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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 내 작은 삶의 이야기 前.

Joyfule 2009. 11. 17. 09:19
       헤르만 헷세의 -  내 작은 삶의 이야기 前.   
    나는 궁수(弓手)자리 바로 아래에 있는 목성(木星)의 밝고 온화한 빛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났다. 
    나는 어느 여름날 해질 무렵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태어났으며, 
    나의 온 삶을 통해 그 때의 따뜻함에 늘 애착을 가졌고, 
    그 따뜻함을 잃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과 비애를 느끼곤 했다. 
    이러한 감정의 섬세한 흐름 속에서 살아온 나는 자연히 
    추운 나라에서의 생활이란 생각할 수도 없어, 
    그래서 나의 자의적(自意的)인 모든 여행은 오직 
    따뜻한 남녘을 향해 이루어지거나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양 같은 온순한 천성을 지니고 있어서 
    한쪽 으로만 쏠리는 감정의 나약함이 단점이긴 했지만, 
    어떠한 것이건 간에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학교 생활이 시작되기 이전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활달하고 민감하며 또한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나 그것에 따르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을 통해 볼 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내 생애를 통해 참으로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고 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학교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라틴어는 나에게 새로운 큰 즐 거움을 가져다 주어 
    모국어(母國語)인 독일어로 시를 짓는 것과 다름없이 라틴어로 시작(詩作)에 열중했다. 
    열세 살 때였으리라. 
    나는 시인이 되는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나 다른 모든 길에는 이끌어 주는 제도와 스승과 선배가 있었으나, 
    시인이 되는 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막연한 길이었다. 
    그 길이란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너무나 막연한 환상과 같은 그림자였다. 
    그러나 나는 오래지 않아 곧 깨닫게 되었다. 
    시인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언제 어디에서나 찬미와 찬탄을 받으며, 
    그러한 운명을 갖고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비범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을 나는 비로소 절감하게 되었다. 
    마침내 긴 방황과 고통 끝에 시인이 되겠다는 길을 선택하고 부터는 
    다른 모든 것들이 모호해지면서 집에서나 학교에서 
    남들이 이 해하기 힘든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다른 도시의 라틴어 학교로, 
    또 그 이듬해에는 신학교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억압받은 내 청춘의 갈등이 나로 하여금 그곳을 끝끝내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뒤에도 학업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열망과 
    내 자신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방면의 기술의 도제(徒弟:어려 서부터 소송을 따라 
    기술을 배우는 제자)와 견습공으로 몇 년간을 전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학업에 실패하고 난 후, 나는 내 스스로 가고자 하는 
    선택의 길에 있어서 내 나름대로의 수업을 시작했다. 
    포부 때부터 가전(家傳)되어 온 많은 장서 속에 묻혀서 독서와 습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순간 순간의 시간들이었다.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눈에 띤 문학 서적들을 반쯤은 읽었으며, 
    철학과 예술사(藝術史)와 언어학 등에도
     끈질기게 집념을 보였으며 또한 수 많은 습작을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 가기 위해 나는 서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확실히 나에게 알맞는 직업이었다. 
    책 속에 묻혀서 나는 처음에는 새로 나온 것들에만 집착하여 급급했는데 
    점차로 오래된 책(古書)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다 더 정신적인 위안을 받으며 
    지혜를 터득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물여섯 살 때 최초의 문학상이라는 것을 수상 받으면서 
    나는 그 동안 호구지책으로서의 책과의 씨름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시인으로서 존재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세상과의 지루하고 쓰디쓴 막연했던 생존과의 싸움을 그만두게 되었으며, 
    모든 고통의 기억들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이 때까지 나에게 낙망하고 있었 던 가족과 친지들도 다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비로소 나는. 위안과 승리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나 자신이 너그러운 심성이 되고 , 
    세상 사람들도 그것들을 가치로운 것 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무서운 고독과 금욕과 위험 속에서 살아온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었다. 
    이렇듯 안정과 찬 사의 미풍이 불어오면서 
    차츰 나는 만족스러운 인간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 덕택에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을 지니게 되었다. 
    1905년, 나는 빌헬름 2세의 전제적 통치에 반대하는 한 잡지의 창간에 협조했다. 
    그리고 멀리 인도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했다. 
    1914년 여름, 엄청난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의 평온한 생활이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또다시 긴 터널과도 같은 그 커다란 삶의 불행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 엄청난 시대를 통하여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참담한 절망에 젖어 있었다. 
    어느 날, 그 비참한 심경의 고백을 통하여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신문들로부터 조국의 배신자라는 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많은 친구들 중에서 나를 옹호하고자 한 사람들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낯모르는 사람들로부터는 모욕적인 편지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나는 다시 모든 것들과 층돌하면서 외톨이가 되었다. 
    바람직하고 이성적이고 좋은 일들과 현실 사이에는 
    암울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다시금 겪게 된 것이다. 
    자기 성찰을 통하여 나는 자신의 고통과 책임이 나의 외부에서부 터가 아니라 
    내 자신의 내부에서 추구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전세계의 광기와 포악성을 비난할 권리는 인간에 게도 신(神)에게도 없으며, 
    하물며 나에게는 더욱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추세나 동향에 대하여 감당할 수 없는 
    나 자신과의 충돌은 여러 가지의 혼란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것은 크나큰 혼란이었다. 
    자신의 내면의 혼란을 파악하여 그 정리를 시도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그리고 내가 현실과 유지하고 있 었던 평화를 나는 너무 값비싸게 치루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세계의 외면적인 평화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터무니없는 장식품과 같은 것들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신년 시절의 오랜 고통스러운 싸움을 통하여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고, 
    이제는 시인이 되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동안의 성공과 안락은 나에게 흔히 있는 경우처럼 안일과 나태에 젖게 하였다. 
    살펴본다면 오락적인 글을 쓰는 필자와의 구분이 애매했다. 
    그렇듯 나는 너무나도 안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여의치 못하다는 것은 항상 유력하고 놓은 수업이 되지만,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차츰 세상의 사소한 분쟁을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체의 혼란과 죄과에 대 해서는 내 나름대로 적당히 관여하게 되었다. 
    그러한 점을 나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