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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7

Joyfule 2010. 8. 28. 11:18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7  
일곱째 회상  
나의 말버릇이 늘 그렇듯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서 
나는 이 말이 의사 선생님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음을 깨달았어요.
그분은 입을 꽉 다물고 어린애처럼 부끄러워하셨어요.   
그때 나는 마침 읽고 있던 워즈워드 시집을 집어들고 말했지요.
  <여기 내가 사랑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인이 또 한 분 있답니다.  
이분은 나를 이해하고 나는 그분을 이해해요.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껏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영 못 만날 거예요 
- 세상 일이 흔히 그러니까요.   
이분의 시 한 편을 읽어 드리고 싶어요.   
이걸 들으시면 선생님도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사랑이란 사랑하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에 씌워 주는 
소리 없는 축복의 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그리고 사랑하는 그는 축복에 찬 우수를 안고 자신의 길을 떠나가는 것이랍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분에게 워즈워드의 <산지의 소녀>를 읽어 드렸어요.
자, 저 램프를 좀 가까이 당겨 놓고 당신이 이 시를 다시 한번 들려 주세요.   
이 시를 들을 때마다 생기를 찾게 되거든요.  
이 시에는 눈 덮인 산의 순결한 가슴을 향해 사랑의 축복의 팔을 벌리는, 
저 고요하고 무한한 저녁 노을 같은 정신이 깃들어 있답니다. 
그녀의 말이 조용히 느릿느릿 내 영혼 속으로 울려 오는 사이에 
나의 가슴도 마침내 평온과 질서를 되찾았다.   
폭풍은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은빛 달처럼 잔잔하게 물결치는 
나의 사랑의 파도 위로 둥실 떴다 - 
나의 사랑 - 하지만 사랑이란 만인의 심장을 타고 흐르는 대양이 아닌가.   
그래서 누구든 저마다 그것을 자신의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맥박인 것이다.   
저 바깥으로는 점점 정적과 어둠이 깃드는 대자연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대자연과 함께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책을 주는 바람에 시를 읽어 내려갔다.
  산지의 소녀
  사랑스런 산 속의 소녀야.
  지상에서의 네 혼수는 봇물처럼 터지는 네 아름다움이로구나.
  일곱을 갑절한 세월은,
  그것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풍요를 네 머리에 씌웠구나.
  여기 회색 바위들, 저기 쾌적한 잔디,
  베일을 막 반쯤 벗은 저 나무들,
  잔잔한 호숫가에서
  혼잣말을 되뇌며 쏟아지는 폭포수,
  이 자그마한 계곡, 네 보금자리를
  감싸 주는 저 고요한 산길,
  실로 너희들은 아름다운 꿈이
  어울려 엮어낸 듯 싶구나.
  세속의 번뇌가 잠들 때면,
  은신처에서 살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형상들이여!
  그러나, 오, 아름다운 소녀야!
  그 흔한 햇빛을 받으면서 이렇듯 성스럽게 빛나는 너.
  비록 환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내 너를 축복해 주마,
  인간의 깊은 가슴으로 축복해 주마,
  마지막 날까지 신이 너를 보호해 주시기를!
  내 너를 모르고, 너의 이웃도 너를 모른다만,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내 멀리 떠날 때
  뜨거운 마음으로 너를 위해 기도를 하리라.
  이토록 지순한 속에서 성숙하며
  인정과 친근미를 주는
  표정, 얼굴을
  일찌기 내 어디서 만났으랴.
  무심히 뿌려진 씨앗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 뿌려진 너,
  그런 네게 짐짓 새침부리고 당황해 하는 표정이며
  처녀스런 수줍음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네 이마에는 산 사람의 자유로움이
  투명하게 씌워져 있다.
  즐거움이 함빡 담긴 얼굴!
  인간의 온정에서 우러나는 포근한 미소!
  당연한 어울림이 있는 그대로
  너의 몸가짐을 지배하는구나.
  네겐 아무 거침이 없다, 다만 네 안에서
  분수처럼 격렬하게 솟구치는
  상념들을, 네 빈약한
  어휘들이 잡지를 못할 뿐.
  훌륭히 견디어 온 멍에,
  네 태도에 우아함과 생기를 주는 투쟁!
  태풍을 사양 않는 새들을 볼 때면
  나는 감동을 떨칠 수 없었지 -
  그렇게 맞바람을 치며 오르는 거다.
  이토록 아름다운 너를 위해
  어떤 손이 꽃다발 엮기를 마다할까!
  오, 이 얼마나 가이없는 기쁨이냐! 
  이곳 히스 관목 무성한 골짜기에서 너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네 소박한 생활을 좇아 살며, 입으머
  나는 양치기, 너는 양치기 소녀!
  그러나 이 엄숙한 현실보다 더한
  한 가지 소망을 너를 위해 이루고 싶다.
  너는 내겐 거친 바다의
  한 줄기 파도, 할 수만 있다면
  네게 원하는게 있다.
  하기야 그건 평범한 이웃의 청에 지나지 않는 것.
  네 목소리를 듣고 너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고싶다.
  이제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이 외딴 곳으로 나를 안내해 준 그 은총을,
  나는 큰 기쁨을 맛보았고, 
  이제 이곳에서 풍요한 보상을 안고 떠난다.
  이런 곳에서라면 우리는
  기억을 존중할 줄 알게 된다.
  기억이 눈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럴진대, 왜 내가 떠나기를 꺼려하는가.
  나는 이곳이 그녀를 위해 마련된 장소임을 느낀다.
  생이 지속되는 한 이 장소는
  지난날과 똑같이 새로운 기쁨을 주리라는 것을.
  아름다운 산 속의 소녀야.
  하여, 나는 기꺼이 흐믓한 마음으로
  너를 떠나련다.
  내 백발에 이르도록
  지금 내 눈앞의 전경을
  똑같이 아름답게 볼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
  저 호수와 계곡과 폭포,
  작은 오두막,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정신인 네 모습까지!
나는 읽기를 끝마쳤다.   
그 시는 마치, 바로 얼마 전까지도 내가 커다란 나뭇잎 잔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받아 마셨던 시원한 샘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