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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8.

Joyfule 2008. 11. 6. 01:52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7장 에바 부인 8.  
    그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할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의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나는 단지 
    완전한 고독을 맛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공동체를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결단코 행복한 사람들의 식탁이나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축제에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공동체를 보더라도 부러워하거나 향수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나는 차츰 ‘표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의 
    내밀한 냉정에 동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표지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상스럽다든가, 
    혹은 미쳤다든가, 위험스럽다고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깨달은 자 혹은 깨닫고 있는 자들이었고 
    우리의 노력은 갈수록 완전해지는 깨달음을 위해 경주되는 것이지만 
    그 반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에의 탐구는 
    그들의 의견이나 그들의 이상과 의무, 
    그들의 생활과 행복의 기준을 군중의 그것에
     점점 더 밀착시키려고 애쓰는 데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도 노력은 있었고, 그곳에도 힘과 위대성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기에는 우리들 표지를 지닌 자들은 새로운 것, 
    고립된 것, 미래의 것을 지향하는 자연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 데 반하여 
    그들은 다만 고집의 의지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류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사랑해 마지않는 인류란---
    유지되고 보호받아야 할 완성된 그 무엇이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인류란 우리 모두가 그것을 향한 도중에 있는 것이고,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법칙이 적혀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그런 아득한 미래인 것이었다. 
    에바 부인과 막스와 나를 제외하고도 
    그밖의 여러부류의 탐구자들이 가깝거나 멀거나간에 
    우리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특이한 길을 걸어 가며 
    개별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색다른 의견과 의무에 집착해 있었는데 
    점성술가와 카발라 학파나 톨스토이의 신봉자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부류의 섬세하고 수줍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과 
    새로운 교파의 신봉자들과 인도적인 수도의 구도자들과 
    채식주의자들과 그밖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과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비밀스런 삶의 꿈을 아껴주는 
    경의를 갖고 있다는 것 외의 어떤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인 일에 있어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과거 속에서 신과 새로운 구원의 영상에 대한 
    인류의 탐구의 흔적을 찾아내고 때로는 
    피스토리우스의 그것을 연상시켜주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훨씬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책들을 가져와서 고대 언어의 원서를 해석해주었고, 
    고대의 상징물이나 의식의 도해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이 소유했던 이상이란 
    결국 모두가 무의식적인 영혼의 꿈과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그 속에서 자기의 미래의 가능성의 예감을 추구하고자 한 
    꿈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고대 세계의 그 이상스러운 
    천 개의 머리를 가진 신들의 무리에서부터 
    기독교적인 개종의 여명에 이르기까지를 섭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종교가 고독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고해에서 
    민족과 민족으로 옮겨간 변천의 궤적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이 수집한 모든 자료를 통해서 
    우리들의 시대에 대한 비평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고, 
    방대한 노력으로 강력하고도 우수한 무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져가고 있는 
    현대 유럽에 대한 비평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은 온 세계를 얻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여기에도 물론 약간의 희망과 구제론의 신자와 고해자가 있었다. 
    유럽을 개종시키려는 불교 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톨스토이 신봉자와 그밖의 여러 종파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이들 교의들의 어느 것도 상징 이외의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 표지를 지닌 자들에겐 미래의 형성에 대한 
    아무런 염려도 책임지워져 있진 않았다. 
    우리들에게는 모든 교파와 모든 구제론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버려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