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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7. - 박완서

Joyfule 2010. 5. 26. 08:07
     너무도 쓸쓸한 당신 7. -  박완서    
“채훈이 졸업식 아닌감. 
사돈댁하고 식사라도 같이하게 되면 내가 낼려고 벌써 얼마 전부터 여축해온 돈이라오.” 
남편의 쓸쓸한 듯, 담담한 대답에 그녀는 할말을 잃었다. 
실내는 어둑시근하고 쾌적할 뿐 상상한 것처럼 야하진 않았다. 
한강과 대안의 언덕에 산재한 별장인지 호텔인지 모를 아름다운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잔디가 곱게 다듬어진 이 집 정원도 그 끄트머리에 서면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있을 것처럼 한강하고 가까웠다. 
그녀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남편의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이고 시원하다.” 
욕실에서 나오는 남편을 돌아보다가 그녀는 
에구머니, 소리를 지를 뻔하게 놀라면서 얼굴을 돌렸다. 
팬티만 입은 남편의 하체가 보기 흉했다. 
넓적다리에 약간 남은 살은 물주머니처럼 축 처져 있고,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는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을 것처럼 혐오스러웠다. 징그러운 것하고도 달랐다. 
징그럽다는 느낌에는 그래도 약간의 윤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건 군더더기없는 혐오 그 자체였다. 
살을 대고 산 적이 있는 부부 사이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같이 살 때도 살가운 부부는 아니었다. 
남편은 그때도 여름이면 집에 들어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길 잘했다. 
이 다음에 며느리 얻어도 당신 때문에 같이 살긴 틀렸다고, 
남편의 그런 버릇을 걱정한 적은 있어도 보기 싫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매력있어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있는 구닥다리 장롱이나, 책상, 밥상 보듯, 
있을 게 있을 자리에 있을 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무심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느낌에 놀란 김에 
그녀가 황황히 생각해낸 게 안사돈한테 받은 하얀 봉투였다. 
바로 눈앞에 전화기가 보였다. 
오늘 안에 전화는 해야 된다는 것은, 
그녀가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던 각본이었지만 당장 떠오른 생각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전화를 받은 것은 안사돈이었다. 그녀는 인사말 제쳐놓고 호들갑부터 떨었다. 
“이를 어쩝니까? 사부인. 아이들한테 그걸 전하는 걸 그만 깜박 잊어버렸지 뭡니까? 
우리집 어른이 어찌나 서두르시는지요. 오늘 같은 날은 글쎄, 
아들을 처갓댁에서 독점할 수 있도록 우리는 피하는 게 예의라고 그러시지 뭡니까? 
우리가 끼면 거북해하실 거라나요. 워낙 신식이 지나치신 어른이시거든요. 
그 어른은 그 어른대로 계획이 있으셨나봐요.
 저 지금 청평에 있는 그 어른 친구분 별장에 와 있어요. 
혼자서 농장에서 지내실 때가 많아서 서울만 오시면 
저한테 잘해주시려고 이렇게 주책을 부리시지 뭡니까. 
어머, 이를 어쩌나, 급한 전화 걸고 또 딴소리네. 
우리 아이들 지금 어떡허고 있나요. 제가 이걸 갖고 있으니 여행도 못 떠났을 테고……. 
내일도 유효하겠지요? 이 비행기표랑 쿠폰이랑, 
내일 일찍 서울로 갈 테니 우리 가게로 채훈이를 보내세요. 
아무리 빠져나오기 급급했어도 이걸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는지, 
제가 생각해도 한심해 죽겠어요. 그나저나 아이들 일을 망쳐놓았으니 이를 어쩌죠.” 
“아이고 사부인도 참, 망쳐놓으신 것 아무것도 없으십니다. 
예정대로 여행들 떠났습니다. 표 없다고 예약된 게 어디로 가나요. 
염려놓으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셔요.” 
안사돈은 야죽거리지도 않고 간결하게 말했다. 
간단했지만 무시하는 투는 충분하게 여운이 되어 남아 있었다. 
흉보면 닮는다고 오래도록 야죽거린 것은 오히려 이쪽이었다. 
이럴 수가…… 그들이 꾸민 자글자글한 행복을 조금 훼방놓거나 
약간의 차질이라도 빚게 하려는 그 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허사가 될 줄이야. 
음모를 꾸밀 때의 그 야릇한 쾌감은 간단한 비웃음이 되어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허망감에다 열등감까지 엎친 데 덮친다는 건 못 견딜 노릇이었다. 
남편의 근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사돈댁한테 무슨 실수한 거 아니오? 변변치 못하게스리.” 
“내가 뭘 변변치 못하게 굴었다고 그래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톡 쏘았다. 
“당신 똑똑하지, 무지무지하게. 
그런 줄만 알았는데 채훈이 장모한테 비하니까 변변치 못해 보입디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지 대꾸를 하려면 울음이 섞일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다시 사뭇 의논성스러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훈이 전공한 학과가 유학이라도 하고 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밥벌이 하기도 어렵다고 해서 내 말리지는 못했소마는 
학비를 보탤 일이 큰 걱정이구려. 나는 돈 안 쓰는 재주밖에 없고, 
당신 고생이 언제 끝날지 앞이 안 보이는 게 미안할 뿐이오.” 
“미안할 것 없어요. 걔들은 우리가 왜 보태줘요.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우리가 걔들한테 뭘 해줬다는 거요?” 
“며느리 시집올 때 혼수고 예단이고 다 접으라고 했잖아요. 
요새 혼수랑 예단이랑 제대로 하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기나 아시우. 
왜 그만두라고 했는지, 그 집에서도 당장 알아듣고 그만큼 딸라로 바꿔 보내겠다고 합디다. 
몫돈 가지고 간 거 다 쓰고 나면 며느리라도 돈벌이하겠죠, 뭐.
 제가 꼬셔서 가는 유학인데 그만한 각오도 없이 가겠어요.” 
“그래도 그러면 쓰나, 
우리가 애끼고 줄여서 다만 얼마라도 다달이 보내보도록 노력을 합시다.” 
“노력 좋아하시네. 난 더 아낄 수 없어요. 
가게도 장사가 안 돼서 조만간 정리하려고 하니까 내가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마시구요. 
정 그러고 싶으시면 당신이나 아껴서 송금을 하든지 미국 구경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구랴.” 
“나야말로 얼마나 최소한도로 쓰고 산다는 걸 당신 정말 모르겠소?” 
그 소리의 슬픈 울림에 퉁기듯이 그녀는 발딱 일어났다. 
“쉬고 계셔요. 잠깐 바람 쐬고 올게요.” 
침대에 벌렁 누운 남편을 외면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게끔 핸드백은 둔 채로 나왔다. 
이층 복도는 빈 집처럼 조용했다. 
복도 끝에 있는 비상구는 가볍게 열렸고, 그 밖에는 잠시 담배라도 피울 수 있는 공간과, 
정원으로 통하는 나선형 철제 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내려와 본 정원은 작은 연못까지 있고, 나무 그늘에는 
강을 향해 벤치도 알맞게 배치돼 있었지만 거니는 사람 없이 괴괴했다. 
올려다본 삼층집의 방방은 불이 켜진 데도 있고, 깜깜한 데도 있었다. 
켜진 방의 불빛도 밝지 않고 은은했다. 
오늘 하루 쓰잘데없이 애만 썼다는 사소한 허전함이, 
일생을 헛산 것 같은 거대한 허전함이 되어 그녀를 한없이 미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뭔가로 메우려고 너무 허둥댔음일까. 
검부러기라도 움켜잡듯이 마지막으로 움켜잡은 확실한 게 
펴보니 고작 남편의 정강이었다. 
그건 그와는 도저히 다시 살을 대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망감의 생생한 실체이기도 했다. 
오늘 남편을 여기까지 유인한 것은 섹스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제 그럴 나이도 아니었지만 한창 나이일 때도 
둘 다 그런 쾌락을 밝히는 부부는 아니었다. 
겨우 관행적인 섹스를 유지하다가 별거로 들어가고는 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바도 없이 
그들은 서로의 몸을 원하거나 그리워하는 일을 안 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스킨십조차 없는 완전히 남남이었다. 
스킨십이라도 있었다면 남편의 정강이가 그렇게 싫고 꼴보기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을 비비는 행동이 끊긴 것과 그의 몸이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면 몸을 비비는 행동이란 그닥 얕볼 일도 아니다 싶었다. 
그녀가 오늘 느낀 것은 결코 구체적 욕망이 아니었다. 
흔히 등을 긁어준다는 식의 스킨십 정도였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거대한 허전함을 메우고 싶어했다면 그건 욕망보다 크고 아름다운 꿈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가망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그 동안 완전히 단절됐던 몸의 만남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렇게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고는 미처 몰랐었다. 
그녀는 남편이 잠들기에 충분한 시간을 
흐르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으로 보내다가 방으로 되돌아왔다. 
방안은 강바람 부는 강변보다 더 시원하고 남편은 침대 덮개도 안 걷어내고 
그 위에서 헐렁하게 낡아빠진 팬티만 입은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보기 싫은 것은 둘째치고 감기가 들 것 같아 덮어주려고 
꽃무늬 덮개 자락을 들추다 말고 어쩔 수 없이 벗은 하체를 가까이 보게 되었다. 
모기 물린 자국이 시뻘겋게 한창 약이 오른 것도 있고, 
무르스름 가라앉은 것도 있고, 무수했다. 
이 말라빠진 정강이에서 피를 빨다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가 있을까? 
도대체 어떡하고 살기에 제 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때가 낀 손톱과 함께 그의 지나치게 초라하고 고달픈 살림살이가 눈에 선했다. 
그렇게까지 안 살아도 될 만한 연금을 받고 있는 남편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의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ㅡ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