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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4

Joyfule 2010. 8. 12. 08:07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4  
그날은 참 우울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셔서도 내가 버릇없이 굴었다는 얘기를 고집하셨다.   
밤이 되어 어머니가 나를 침대로 데려가셨고, 나는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좀체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내가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낯선 타인들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곧 생각했다.
너, 가엾은 인간의 마음이여!  
그렇게 해서 이미 봄철에 너의 꽃잎들은 너무도 빨리 꺾이고, 
네 날개에서는 깃들이 뜯겨 나가는구나!   
인생의 새벽빛이 영혼 안에 감추어진 꽃받침을 열어 줄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통 사랑의 향기가 풍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서서 걷는 것, 말하고 읽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사랑만은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의 생명과 더불어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사랑은 우리 현존의 가장 심오한 바탕이라고들 말한다.
천체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서로에게 기울며 
영원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응집하고 있듯이, 
타고난 영혼들 역시 서로에게 기울며 끌어당기고,
사랑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결속하고 있다.   
태양 빛이 없으면 한 송이 꽃도 피지 못하듯,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낯선 세계의 차가운 돌풍이 어린이의 작은 가슴에 처음으로 불어닥칠 때, 
만약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에서 내비치는
 - 마치 신의 빛, 신의 사랑의 반영처럼 내비치는 - 따스한 사랑의 햇빛이 없다면, 
어찌 어린이의 가슴이 그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서 어린이의 내부에서 눈뜨는 동경 - 
이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심오한 사랑인 것이다.
그것은 온 세계를 포괄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인간의 열린 눈빛이 반사될 때 타오르며,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환호한다.   
그것은 태고적부터 있어 온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요, 
어떤 추를 사용해도 측량해 낼 수 없는 깊은 샘물,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분수이다.
사랑을 아는 이는, 사랑에는 척도가 없는 것,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비교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온 마음 온 영혼,
온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의 여정에 미처 절반도 가기 전에, 
남아 있는 사랑의 부분이 어쩌면 이토록 보잘것없어지고 마는지! 
<낯선 타인>의 존재를 배우면서부터 어린이는 이미 어린이임을 고별한다.   
사랑의 샘물에는 뚜껑이 덮이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완전히 흙모래에 묻힌다.   
우리의 눈은 어느덧 정기를 잃고 있고, 
우리 자신은 심각하고 지친 표정으로 시끌벅적한 거리들을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거의 인사도 않는다.
왜냐하면 인사에 응답이 없는 경우 얼마나 에이는 듯 가슴에 상처를 입는가를, 
또 우리가 일단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던 이들로부터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영혼의 날개는 깃을 잃어 가고 꽃잎들은 거의 뜯겨 나가고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고갈될 수 없는 사랑의 생에는 단지 몇 방울의 물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단 몇 방울의 물에 매달려 우리는 혀를 축이고
갈증으로 타 죽는 것을 겨우 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에 충만한 어린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궁핍이 섞인 사랑 - 
작열하는 불꽃이요, 타오르는 정열일 뿐이다.   
달아오른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스스로를 소모하는 사랑 -
갈망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지 
너의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자기 본위의, 의혹이 뒤섞인 사랑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이 노래하며 젊은 남녀들이 믿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이다.   
그것은 타오르다 주저앉는 한가닥 불꽃,
온기를 주지도 않고 다만 연기와 잿더미만 남긴다.   
우리는 이렇게 모두 한때는 이같은 불꽃놀이를 
영원한 사랑의 햇빛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불꽃이 환하면 환할수록 뒤따르는 어둠의 농도는 더욱 짙은 법이다.
그러고 나서 사방의 만물이 어두워지고, 우리가 진정 외로움을 느끼게 될 때, 
좌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때, 
잊었던 감정의 한 줄기가 어쩌다가 가슴속에서 솟구치곤 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것은 사랑도, 우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모르시겠습니까? -
낯설고 냉담하게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향해 우리는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때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사이가 형제지간이나 부자지간, 
또 친구지간보다 더 가까와져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마치 성서의 낡은  잠언 귀절처럼, 
<낯선 타인>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말이 우리의 영혼속으로 파고들어 울린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말없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야 하는가 -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며, 겸허히 그것에 순종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쯤 시도해 보라.   
두 대의 기차가 서로 엇갈리며 철로 위를 질주하는데, 
너를 향해 인사를 하려는 듯한 낯익은 눈을 발견 했을때,
손은 내밀어 너를 스쳐 가는 친구의 손을 잡아 보라
 - 그러면 너는 아마도 알게 되리라.   
왜 이 세상에서의 인간은 말없이 인간을 스쳐 지나가는지를.
한 예 현자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난파당한 한 조각배의 파편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파편 중에는 서로 부딪쳐 잠시 엉겨 붙어 있는 것들마저 극히 드물다.   
곧 폭풍이 몰아쳐 그것들을 각기 반대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리하여 두 파편은 이 지상에서는 다시는 못 만날 것이다.   
인간의 경우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난파를 본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