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황석영 - 삼포가는 길 3.

Joyfule 2010. 12. 29. 10:20

  황석영 - 삼포가는 길 3.  
그들은 읍내로 들어갔다. 
다과점도 있었고, 극장, 다방, 당구장, 만물 상점 
그리고 주점이 장터 주변에 여러 채 붙어 있었다. 
거리는 아침이라서 아직 조용했다. 
그들은 어느 읍내에나 있는 서울 식당이란 주 점으로 들어갔다. 
한 뚱뚱한 여자가 큰 솥에다 우거지국을 끓이고 있었고 
주인인 듯한 사내와 동네 청년 둘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전연 눈치를 못 챘다구, 
옷을 한 가지씩 빼어다 따루 보따리를 싸 놨던 모양이라." 
"새벽에 동네를 빠져나간 게 틀림없습니다." 
"어젯밤에 윤하사하구 긴밤을 잔다구 그래서, 뒷방에서 늦잠자는 줄 알았지 뭔가." 
"새벽에 윤하사가 부대루 들어가자마자 튄 겁니다." 
"옷값에 약값에 식비에. 
돈이 보통 들어간 줄 아나, 빚만 해두 자그마치 오만 원이거든." 
영달이와 정씨가 자리에 앉자 그들은 잠깐 얘기를 멈추고 
두 낯선 사람들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영달 이는 연탄 난로 위에 두 손을 내려뜨리고 비벼대면서 불을 쪼였다. 
정씨가 털모자를 벗으면서 말했다. 
"국밥 둘만 말아 주쇼." 
"네, 좀 늦어져두 별일 없겠죠?" 
뚱뚱한 여자가 국솥에서 얼굴을 들고 미리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양해를 구했다. 
"좌우간 맛있게만 말아 주쇼." 
여자가 국자를 요란하게 놓고는 한숨을 내리쉬었다. 
"개쌍년 같으니!" 
정씨도 영달이처럼 난로를 통째로 껴안을 듯이
바싹 다가앉아서 여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색시가 도망을 쳤지 뭐예요. 
그래서 불도 꺼졌고, 국거리도 없어서 인제 막 시작을 했답니다." 
하고 나 서 여자가 남자들에게 외쳤다. 
"아니 근데 당신들은 뭘 앉아서 콩이네 팥이네 하구 있는 거에요? 
냉큼 가서 잡아오지 못하구선, 
얼마 달아나지 못했을 테니 따라가서 머리채를 끌구 와요." 
주인 남자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필요없네. 
아무래도 월출서 기차를 탈 테니까 정거장 목만 지키면 된다구." 
"그럼 자전거 타구 빨리 가서 기다려요." 
"이거 원 날씨가 이렇게 추워서야." 
"무슨 얘기예요, 그 백화라는 년이 돈 오만 원이란 말요." 
마을 청년이 끼어들었다. 
"서울식당이 원래 백화 땜에 호가 났던 거 아닙니까.
그 애가 장사는 그만이었죠. 
군인들이 백화라면, 군화까지 팔아서라두 술을 마실 정도였으니까."
뚱뚱이 여자가 빈정거렸다. 
"웃기네 그래 봤자 지가 똥갈보라. 
내 장사 수완 덕이지 뭐. 
그년 요새 좀 아프다는 핑계루. 이건 물 을 긷나, 
밥을 제대루 하나, 손님을 받나, 소용없어. 
그년두 육 개월이면 찬샘 바닥서 진이 모조리 빠진 거예요. 
빚이나 뽑아 내면 참한 신마이루 기리까이 할려던 참이었어. 
아, 뭘해요? 빨리 가서 역을 지키라 니까." 
마누라의 호통에 주인 사내가 깜짝 놀란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알았대니까." 
"얼른 갔다 와요. 내 대포 한턱 쓸게."
남자들 셋이 우르르 밀려 나갔다. 
정씨가 중얼거렸다. 
"젠장, 그 백화 아가씨라두 있었으면 술이나 옆에서 쳐 달랠걸." 
"큰일예요, 글쎄 저녁마다 장정들이 몰려오는데. 
아가씨 서넛은 있어야지." 
"색시 많이 두면 공연히 번거러워요. 
이런 데서야 반반한 애 하나면 실속이 있죠, 
모자라면 꿔다 앉히구.
 왜 좀 놀다 갈려우? 내 불러다 주께." 
"왜 이러슈, 먼 길 가는 사람이 아침부터 주색 잡다간 
저녁에 이 마을서 장사지내게."
"자 국밥이오." 
배추가 아직 푹 삭질 않아서 뻣뻣했으나 그런 대로 먹을 만하였다. 
정씨가 국물을 허겁지겁 퍼넣고 있는 영달에게 말했다. 
"작년 겨울에 어디 있었소? "
들고 있던 국그릇을 내려놓고 영달이는 
"언제요?" 하고 나서 작년 겨울이라고 재차 말하자 껄껄 웃기 시작했다. 
"좋았지 정말, 대전 있었읍니다. 
옥자라는 애를 만났었죠. 
그땐 공사장에서 별볼일두 없었구 노임두 실 했어요." 
"살림을 했군." 
"의리있는 여자였어요. 
애두 하나 가질 뻔했었는데, 지난 봄에 내가 실직을 하게 되자, 
돈 모으면 모여서 살자구 서울루 식모 자릴 구해서 떠나갔죠. 
하지만 우리 같은 떠돌이가 언약 따위를 지킬 수 있나요. 
밤에 혼자 자다가 일어나면 그 애 때문에 남은 밤을 꼬박 새우는 적두 있읍니다." 
정씨는 흐려진 영달이의 표정을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사람이란 곁에서 오랫동안 두고 보지 않으면 저절로 잊게 되는 법이오." 
뒤란으로 나갔던 뚱뚱이 여자가 호들갑을 떨면서 돌아왔다. 
"아유 어쩌나.눈이 올 것 같애.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부는군. 
이놈의 두상이 꼴에 도 중에서 가다 말고 돌아올 게 분명하지." 
정씨가 뚱뚱보 여자의 계속될 수다를 막았다. 
"월출까지는 몇 리요?" 
"한 육십리돼요." 
"뻐스는 있나요?" 
오후에 두 대쯤 있지요. 
이년을 따악 잡아갖구 막차루 돌아올 텐데." 
"참, 어디까지들 가슈?" 
영달이가 말했다. 
"바다가 보이는 데까지." 
"바다? 멀리 가시는군. 
요 큰길루 가실 거유?"
정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의자에 궁둥이를 붙인 채로 앞으로 다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