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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3

Joyfule 2010. 8. 11. 06:08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3  
둘째 회상
우리 집 가까이, 그 금빛 십자가가 달린 낡은 교회 맞은편에
커다란 저택이 한 채 서 있었다.   
교회보다 더 높고, 수많은 탑들이 솟은 건물로, 
그 탑들 역시 우중충한 회색의 낡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탑꼭대기에는 금빛 십자가 대신 돌로 된 독수리 형상들이 않아 있고, 
바로 높다란 대문 위로 솟은 제일 높은 탑에는 
희고 푸른 큼직한 깃발이 하나 펄럭이고 있었다.
대문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문 양옆으로 기마병 둘아 보초를 서고 있었다.   
또 그 저택에는 창문이 수없이 많이 달려 있고,
창문 안쪽으론 금빛 술이 달린 비단 커튼이 보였다.   
안마당에는 늙은 보리수나무가 빙 둘러서 있어서 
여름이면 그 푸른 잎새로 회색 성벽에 그림자를 던져 주고, 
향기로운 흰 꽃을 잔디에다 뿌렸다.
나는 그 집 안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보리수 향기가 진동하고 창문에 등불이 켜지는 저녘녘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 소리가 위층으로부터 울려 나왔다.
마차들이 와 닿으면 수많은 남녀들이 내려 층계를 서둘러 올라가곤 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훌륭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남자들은 가슴에 별 모양의 훈장을 달고 있었고, 
여자들은 머리에 신선한 꽃을 꽂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곧잘 너는 왜 저 안에 들어가지 못하니? 하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나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다.
우리 저 성에 가도록 하자.   
그렇지만 후작 부인과 얘기할 때는 예절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또 그분의 손에 키스를 해 드려야 하는 거야.
나는 그때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섯 살짜리가 느낄 수 있는 한 그 나이다운 기쁨에 어쩔 줄 몰랐었다.   
이미 나는 수 없이 마음속으로, 
저녁이면 불 켜진 창문에 비치던 그림자의 주인들에 대해 상상했었고, 
또 집안에서도 여러 차례 후작과 그 부인의 훌륭하신 인품에 대해 들어온 터였다.   
그들이 얼마나 자비심이 많은 이들이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었는지, 
또 그들은 착한 이들을 지켜 주고 악인들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손수 택하신 인물이라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미 오래 전부터 성 안에서 일어날 법한 모든 일을 
머릿속에 그려 왔으므로, 후작과 후작 부인은, 
내가 가진 호두까기 인형이나 장난감 납 병정처럼 
이미 내게는 너무나 친숙해진 존재였다.
아버지와 함께 높은 층계를 올라갈 때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아버지가 내게 후작 부인께는 <비전하>라고 부르고, 
후작께는 <전하>라고 불러야 된다고 설명을 하시는데, 
어느 새 문이 활짝 열리고 내 앞에는 
빛나는 눈을 가진 한 늘씬한 여인의 자태가 나타났다.
그 부인은 막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려는 듯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 오래 전부터 내게 친숙한 - 표정이 깃들어 있고 
신비스런 미소가 뺨 위로 흘렀다.   
그러자 나는 이미 가만히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아버니는 그냥 문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간절한 마음에 못 이겨 곧장 
그 아름다운 부인에게로 달려가 목에 매달려 어머니에게 하듯이 키스를 했던 것이다.
아름답고 키 큰 부인은 내 행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 끌고 가며 내가 아주 버릇 없이 굴었다고, 
다시는 이곳에 나를 데려오지 않겠노라고 다그치시는 것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혼란해지며 뺨이 상기됐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처사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후작 부인이 나를 두둔해 주리라는 기대감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엄한 표정이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이어서 방 안의 다른 신사 숙녀들 쪽을 바라보며
그들은 그래도 내편을 들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 자리를 도망쳐 문밖으로 뛰쳐나와 층계를 내려왔고,
성 안마당 보리수나무를 지나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는 어머니 품에 쓰러지며 훌쩍훌쩍 흐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니?  하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아, 어머니 하고 나는 외쳤다.    
후작 부인을 만났는데, 아주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꼭 어머니처럼요.   
그래서 부인의 목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저런, 그래서는 안 되는 짓을 했구나.   
왜냐하면 그분들은 낯선 타인들이고, 지체 높은 분들이기 때문이란다.
대체 낯선 타인이라는 게 뭔데요?   
그럼,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그들을 좋아할 수는 있단다.   
그렇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 놓으면 안되는 거야.
그럼,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가요?   
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보이면 안 되는 거지요?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렇지만 너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 해야 돼.   
좀더 나이가 들면 너도 알게 될 거다.   
왜 다정한 눈길을 가진 모든 아름다운 여인을 얼싸안으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