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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12.★ 목숨을 건 항해

Joyfule 2006. 4. 2. 08:21


호메로스 -《오디세이아》12. 

★ 목숨을 건 항해


마녀 키르케의 섬으로 돌아와 오뒤세우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엘페노르의 시체를 태우고 무덤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오뒤세우스는 무덤 위에다 평소에 엘페노르가 젓던 노를 꽂아 무덤의 표지로 삼았다.
이어서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 날 밤, 오뒤세우스 일행이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안 키르케는
오뒤세우스에게 뱃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장애물을 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키르케가 말한 장애물이란 바로 사이렌, 떠다니는 바위산, 그리고 스퀼라와 카립디스였다.

오뒤세우스는 키르케의 말을 귀담아듣고는 한 마디도 빠짐없이 마음에 새겼다.

새벽이 되자 오뒤세우스 일행은 키르케와 이별했다.
키르케는 해변을 서성거리다 숲 속으로 들어갔다.
오뒤세우스 일행은 배에 올라 다시 한 번 미지의 난 바다로 나갔다.

처음에는 마녀 키르케가 마지막으로 준 선물인 순풍 덕분에 쉽게 항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그 순풍이 멎었다.
순풍이 멎은 뒤부터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그 고요한 바다 위로 꽃이 만발한 풀밭 같은 섬 하나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때, 그 섬에서 들릴락말락한 여자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노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흡사 듣는 사람들을 명주실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뒤세우스는 키르케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풀밭의 꽃들 사이에 앉아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사이렌 무리였다.
언뜻 보면 사이렌 무리가 노래를 부르는 곳은 꽃밭이지만 그 풀밭의 꽃과 키 큰 풀 사이에는,
그 노랫소리에 홀려 목숨을 잃은 뱃사람들의 뼈가 널려 있었다.
사이렌의 노래는 지나가는 뱃사람들의 혼을 빼는 노래인 것이었다.

바람이 자고 있어서 뱃사람들은 노를 저어야 했는데 오뒤세우스는 문득
노 젓는 손길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그는 키르케에게서 받은 커다란 밀랍 한 덩어리를 꺼내어 이것을 잘게 잘라
뱃사람들에게 주고는 모두들 그것으로 귀를 막게 했다.
그래야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뒤세우스 자신은 저 사이렌 무리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유혹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자기 몸을 아주 굵은 밧줄로 돛대에다 묶게 했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자기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아무리 호령하더라도,
사이렌의 섬을 다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풀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하게 일러두었다.
부하들은 오뒤세우스의 명령대로 그의 몸을 돛대에 꽁꽁 묶고는
노 젓는 자리로 돌아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배가 섬 옆을 지나고 있을 때 뱃사람들 눈에는 아름다운 처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뒤세우스의 귀에는 모래톱에 부딪쳐 찰랑거리는 물소리 너머로 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오뒤세우스여,
그대 그리스 연합군의 꽃이여. 가까이 오세요.
그대의 지친 배를 쉬게 하고 우리의 노래를 들으세요.
우리들 노랫소리는 벌집 속의 꿀만큼이나 달답니다.
우리는 세상일을 다 알고 있지요.
트로이아 전쟁 전에 있었던 일도 알고,
장차 탐스러운 이 땅에서 일어날 일도 다 알고 있답니다.

 



 
오뒤세우스의 가슴속에서는 사이렌 무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길처럼 일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어서 빨리 풀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뱃사람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뱃사람들은 죽으라고 노만 저었다. 배는 빠른 속도로 섬을 지났다.
섬이 배의 고물 뒤로 사라지면서 사이렌 무리의 노랫소리도 잦아들었다.

그제서야 뱃사람들은 귀에서 밀랍덩어리를 뽑아내고
선장인 오뒤세우스를 돛대에서 풀어 주었다.
오뒤세우스는 사이렌 무리가 그리웠던지, 온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이로써 키르케가 말한 바다에서의 첫 번째 재난은 피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두 번째 재난이 닥쳤다.
하늘로 치솟는 물보라 속에서 꼭대기가 구름에 닿을 듯한 거대한 검은 바위산 두 개가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두 개의 바위산 사이로 산골의 강물 줄기 같은 좁은 뱃길이 나 있었다.
왼쪽 바위산 기슭에는 거품을 뿜어 올리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있었다.
바로 그 밑에서 바다의 괴물 카립디스가 하루에 세 차례씩 바닷물을 빨아들였다가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카립디스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가 무사히 빠져 나온 배는 한 척도 없었다.

오른쪽 바위산 중턱에는 또 하나의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 바위산 중턱의 굴속에 사는 괴물의 이름은 스퀼라였다.
이 스퀼라는 머리가 여섯 개인 괴물이었다.
스킬라의 가늘고 긴 여섯 개의 목에는 비늘이 덮여 있었다.
각각의 아가리 안에는 세 줄의 날카로운 이빨이 나있었다.
아가리 앞에는 각각 열두 개의 긴 더듬이가 있고 더듬이 끝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었는데,
스퀼라는 바로 이 갈고리로 먹이를 잡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스퀼라의 먹이는 큰 물고기나 돌고래가 대부분이었다.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역시 스퀼라의 먹이가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오뒤세우스는 이 모든 것을 키르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또한 파도가 일렁거릴 때마다 불쑥불쑥 드러나는 오른쪽 바위산과 왼쪽 바위산의
뾰족뾰족한 밑동의 암초는 여느 암초처럼 바다 밑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밑동의 암초들은 사실, 배든 바닷새든 그 사이로 지나가면 한 쌍의 심벌즈처럼 부딪쳐
그 사이에 든 것을 갈아 버리고는 했다.
이 두 암초가 맞부딪친 자리에 남는 것은 나무 부스러기, 사람의 시체,
피에 젖은 깃털 같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신들 사이에서 그 두 바위산은 <떠다니는 바위산>이라고 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