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호메로스 -《오디세이아》19.★ 나우시카 공주

Joyfule 2006. 4. 12. 02:46

호메로스 -《오디세이아》19.  
★ 나우시카 공주
오뒤세우스가 강둑의 올리브 나무 밑에서 낙엽을 덮고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을 즈음, 
그 나라 왕궁의 공주 나우시카 역시 잠을 자고 있었다. 
나우시카의 꿈속으로 아테나 여신이 공주의 친구, 선장의 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공주의 친구는, 어떻게 보면 초조해 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장난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침대 머리맡에 앉아 말했다.
 "나우시카, 너는 정말 네 엄마의 한심한 딸이구나. 
방에 널린 이 많은 옷가지를 좀 보아라.  
이 땅의 귀족 청년들이 모두 너에게 눈독을 들이는데, 
이래 가지고 시집은 제대로 갈 수   있겠니?
 결혼식 때 혼수가 들어오고 손님들이 선물을 줄 것이니 옷이 또 얼마나 늘어나겠니?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강으로 빨래하러 가자. 수레에다 빨랫감을 싣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나우시카는 간밤에 꾸었던 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우시카는 그 나라 왕인 아버지에게 달려가, 
빨랫감을 싣고 강으로 빨래하러 가야겠으니 
나귀가 끄는 수레 한 대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두 마리의 나귀가 끄는, 아주 잘 달리는 수레를 한 대 빌려주었다. 
하녀들은 빨랫감을 수레에다 실었고 어머니인 왕비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물론, 
딸과 하녀가 멱을 감은 뒤에 몸에 바를 올리브 기름도 한 병 마련해 주었다. 
나우시카는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는 수레를 천천히 강변으로 몰았다. 
하녀들은 걸어서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들은 강변에 이르렀다. 
강변에는 물이 아주 맑고 얕아서 빨래하기에 좋은 데가 있었다. 
나우시카와 하녀들은 나귀를 풀 밭에 풀어 주고 빨래를 시작했다. 
하녀들은 흐르는 물속의 넓적한 바위에 빨랫감을 올려놓고는 발로 밟고 나서 
맑은 물에 헹구고 강변 조약돌밭에다 널어 태양과 바람에 말렸다. 
옷이 마를 동안 공주와 하녀들은 가죽공으로 공놀이를 시작했다.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공을 던지고 받는 놀이였는데, 
돌림 노래의 선두를 맡은 사람은 바로 공주였다. 
이들의 놀이터에 아테나 여신이 살며시 끼어들었다. 
물론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우시카가 하녀 하나에게 공을 던지자 아테나 여신은 일부러 이 공이 
그 하녀를 빗나가 강 가장자리의 물 위에 떨어지게 했다. 
그러자 하녀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올리브 나무 밑에서 잠들어 있던 오뒤세우스가 깨어났다. 
공주 일행의 놀이터는 오뒤세우스가 잠을 자던 올리브 나무에서
창을 던지면 바닥에 떨어져 꽂힐 만한 거리에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오뒤세우스는 반쯤 몸을 일으킨 채 
가만히 처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적의 기습을 받은 가까운 마을 여자들의 비명 소리이거나 
성질 고약한 주인에게 얻어 맞는 하녀들의 비명소리이거니 했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해지면서부터는 처녀들이 놀이하면서 지르는 환호성으로 들렸다. 
처녀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올리브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알몸을 가린 다음 천천히 걸어나갔다. 
 하지만 맨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오랜 고생으로 얼굴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으며, 
멋대로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에는 소금기가 허옇게 서려있었다. 
처녀들에게 그는 덤불 속에서 튀어나온 사자같이 무시무시한 존재로 비쳤을 터였다. 
하녀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우시카공주는 다가오는 오뒤세우스를 침착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LASTMAN, Pieter Pietersz(1583-1633),Odysseus and Nausicaa
오뒤세우스는 공주에게 다가가 공주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애원하고 싶었지만 
공주가 두려워 할까 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공주에게 말했다. 
 "젊으신 아가씨. 여신이신가요, 아니면 인간 세계의 여느 아가씨인가요? 
여신이시라면 틀림  없이 저 초승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이실 테지요. 
인간 세계의 여느 아가씨라면,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라버니들은 참으로 복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그대같이 아름다운 처녀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참으로 자랑스러우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행복을 누리실 분은 역시 아가씨에게 사랑과 결혼 선물을 안기고 
아가씨를 모셔가는 젊은이일 테지요. 
나는 아가씨같이 완벽하게 아름다우신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 델로스 섬에서 한번 본 적은 있습니다. 
아폴론 신의 제단 옆의 샘물을 마시며 자라는 어린 종려나무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움을 청할 데는 아가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입니다. 
여러 날 바다의 폭풍에 시달리다 여기에 닿은 것은 어제의 일입니다. 
어떤 신께서 저를 이 해변으로 데려다 주신 것일 테지요. 
그러나 저는 여기가 어디인지, 어떤 불행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헌 옷 한 벌만 주시고, 
가까운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신들이 아가씨에게, 아가씨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젊은이를 베푸시어 
행복한 가정을 꾸미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러자 공주가 대꾸했다.
 "나그네여, 나쁜 분 같지는 않구려. 말씨를 보아하니 교양 있는 분이신 것 같군요. 
우리 나라의 해변으로 그대를 보내신 분은 사람을 고르시어 
행복과 슬픔을 베푸시는 제우스 신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알몸을 가리실 옷을 얻으실 수 있을 테지요. 
그리고 제가 그대를 마을로 안내하여 지극한 환영을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바로 이 섬나라 파이아케아를 다스리시는 
알키노스 왕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공주는 이어서, 오뒤세우스의 출현에 놀라 멀찍이 도망쳐 저희들끼리 모여 
수군대고 있는 하녀들에게 소리쳤다.
 "애들아,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냐? 이 가엾은 나그네가 보이지도 않느냐?
세상의 배는 한척도 지나가지 않는 섬나라, 신 같은 사람들이 사는 
머나먼 우리 섬나라로는 나쁜 사람이 온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분은 운이 나빠 이곳에 오신 나그네이시다. 어서 이리로 오너라. 
이분이 알몸을 가리실 수 있도록 옷 한 벌을 가지고 어서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