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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24. ★ 그리운 이타카

Joyfule 2006. 4. 17. 03:08


호메로스 -《오디세이아》24. ★ 그리운 이타카 
오뒤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이 재워 준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서 보니 파이아케아의 배는 온데간데없고 올리브 나무 밑에 홀로 누워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알키노스 왕이 갤리온 선에 실어 주었던 따뜻한 겉옷이었다. 
왕과 신하들로부터 받은 선물은 주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테나 여신이 보낸 자옥한 아침 안개 때문에 그는 주위의 지형을 살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로서는 어디에 와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테나 여신이 아침 안개의 장막을 쳐놓은 것은 오뒤세우스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테나 여시은 자기가 먼저 오뒤세우스를 만나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 것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뒤세우스는 파이아케아에서 가져온 보물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았다. 
손잡이가 은으로 된 칼도 뽑아 보았다. 
그는 해변을 걸으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해변으로 아테나 여신이 젊은이로 변장하고 나타났다. 
왕이나 귀족들이 입을 수 있는 겉옷 차림에 
창까지 한 자루 손에 든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오뒤세우스가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를 도와 주세요. 여기가 도대체 어딘가요? 이 곳 사람들은 친절한가요?"
 젊은이로 변장한 아테나 여신이 대답했다.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그대도 어지간히 아둔한 사람이군요? 여기가 어디냐니? 
이타카 섬이 아니오? 저 트로이아 전쟁터가지 이름이 알려진 이타카도 모르시오?"
조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안 오뒤세우스의 가슴 속에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오래 조국을 떠나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떠날 때 어린아이였던 젊은이들이 
19년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어떤 청년들이 되어 있을 것인지. 
자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이타카 왕좌에는 어쩌면 자기 아들이 아닌 
엉뚱한 인물이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그 젊은이에게도 자기 정체를 밝힐 수 없었다. 
젊은이로 변장한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어디에서 온 누구냐는 질문을 받자 
오뒤세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크레타 섬 사람이오."
 그러자 젊은이로 모습을 한 아테나 여신이 또 물었다.
 "아니, 크레타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보물과 함께 이타카에 와 있습니까?
 어째서 이타카 에 와 있으면서도 이 곳이 어디이지 모르는 것입니까?"
 오뒤세우스는 둘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던 크레타 사람으로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귀국했는데 크레타왕자 중의 하나가 내 전리품을 빼앗으려 했지요. 
그래서 그 왕자와 싸우다가 그만 오아자를 죽이고 말았어요. 
급하게 보물을 챙겨 가지고 포에니키아 장삿배를 타고 도망쳤지요.   
그 배의 선장은 나를 퓔로스에다 내려 주기로 약속했는데 엉뚱한 길로 들어섰어요. 
그래서 이 섬에 내려 잠을 잤는데, 
자고 있을 동안 나만 이렇게 남겨 놓고 떠난 모양이오."
오뒤세우스의 설명에 젊은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뒤세우스도 따라 웃다가 자세히 보니 젊은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름다우면서도 위풍당당한 아테나 여신이 서 있었다.

 아테나 여신이 오뒤세우스를 놀렸다.
 "꾀많은 오뒤세우스라고들 하더니 과연 잘도 둘러대는구나.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냐?
트로이아에서 그렇게 여러차레 그대를 도와 주었고 알키노스 왕의 궁전에서도 
그렇게 여러번 그대를 도와 주었는데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냐?
 오뒤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다가 볼멘 소리를 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온갖 고초를 당할 때는 저를 도와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신을 저의 수호 여신이라고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제가 어떻게 제 조국에 돌아왔다는 말씀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포세이돈 신을 노하게 하여 바다에서 그런 고초를 당했다. 
포세이돈 신은 내 아버지 제우스신의 아우가 아니냐? 
내가 어떻게 숙부와 맞서면서까지 그대를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이제 그대는 그대의 나라로 돌아왔다. 이제 나도 마음대로 그대를 도와 줄 수 있다.   
둘러 보라. 이 땅이 그대의 조국이지 아닌지, 어디 한번 둘러보라."
여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옥하던 잿빛 구름의 장막이. 해가 솟으면서 
아침 안개가 사라지듯이 말끔히 걷혔다. 
오뒤세우스는 주위의 낯익은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가 잘 알고 잇는 풍경. 그가 오래 사랑해 온 풍경이었다. 
곶 안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 항구, 해변에 깎아지른 듯이 솟은 울창한 숲의 산. 
활을 쏘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잇는 바다 요정의 동굴. 
은빛 올리브 나뭇잎에 가려진 그 동굴의 입구......모두가 낯익었다. 
오뒤세우스는 목이 메일 듯한 감격을 주체하지 못해 무릎을 꿇고 까실까실한 
조국의 흙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아테나 여신이 이런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돌아왔지만 이 나라 형편은 말이 아니다. 
그대의 아내 페넬로페는 슬픔에 잠겨 있다. 
궁전에는 왕비와 결혼하자고 조르는 불한당들이 들끓고 있다. 
그대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지만 아직 어려서 어머니를 도울 수가 없다. 
게다가 텔레마코스는 지금 그대의 소식을 들으려고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궁전에 가있다."
 오뒤세우스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외쳤다.
 "여신이시여, 지금부터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먼저, 사람들 눈에 뛰기 전에 이 보물을 감추기로 하자. 
사람들이 이 보물을 보면 그대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길 것이 아닌가?"
아테나 여신과 오뒤세우스는 파이아케아 섬나라에서 가져온 보물을 동굴로 옮겼다.
여신은 거대한 바위를 움직여 동굴의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그런 다음 여신은 마법으로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바꾸어 주었다. 
그가 입은 훌륭한 겉옷은 누더기 숫사슴 가죽 옷으로 바꾸었다. 
여신은 이어서 오뒤세우스의 살 같을 주름지게 만들고, 눈빛도 흐릿하게 만들었다. 
오뒤세우스의 모습은 영락없이 트로이아의 국보를 훔치러 성 안으로 들어갈 
당시의 거지 모습 그대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