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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0. ★ 나우시카 공주

Joyfule 2006. 4. 13. 01:43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0.  ★ 나우시카 공주 
 처음에는 쭈뼜하던 하녀들이 오뒤세우스 가까이 다가왔다. 
하녀들은 오뒤세우스를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는 오리나무 숲으로 안내하고는
 마른 옷가지 중에서 겉옷 한 벌을 가져다 주었다. 
하녀 중 하나는 병 바닥에 남아 있던 올리브 기름을 따라, 
바닷바람에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오뒤세우스의 얼굴에 발라 주었다. 
오뒤세우스는 하녀들에게 말했다.
 "옷을 주시고 기름까지 발라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잠시 물러가 주셨으면 합니다. 
숙녀들 앞에서 목욕을 하고 이 옷을 입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녀들은 오뒤세우스만 남겨 두고 공주에게 달려갔다. 
오뒤세우스는 강둑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온몸과 머리카락에 묻어 있던 
소금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오랜 바다 여행에서 부드러움을 송두리째 잃어 버린 
피부에는 올리브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머리카락도 올리브 기름을 발라 문질렀다. 
그러자 히아신스 꽃잎 같은 곱슬머리가 되살아났다. 
그런 다음에야 그는 하녀들이 가져다 준 겉옷을 입고는 물에서 나가 강둑에 앉았다.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던 나우시카의 눈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강둑에 앉아 있는 오뒤세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공주의 눈에는 오뒤세우스가 그렇게 잘난사람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공주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하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분을 우리 나라의 해변으로 보내신 것은 신의 뜻이 아닐까? 
처음에 저분을 보았을 때는 그렇게 흉하게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 신들도 저렇게 늠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곳에서 사시게 하여 내 신랑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만…… 아니지, 
이렇게 허튼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얘들아, 저분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갖다 드리자."
그들은 왕비가 마련해 준 음식 중에서 저희들끼리 먹고 마시다 남은 것을 
오뒤세우스에게 가져다 주었다. 
오뒤세우스는 여러 날을 굶은 터라 맛있게 먹고 마셨다. 
그가 먹고 마시고 있을 동안 공주와 하녀들은 햇빛과 바람이 말린 옷가지를 걷어 
수레에 싣고, 풀을 뜯고 있던 나귀들을 몰아와 수레 앞에 매었다.
 오뒤세우스의 식사가 끝나고, 궁전으로 돌아갈 준비도 끝나자 
공주는 수레에 올라 나귀의 고삐를 잡았다. 공주는 오뒤세우스를 가까이 불렀다. 
오뒤세우스가 와서 수레 바퀴 옆에 서자 공주가 말했다.
 "이제 우리 아버지의 궁전으로 들어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세요.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시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논밭을 지날 동안에는 하녀들과 함께 걸어서 수레를 따라 오세요. 
하지만 마을이 가까워지고, 양쪽에 배 짓는 집이 나란히 서 있는 항구에 이르거든 
우리 일행에서 떨어져 항구 가까이 있는 백양나무 숲으로 들어가세요. 
그 숲이 바로 아테나 여신의 숲이랍니다. 
우리 일행이 마을로 들어가고, 궁전으로 들어 갈 때까지 거기에서 기다려야 해요. 
만약 제가 밖에서 남정네를 데리고 들어갔다는 말이 나돌면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 일행이 궁전으로 들어갔다고 여겨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자서 들어오세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면 궁전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아버지의 궁전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문지기도 없으니까 그냥 들어오셔도 됩니다. 
숲 속의 궁전 본채에 이르시거든 바로 큰 연회장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연회장 화로 옆자리는 늘 우리 어머니가 앉으시는 자립니다. 
어머니는 하녀들에게 둘러싸인채 거기에 앉으셔서 보라색 실로 뜨개질을 하시지요. 
바로 옆에는 아버지가 앉으시는 큰 의자가 있습니다. 
만일에 아버지가 거기 앉아 계시거든 옆으로 살짝 지나쳐 어머니께 가세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무릎을 어루만지면서 도움을 청하세요.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데 필요한 배를 내어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어머니의 마음만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엇이든 도움을 베푸실 것입니다."
 오뒤세우스는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시키시는 대로하겠습니다."
 나우시카는 채찍으로 노새를 가볍게 때렸다. 
수레가 덜컹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오뒤세우스와 하녀들은 수레 뒤를 따라갔다.
  백양나무 숲에 이른 것은 해가 서쪽으로 저물녘이었다. 
오뒤세우스는 거기에서 하녀들 대열에서 벗어났다. 
숲 속에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신전에서 무릎을 꿇고 파이아케아 인들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있게 해주십사고 아테나 여신에게 기도했다. 
한동안 신전에 머문 오뒤세우스는 일어나 
궁전이 있는 마을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았다. 
지금쯤이면 공주가 궁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아테나 여신이 그를 맞았다. 
여신은 물동이를 든 마을 처녀로 변장하고 오뒤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뒤세우스는 그 처녀에게 궁전이 어느 쪽에 있는지 묻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른답니다. 
나는 뱃길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고 이곳까지 흘러온 먼 나라 사람이랍니다."
그러자 처녀로 변장한 아테나 여신이 대답했다.
  "제가 길을 가르쳐 드리지요. 저를 따라오세요. 
하지만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을 사람들 거의가 포세이돈을 섬기는 뱃사람이기는 하지만,
바다 건너편에 있는 먼 나라에서 온 나그네 뱃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처녀로 변장한 아테나 여신은 이렇게 말하고는 앞서 걸었다. 
오뒤세우스는 처녀의 뒤에 바싹 붙어 따라갔다. 
그러나 그가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줄 알지 못했다. 
여신이 오뒤세우스의 몸을 안개의 장막으로 가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했기 때문이었다. 
궁전 문까지 오뒤세우스를 데려온 여신은 
오뒤세우스가 가야 할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뒤세우스는 여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있다가 여신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신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