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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7. ★ 마녀 키르케의 섬

Joyfule 2006. 3. 27. 12:55


호메로스 -《오디세이아》7. ★ 마녀 키르케의 섬  
오뒤세우스 일행은 항해를 계속하여 또 한 섬에 이르렀다. 
오뒤세우스는 여기에서도, 파도가 덜 밀려드는 조용한 해변에다 배를 대게 했다. 
이틀 밤낮 동안 오뒤세우스와 뱃사람들은 하는 일없이 가까운 해변에서 쉬었다. 
무서운 모험과 험한 뱃길에 지친 나머지 도무지 다른 일을 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오뒤세우스는 칼과 창을 챙겨들고 혼자 산을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섬 전체는 숲으로 덮여 있었다. 
섬을 덮고 있는 무수한 나무가 흡사 검은 양털 같았다. 
바다는 사방에서, 섬을 둘러싸고 있는 해변을 핥고 있었다. 
논밭이나 사람이 살 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섬의 한가운데, 숲이 가장 짙은 곳에서 실오라기 같은 
붉은 연기 한 자락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뒤세우스는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그 연기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섬에서 겪어온 무서운 일들이 생각나서 선뜻 그렇게 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배로 돌아가 뱃사람들을 잘 먹인 뒤에 
정찰대를 뽑아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오뒤세우스는 온 길을 되짚어 갔다. 해변에 이르렀을 때였다. 
붉은 사슴 한 마리가 덩굴 밑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사슴 한 마리면, 오랫동안 고생을 참아온 뱃사람들을 잘 먹일 수 있을 터였다.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사슴을 향해 창을 던졌다. 명중이었다. 
그는 사슴의 네 다리를 덩굴로 묶어 어깨 위에 둘러메고는 
창을 지팡이 삼아 짚으면서 배로 돌아왔다. 
오뒤세우스가 돌아왔을 때까지도 뱃사람들은 배 주위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다.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그는 사슴을 부하들 있는 쪽으로 던지면서 외쳤다.
 "힘을 내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옆에 먹을 것 마실 것이 있는데 굶어 죽는다는게 말이나 되느냐?"
오뒤세우스의 부하들은 불을 피웠다. 
그날 저녁 그들은 사슴 고기로 배를 채우고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오뒤세우스는 일행을 두 편으로 갈라 한 편은 자신이 지휘하고
다른 한 편의 지휘권은 먼 친척인 에우륄로코스에게 맡겼다. 
그리고는 나무 조각 두 개 중 하나에다 표를 한 다음 
투구 속에 넣고 흔들었다가 제비를 뽑았다. 
연기의 정체를 밝히러 나갈 정찰대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에우륄로코스 편이 정찰대로 뽑혔다. 
에우륄로코스는 스물 두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오뒤세우스 일행은 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에우륄로코스는 저물녘에야 돌아왔다. 뜻밖에도 혼자 돌아온 것이었다. 
혼자 돌아온 에우륄로코스는 부들부들 떨면서 훌쩍훌쩍 울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당한 무서운 일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랬던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그는 마음의 고요를 되찾고 그 동안 정찰대가 당한 일을 얘기했다. 

 "숲 한가운데에는 아름다운 돌집이 있었습니다. 
길이 잘 든 이리와 사자가 고삐 풀린 채 집 주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이리와 사자 무리는 사냥개처럼 재롱을 피우는가 하면 
우리 어깨 위로 오르면서 얼굴을 핥기도 했습니다. 
한 여자가 집 앞 베란다에 놓인 베틀 앞에 앉아 있더군요. 
여자는 아주 가는 실로 베를 짜면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하나가 그 여자를 불렀습니다. 
여자는 베틀에서 일 어 났습니다. 
짙은 색깔 옷을 입은,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머리와 팔뚝에는 금 으로 만든 장식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여자는 대문을 열고 우리에게 들어오라 고 하더군요. 모두 들어갔습니다. 
저는 혹시 함정이 아닐까 해서 바깥에 숨은 채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 있으려니까, 여자와 하녀들이 우리 뱃사람들을 
긴 걸상에 나란히 앉히고는 포도 주를 꺼내어 아주 친절하게 따라 주더군요. 
그런데 우리 뱃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자, 
여자는 구부정한 나무 막대기를 하나 꺼내더니 
우리 뱃사람들 머리에다 차례로 대는 것입니다.   
여자가 막대기를 머리에다 대는 순간, 뱃사람들 몸에서 뻣뻣한 털이 돋고 
주둥이가 툭 튀어   나오지 뭡니까. 그뿐인 줄 아십니까? 
앉아 있던 뱃사람들이 두 팔과 두 발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리더군요. 
더 이상은 사람이 아니었지요. 돼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돼지가 되어 버린 뱃사람들은 여자를 둘러싸고 꿀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웃으면서 돼지들을 바깥으로 몰아냅디다. 
돼지들은 숨어 있는 제 옆을 지나 돼지우리로 들어갔고요.
여자는,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은 돼지 우리다.'하더군요. 
더러운 돼지우리에서 저의 동료 뱃사람들은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고요."
이야기를 다 들은 오뒤세우스는 칼이 매달린 가죽 허리띠를 차고 활을 들고는 
에우륄로코스에게 마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러나 에우륄로코스는 무릎을 꿇고 다시 울음을 터뜨리면서 애원했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장군. 저는 그 곳으로 다시 갈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도 가지 마십시오. 이제 그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뒤세우스는 에우륄로코스를 다른 부하들 있는 곳에 남겨두고 
혼자 숲을 찾아 들어갔다.

숲 속에서 그는 신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 신을 만났다. 
잘생긴 청년 모습을 한, 신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 신은 
오뒤세우스의 팔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녀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돼지로 둔갑한 부하들을 구하러 
혼자 숲으로 들어온 모양이군.
하지만 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대 역시 돼지가 되고 말아….”
그는 발치에 있던 풀 한 포기를 뽑아 오뒤세우스에게 건네 주었다. 
꽃은 우유처럼 희고 뿌리는 밤의 어둠처럼 새까만 풀이었다. 
인간의 눈에는 띄지도 않고, 따라서 인간은 도저희 뽑을수 없는 풀이었다. 
헤르메스 신은 그 풀을 오뒤세우스에게 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