 하고 
    넓디넓은 뒷마당을 누비고 다닐 수도 있었다. 
    아줌마는 관대했지만 우리는 그 무언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오빠랑 딜의 행동거지로 나는 머디 아줌마랑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머디 아줌마는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낭비라 했다. 
    그녀는 미망인이었는데 멜빵 달린 작업복 바지에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 종일 꽃밭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오후 다섯시가 지나 샤워를 하고 
    카멜레온처럼 달라진 모습으로 현관에 나타난 아줌마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그 거리를 압도하곤 했다.
    아줌마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잡초까지도 ,,,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건 너트풀이었다. 
    작은 잎사귀 하나라도 발견할 때면 제1차 대전 때 
    마린 강가에서 전투를 하듯 우리를 멀리 떼어놓고 
    철뚜껑으로 짓누른 다음 독한 제초제를 밑등부터 뿌려댔다.
    그냥 뽑기만 하면 안 되나요? 
    나는 손가락만한 잎사귀에 그렇게 요란스럽게 
    방역하는 것이 이상스럽게 여겨져 물어보았다. 
    뽑아버려야 해, 스카웃. 저기도. 
    머디 아줌마는 연한 싹을 뽑아서는 손가락으로 비벼댔다. 
    약간의 풀즙이 스며나왔다.
    이것 봐. 너트풀 하나가 마당 전체를 망쳐놓곤 한단다. 
    가을철이 되면 마른 풀이 바람에 날려 메이컴 전체가 너트풀 천지가 되지. 
    아줌마는 마치 옛날 흑사병 이야기라도 하듯이 진지했다.
    메이컴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의 말씨는 명쾌했다. 
    아줌마는 우리 모두에게 성과 이름을 함께 불러주었고 
    생긋이 미소지을 땐 섬세해보이는 금니가 드러나보이기도 했다. 
    내가 감탄하면서 아줌마처럼 금니를 갖고 싶다고 하면 
    혀차는 소리를 내며 의치를 밀어보였다.
    자, 이걸 보렴. 
    진지한 아줌마의 그런 몸짓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머디 아줌마는 젬 오빠와 딜에게도 항상 따뜻이 대해주었다. 
    아줌마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우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그다지 자랑삼지 않는 아줌마의 음식솜씨를 한껏 누릴 수 있었다. 
    아줌마는 커다란 케이크 하나와 
    작은 케이크 세 조각을 구워놓은 다음 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젬 핀치, 스카웃 핀치, 찰스 베이커 해리스야, 이리 오렴. 
    우리의 재빠른 행동은 언제나 아줌마의 보상을 받았다. 
    여름의 황혼 무렵은 길고도 평화로웠다. 
    요즘 들어 나와 머디 아줌마는 현관에 우두커니 앉아 
    하늘이 노랑에서 빨강으로 물드는 해질녘을 바라보기도 하고 
    흰털제비가 이웃집 담 위를 살짝 스치듯 날아 
    학교 건물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차분히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아줌마. 
    어느 날 저녁 나는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부 래들리 씨가 살아 있나요? 
    그의 이름은 아서고, 물론 살아 있단다. 
    아줌마는 떡갈나무 흔들의자를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우리집 미모사꽃 냄새 좀 맡아보렴. 
    오늘은 정말이지 천사의 숨결 같구나. 
    그걸 어떻게 아세요? 
    으응, 무엇을? 
    그 부 ,,, 아니, 아서가 살아 있다는 거요. 
    그 질문은 아주 이상한데? 섬뜩한 얘기이기도 하구. 
    진 루이스, 그는 살아 있단다. 
    그가 실려나가는 걸 본 적은 없으니까. 
    그가 죽어서 박제를 해서 굴뚝에 처박아 놓았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거지? 
    오빠가 그랬어요. 
    후훗, 젬은 점점 잭 핀치를 닮아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