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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21

Joyfule 2010. 2. 1. 10:03

 

 

 

     사씨남정기 - 김만중.21  

 

 

그의 집에서 기다리던 동청이 불만을 품고,
"그런 중죄자를 죽이지 왜 살려서 귀양보내는 경벌에 그치게 하셨습니까?"
"나도 죽이려고 하였는데 조정에서 간언이 많아서

그러지는 못했으나 행주는 수토가 험악한 북방이라

귀양간 자로서 살아 온 자가 없으니 칼로 죽이는 거나 별로 다름이 없다."
동청이 그 말을 듣고서 안심한 듯이 기뻐하면서 교씨에게 알리려고 백자당으로 달려갔다.
유한림이 벼락 같은 흉변을 만나서 귀양길을 떠나는 날

교씨는 비복을 거느리고 성 밖에 나와서 전송하면서 거짓 통곡을 하며 한림에게,
"한림께서 먼 곳으로 고생길을 떠나시는데 첩이 어찌 떨어져서 홀로 살겠습니까?

한림을 따라가서 생사를 같이 하고자 하옵니다."
하고 가장 열녀답게 호소하였다.
"내 이제 흉지로 가서 생사를 기약하지 못하니 그대는 집을 잘 지키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아이들을 잘 길러서 성취시킬 직책이 있는데

어찌 나를 따라가겠다는 말이오?

인아가 비록 사나운 어미의 소생이나 골격이 비범하니

 거두어 잘 기르면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것이오."
"한림의 아들이 곧 제 자식이니 어찌 제 배를 앓고

낳은 봉추와 조금이라도 달리 생각하겠습니까?"
"부디 그렇게 부탁하오."
유한림이 재삼 부탁하였다.

그리고 집사 동청이 보이지 않으므로 어찌된 일이냐고 비복에게 물었다.
"집을 나간 지 삼사 일이 되었습니다."
유한림은 그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호위하는 관졸이 재촉하므로 비복 약간 명만 데리고 먼 귀양길을 떠났다.

 

유한림을 음해하여 귀양보내게 한 동청은 그 후에 승상 엄숭의 가인이 되었다가,

엄숭의 세도로 인진되어 진유현 현령으로 출세하여 되었다.

이에 득의양양해진 동청은 교씨에게 사람을 보내서 기별하였다.
"내 이제 진유현령이 되어 재명일 부임하게 되었으니 함께 가도록 차비를 차리시오."
이 기별을 받은 교씨가 기뻐하면서 집안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내 사촌 형이 먼 시골에 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왔으므로 가야겠다."
하고 심복 시녀 납매 등 다섯 명과 인아, 봉추 형제를 데리고

남은 비복들은 자기가 다녀올 때까지 집을 잘 지키라고 이르고 집을 떠났다.

이에 인아를 맡아 기르던 유모가 따라가고자 원하였으나,
"인아는 젖 먹지 않아도 아무 관계없으니

내가 장례를 보고 곧 돌아올 테니 너는 가지 않아도 좋다."
하고 꾸짖어 물리쳤다.

그리고 집에 있던 금은 주옥을 비롯한 값진 재물을 모두 꾸려가지고 갔으나,

그 눈치를 아는 사람도 감히 막을 수가 없었다.

집을 떠난 교씨가 사흘 동안 주야로 급행하여 약속한 지점에 이르니

동청이 부임 행차의 의의를 갖추고 벌써 거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탕아 음부는 서로 만나서 이제는 저희들 세상이 되었다고 기뻐 날뛰었다.


"인아는 원수 사씨의 자식인데 데려다 무엇하겠소? 빨리 죽여서 화근을 없앱시다."
동청의 말을 옳게 여기고 시비 설매에게,
"인아가 장성하면 너와 내가 보복을 당할 테니

빨리 끌어다가 물에 넣어서 자취를 싹 없애 버려."
하고 명하였다.

설매가 곧 인아를 안고 강가로 가서 물에 던져 버리려고 할 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금방 죽을 줄도 모르고

악마 같은 설매의 품안에서 색색 잠을 자고 있었다.

이것을 본 설매의 마음에는 자기도 모를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흘리고 혼잣말로,
"사씨 부인의 인덕이 저 강물같이 깊은데 내가 억울하게 죽는 데 방조하고

이제 그 자식마저 해치면 어찌 천벌을 받지 않으랴."
하고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인아를 강가의 숲속에 감추어 두고

돌아와서 교녀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아이를 물 속에 던졌더니 물 속에서 잠깐 들락날락 하다가 가라앉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교녀와 동청이 기뻐하고  채선(彩船)에 진수성찬을 차려서

술을 통음하고 비파를 타고 노래를 하면서 음란하기 형언할 수 없었다.

거기서 배를 내려서 위의를 갖추고 육로로 진유현에 도임하였다.


한편 유한림은 금의옥식으로 생장하여 높은 벼슬을 지내다가

일조에 적객의 몸으로 영락하여 귀양길을 촌촌전진하여 적소에 이르렀다.

그 도중에 고초가 참혹하였으며 북방의 수토가 황량하고 험악할 뿐 아니라

주민들의 습관이 포악무도하였으므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후회하여 마지 않았다.
'사씨가 동청을 집사로 채용할 때부터 꺼려하더니 그 슬기로운 사람 봄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는 내가 화근을 자초하고 사씨를 학대하였으니

지하에 가서 무슨 면목으로 선조의 영혼을 대할 것이냐?'
하는 생각으로 한숨을 쉬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때부터 주야로 심화(心火)가 가슴을 태워서 병이 되어 눕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방에서는 약을 구할 길이 없어서 병은 점점 위중해질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노인이 와서,
"한림의 병이 위중하시니 이 물을 잡수시고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권하였다. 유한림이 이상히 여기고 물었다.
"노인은 누구신데 이 외로운 적객의 병을 구해 주시려고 합니까?"
"나는 동차군산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 말만 하고 물병을 마당에 놓고 홀연히 떠나가므로

재차 물으려고 부르는 자기 음성에 깨어 보니 병석에서 꾼 꿈이었다.

유한림은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 이튿날 아침에

노복이 뜰을 쓸다가 놀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유한림에게 들렸다,
"뜨락 마른 땅에서 갑자기 웬 물이 솟아나올까? 참 이상도 하다."
유한림이 목이 타서 신음하다가 창을 열고 내다보니

물나는 곳이 꿈에 나타났던 노인이 물병을 놓고 간 그 장소였다.

유한림이 노복에게 그 물을 떠 오라 해서 먹어 보니 맛이 달고 시원해서 감로수같이 좋았다.

그 물 먹은 즉시로 유한림의 병이 안개 가시듯이 금방 낫고

기분이 상쾌해졌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기고 탄복하였다.

그 소문을 들은 지방 사람들이 모여 와서 먹고 모두 수토병이 나았으며

그 후로 이 행주 지방의 수토병이 근절되고 말았다.

이에 감격한 사람들은 그 우물을 기념하기 위하여

학사천(學士泉)이라고 불러서 후세까지 유명하게 되었다.
한편 동청은 교씨와 함께 진유현에 도임한 후에 백성에 대하여

탐람을 일삼았으며 세금을 가혹하게 받는 등 고혈을 착취하였으나

그래도 부족한 동청은 황제에게 상소하여 승상 엄숭에게 가봉(加俸)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