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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2

Joyfule 2010. 8. 10. 10:29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2  
첫째 회상
어린 시절은 그 나름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가 그것들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 고요한 경이의 숲을 방황하여 빠져나왔다.
우리는 모두 한때 모든 감각이 마비된 행복감에 젖어 눈을 떴으며, 
삶의 아름다운 현실이 우리의 영혼 위로 넘쳐 흘렀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몰랐었다.   
그때에는 온 세계가 우리 것이었으며, 우리 자신 온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영원한 삶이었다 - 시작도 끝도없는 - 정체와 고통도 없는.
우리의 마음속은 봄날 하늘처럼 맑았고 오랑캐꽃 향기처럼 신선했었다.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하고 성스러웠다.   
그런데 무엇이 나타나 이처럼 신성한 어린이의 평온을 방해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이같은 무의식과 지순의 현존이 종식을 고할 수밖에 없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에서 몰아내어, 
우리로 하여금 느닷없이 어두운 생의 한가운데 외롭게 홀로 서게 하는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것을 죄악이라고 말하지는 말라!   
그렇다면 어린이가 이미 죄악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냐?   
차라리 우리는 그것을 모르며, 겸허히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라.
꽃봉오리를 꽃으로 피우고, 꽃을 열매로 맺게 하며, 
열매를 먼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죄악일까?
애벌레를 고치로 만들고, 고치를 나방으로 깨게 하며, 
나방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죄악일까?
그리고 어린애를 어른으로, 어른을 백발로 물들이며, 
백발노인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죄악일까 
- 또 먼지란 무엇일까?
차라리 우리는 그것을 모르며 겸허히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라.
하지만 인생의 봄날을 돌이켜 생각하고, 그 심부를 들여다보는 것 -
회상한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 인생의 무더운 여름날에도, 흐린 가을날에도, 
또 추운 겨울날에도 더러는 봄날이 있는 법이 아닌가.   
마음은 오늘은 내 기분이 봄날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향기로운 숲 속 푹신한 이끼위에 누워 무거운 팔다리를 한껏 뻗고, 
초록빛 잎새 사이로 무한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과연 어떠했던가.   
그러자 모든 것이 잊혀진 듯 싶다.   
기억의 처음 몇 페이지는 집안의 낡은 성경 책과 다름없다.   
처음 몇 장은 완전히 빛이 바랬고, 좀 찢겨져 나간 데도 있으며, 더럽혀져 있다.   
계속 어러 장을 넘겨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전하게 읽을 만한 깨끗한 페이지가 나온다.   
단지 발행 장소와 연도가 적힌 표제지라도 붙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만, 그것은 영 없어져 버렸고, 
그대신 우리는 말쑥한 사본 한 장을 발견할 뿐이다 
- 그것은 우리의 세례 증서이다 - 
여기에는 우리가 태어난 날짜와 우리의 양친과 대
부모의 이름이 적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발행 장소와 연도가 없는>책자로 간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시작이라는 것 - 
애초에 시작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냐하면 그 시작에 접하려 들면 당장 일체의 생각과 기억이 정지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린 시절을, 
또 거기서 거슬러 다시 끝없는 시작을 향해 되돌아가는 꿈을 꾸다 보면, 
마치 그 심술궂은 시작은 끊임없이 앞장서 도망쳐 버려 
우리의 사고가 아무리 뒤쫓아 달려도 결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만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가 푸른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아이는 아무리 달려도, 하늘은 줄곧 아이를 앞장서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여전히 땅 위에 머물러 있는 하늘을 앞에 두고 - 
아이는 지치고 끝내 지평선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번쯤 일단 그곳에 도달했다 해도 - 
애초에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떻게 시작되었던가하는 그 원점에 이르렀다 해도 - 
대체 거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   
그 기억은 엄청난 파도에서 빠져나온, 
그래서 그 파도 물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하는 
한 마리 복슬개처럼 온몸을 떨고 있을 뿐이다. - 
그 복슬개의 모습이란 실로 괴이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나는 맨 처음 별들을 보았을 때의 일은 아직 기억할 수 있을 듯싶다.   
어쩌면 별들은 그 이전에도 자주 나를 내려다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인가, 어머니의 품에 누워 있는데도 
날씨가 써늘한 듯 느껴져 왔었다.   
몸이 떨렸고 오싹 오한이 느껴졌다.   
아니면 두려웠던 것일까.   
아무튼 잠시 동안, 조그마한 나의 자아로 하여금 보통 때와는 달리 
나 자신에게 더욱 주의를 환기시키는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났었다.   
그때 어머니가 빛나는 별들을 가리켰다.   
나는 신비스럽게 여기면서도, 
바로 어머니가 저렇게 아름다운 별들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자 다시금 따스함이 느껴졌고 아마 곧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언젠가 풀밭에 누워 있던 일을 기억한다.    
내 주변의 만물이 흔들리며 고갯짓을 하고 윙윙대며 빙빙 돌고 있었다.  
그때 발이 여럿 달리고 날개가 달린 한떼의 작은 벌레들이 몰려와 
나의 이마와 눈 위에 앉으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곧 눈이 몹시 아파 와서 나는 소리쳐 어머니를 불렀었다.   
어머니는  아이, 가엾은 녀석, 모기 떼들에 쏘였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어 푸른 하늘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어머니가 들고 계시던 신선한 오랑캐꽃 다발로부터, 
그 짙푸른 빛의 신선한 향내가 내 눈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까지도 처음 핀 오랑캐꽃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꼭 눈을 감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야만 그 옛날의 짙푸른 하늘이 다시금 내 영혼 위로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 
그 다음으로 나는 다시금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내게 열려 왔던 일을 기억한다.   
그 세계는 별들의 세계나 오랑캐꽃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것은 어는 부활제 아침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나를 깨우셨다.   
창 앞에는 오래된 우리의 교회가 보였다.   
그 교회는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높은 지붕에 뾰족탑, 
그리고 탑 꼭대기에 금빛 십자가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역시 교회는 다른 건물들 보다는 훨씬 낡고 우중충해 보였다.   
한 번은 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쇠창살로 된 문틈으로 들여다 본 적도 있었다.   
그 안은 텅비어 있고 춥고 썰렁해 보였다.   
온 건물 안에 한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그 문을 지나칠 때마다 오싹 전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그 부활제 날에는 새벽녘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면서 곧 개어 태양이 찬란하게 떠올랐다.   
그러자 그 낡은 교회도 회색 슬레이트 지붕과 높은 창문들, 
금빛 십자가 달린 탑과 더불어 경이로운 햇빛속에 반짝였다.  
그리고 높은 창문들로부너는 갑자기 햇빛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와 출렁이며 생동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밝아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햇빛은 곧장 나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 
나의 내면에서 만물이 빛과 향길글 발하며 노래하고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내 안에서 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 것처럼, 
실로 내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부르는 부활절 송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내 영혼을 파고들었던 그 맑고 성스러운 노래가 
과연 무슨 노래였는지를 지금껏 나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우리네 루터의 경직된 영혼까지도 종종 깨고 들어갔던 
저 옛날 찬송가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그 노래를 다시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베토벤의 아다지오나 마르첼로의 송가, 
아니면 헨델의 합창곡을 들을 때면, 심지어는 스코틀랜드 고원에서든 
티롤 지방에서든 그저 소박한 민요를 들을 때까지도, 
내게는 마치 그때 교회의 높은 창문이 다시 빛을 발하고 
오르간 소리가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가
 - 별 하늘보다, 오랑캐꽃 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가 -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들은 내가 맨 처음 어린 시절에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간간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 
또한 인자하면서도 엄격한 아버지의 시선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또 정원과 포도잎새, 폭신한 푸른 잔디와 낡고 소중한 그림책들
 - 이것들이 빛 바랜 페이지들에서 아직도 그나마 읽어 낼 수 있는 전부이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갈수록 선명하고 맑아진다.   
숱한 이름들과 모습들이 등장한다.   
어머니, 아버지뿐 아니라 형제와 자매들, 친구와 스승들 - 
그리고 수많은 <타인들>. 
 아, 그렇다, <낯선 타인들에 관하여> - 수많은 것이 이 회상에는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