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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6

Joyfule 2010. 8. 16. 10:32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6  
넷째 회상
어떤 인생에든 어느 시기 동안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먼지투성이의 단조로운 포플러 가로수 길을 
맹목으로 걸어 나가는 것 같은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 관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은 먼 길을 걸어왔으며, 늙어 버렸다는 서글픈 감정뿐이기 일쑤이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강물이 고요히 흐르고 있는 한
강물은 항상 그대로 머물며, 바뀌는 것은 양편 강가의 경치뿐이다.
그러나 이어서 인생의 폭포가 닥쳐오게 마련이다.   
이 폭포들은 기억속에 유착된다.   
그래서 우리가 이 폭포를 넘어서서 멀리 
영원히 고요한 대해로 접근해 가고 있을 때까지도, 
우리의 귀에는 여전히 아득히 그 폭포의 우렁찬 흐름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 있어 우리를 앞으로 추진시키는 생명력이 
바로 그 폭포에 원천을 두고 양분을 끌어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고교 시절은 지나갔다.   
대학 생활의 화려한 초창기도 지나갔다.  
그와 더불어 아름다운 인생의 꿈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   
인생이란 아무래도 우리가 그 작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그런 것과는 달랐지만, 
그 대신 모든 것이 한 단계 높아진 서품을 받았다.   
따라서 바로 인생에 내재한 불가사의한 요소와 고통이 
내게는 지상에 신이 편재하심의 증거가 되었다.
신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네게 일어나지 않느니라.  -
이것이 내가 채집했던 짤막한 삶의 지혜였다.
그렇게 해서 여름 방학 동안 나는 다시 나의 작은 고향 마을로 되돌아왔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지금껏 누구도  그것을 설명한 사람은 없지만, 재회며, 재발견, 회상 - 
이런 것이야말로 거의 모든 기쁨과 모든 즐거움의 비밀스런 원천인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보고나 듣거나 맛본다는 것 - 
그것도 아마 아름답고 위대하며 유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대체로 지나치게 생소하여 우리에게 기습적인 느낌을 주며, 
안정된 마음으로 그일에 임할 수는 없다.  
즐기고자 하는 안간힘이 흔히 즐기는 행위 자체보다 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옛날의 곡조를 다시 한 번 듣는다는 것, 
그래서 그 악보를 모조리 잊어다고 생각했는데도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그 악보가 다시 떠오를 때, 
아니면 여러 해가 지난 후 드레스덴의 산 시스토 성모상 앞에 다시금 섰을 때, 
지난날 성화 속 아기 예수의 무한한 시선이 
우리 마음에 일깨웠던 바로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 
아니면 하다 못해 학창 시절 이후 한 번도 염두에 둔 적 없는
꽃향기를 다시 맡거나 그 시절 음식을 다시 맛보는 것 - 
이런 경험들은 과연 우리가 현재 눈앞의 인생을 기뻐하는지 
흘러간 추억에 대해 기뻐하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지경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내밀의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자, 이제 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발을 들여놓아보라.
그렇다. 그때 우리의 영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숱한 추억의 바다 속을 헤엄치게 마련이다.   
춤추는 추억의 파도들이 요람처럼 우리의 영혼을 싣고 
몽롱하게 아득한 과거의 강변들을 스쳐 흔들리며 지나가는 것이다.
탑시계가 치면 우리는 학교에 지각이라도 할세라 마음 조이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소스라쳐 놀라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런 불안은 과거지사라는 사실에 안도를 느낀다.
개가 한 마리 거리를 건너 달려간다.   
그 옛날 무서워 멀리 피해 도망다녔던 바로 그놈이다.
여기엔 그 옛날 노점의 여인이 그대로 앉아 있다.   
지난날 그 여인이 팔던 사과는 꽤나 우리를 유혹했었지.   
그래서인지 지금도 먼지가 뽀얗게 앉은 저 사과들이 
세상의 어떤 사과보다 맛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든다.
저편에는 집이 한 채 헐리고 새 집이 들어서 있다 - 
헐린 집은 우리의 늙은 음악 선생님이 살던 집이었지.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여름날 저녁 이곳 창 밑에 서서, 하루 일과를 마친 그 성실한 선생님이 
혼자 즐기며 연주하던 즉흥곡에 귀 기울이던 일은 얼마나 좋았던가.   
그 연주는 마치 증기 기관처럼 하루 종일 모인 
쓸데없는 증기를 광란하듯 뿜어 내는 것과 같았었다.
또 이곳 작은 나무 그늘 길 - 이것은 그 옛날에는 훨씬 커 보였었다 -
어느 날 저녁인가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집 예쁜딸을 만났던 곳이 바로 여기였었지.   
그렇다, 그때 나는 그애를 쳐다 본다든가 
말을 건넨다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우리 남학생들은 그애를 곧잘 화제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애를 예쁜 소녀라고 불렀었다.   
또한 나는 길에서 그 애가 멀리 나타나는것만 보아도 
너무나 해옥하여 가까이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렇다, 공동묘지로 통하는 바로 이 작은 가로수 그늘 길에서 
어느날 저녁 나는 그 소녀를 만났었다.   
그전에는 한 번도 말을 나눠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도 
그애는 내 팔을 붙들고 함께 집으로 가자고 말했었다.   
나란히 걷는 동안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 소녀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얼머나 행복했던가.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예쁜 소녀>와 더불어 
말없이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싶다.
이렇듯 추억은 머리를 온통 뒤덮는다.   
그럼 우리는 가슴에서 긴 한숨을 내뿜으며 지금껏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노라 숨쉬는 것마저 잊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그 모든 몽상의 세계가 졸지에 사라져 버린다.   
마치 밤새 나타났던 유령들이 새벽닭 울음 소리에 사라지는 것처럼.
이제 나는 그 낡은 성채와 보리수 곁을 지나며 말 탄 보초와 높은 계단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어떤 추억들이 솟구쳐 올랐을까!   
이곳에서의 모든 것은 얼마나 변하고 말았는가!
벌써 여러 해째 나는 그 성에 간 적이 없었다.   
후작 부인은 돌아가셨고, 후작은 통치하는 일에서 물러나 이탈리아로 은퇴했으며,
지금은 나와 함께 성장한 맏공자가 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공자의 측근은 젊은 귀족과 장교들로 에워싸여져 있고, 
공자는 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그같은 사교사회가 그 옛날 소꿉친구를 공자한테서 소원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