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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1. ★ 나우시카 공주

Joyfule 2006. 4. 14. 02:18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1. ★ 나우시카 공주 
궁전 문으로 들어선 오뒤세우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궁전 뜰에는 배나무, 석류나무, 사과나무 등 과일 나무가 많았다. 
무성한 잎 사이로 반짝거리는 과일들이 보였다. 
올리브, 무화과, 포도나무도 있었다. 
나무들은 가까이에 있는 샘물에 흠씬 젖어 있었다. 
땅바닥으로 스며드는 은빛 샘물의 물줄기에서 나는 
소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뜰이 아름다웠다고는 하나 그 뜰이 
오뒤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뒤세우스의 앞에는 궁전임에 분명한, 
무수한 기둥을 거느린 하얀 건물과 안뜰이 있었다. 
그는 그 건물로 다가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지만 오뒤세우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넓은 연회장 안에서 왕은 무수한 신하들을 거느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왕의 옆에는 왕비가 많은 시녀들을 거느린 채 앉아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왕비 바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다음에야 아테나 여신은 모습을 가리는 안개를 걷었다. 
그제서야 그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였다. 
연회장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웬 사람이 하나 난데없이 왕비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침묵을 깨뜨리고 오뒤세우스가 왕비에게 탄원했다. 
"왕비마마. 폭풍에 밀려 이 나라의 해변으로 밀려온 나그네가 인사 올립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시어, 저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 배 한 척을 내어 주십시오. 
제가 마지막으로 제 고향의 벽난로 앞에 앉아 보았던 이후로 실로 
길고도 험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불쌍한 분이 시군요. 우리가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대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면 ……."
왕비가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알키노스 왕이 왕비를 말허리를 잘랐다.
"내 궁전은 어떤 나그네든 다 환영하오. 왕비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음식을 드시오. 그리고 난 뒤에 대답해도 늦지 않아요."
오뒤세우스는 반짝거리도록 닦은 의자에 앉았다. 
하녀들이 손을 헹굴 물을 가져다 주었다. 
고기 베는 사람은 쇠고기를 두툼하게 잘라 접시에 놓아주었다. 
빵도 있고 과일과 포도주도 있었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는데도 불구하고 궁전의 대신들 사이에 섞여 
음식을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강변에서 공주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기는 했으나 
그것은 겨우 허기를 면할 만한 양이었다.
이윽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대신들은 모두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다. 
연회장에는 오뒤세우스와 알키노스 왕과 아레테 왕비 
이렇게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오뒤세우스는 왕과 왕비에게 트로이아에서 고향으로 가다가 
뱃길을 잘못 든 경위,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7년 동안 살았던 사연, 
칼립소의 손에서 풀려나 쪽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 사연을 얘기했다. 
뿐만 아니었다. 포세이돈의 원한을 사는 바람에 배가 난파한 경위, 
파이아케아 해변으로 밀려오기까지의 경위를 말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해변으로 오른 저는 지친 나머지 올리브 숲으로 들어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다가, 가까이서 공주님과 하녀들이 놀면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저는 공주 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공주 님은 저에게 강변에서 빨아 말린 겉옷 한 장과 먹을 것, 
마실 것을 준 것은 물론, 몸에 바를 올리브 기름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궁전으로 오는 길까지 가르쳐 주셨답니다."
오뒤세우스의 말이 끝나자 왕이 혀를 찼다. 
"내 딸이 큰 잘못을 저질렀군요. 
나그네를 홀로 남겨 두지 말고 내게로 모시고 왔어야 했던 것을……. 
결국 내 딸은 그대가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당사자이니,
이제 그대를 도와 주고 말고는 내 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오."
오뒤세우스가 재빨리 나우시카 공주를 변호해 주었다.
"아닙니다, 전하. 그런 일로 따님을 꾸짖지 말아 주십시오. 
따님께서는 저에게 하녀들과 함께 마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성과 오래 떨어진 채 살아왔던 나머지 
수줍은 마음이 생겨 여성들과 함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따님께서 수레 뒤에다 나그네를 달고 돌아오면 
전하께서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처녀의 아버지는 누구나 질투심이 강한 법이니까요."
  알키노스 왕은 오뒤세우스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푸근하게 웃었다.
"나는 질투나 하는 사람이 아니오. 그대 같은 나그네도 짐작하듯이 
나는 나그네에게도 능히 딸을 줄 수 있는 사람이오. 
그대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내집에서 
머물기로 한다면 나는 그대와 내 딸을 위해 새 집을 지어 줄 용의도 있어요."
왕이 이렇게 말했던 것은, 아직은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처지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귀족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만큼 
지혜롭고 힘도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왕은 나그네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고,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보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대가 기어이 먼 데 있는 그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나는 그대를 위해 배를 마련해 주고 내 왕국에서 
가장 힘이 좋은 노잡이들도 그 배에 붙여 주겠소."

왕비 아레테가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내일 해도 좋지 않겠어요? 잠자리에 드셔야 할 시각입니다."
왕비는 하녀들에게 명을 내려 왕궁 안의 손님방에 융단을 깔게 하고 
부드러운 베개도 가져다주게 했다. 
오뒤세우스는 보랏빛 이불을 덮고 그 날 밤은 편히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