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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21

Joyfule 2010. 9. 3. 14:22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21  
그러나 이제 회상으로 되돌아가자.   
지난날의 생생한 현존으로! 
이틀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행복한 재회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첫날에 나는 수도로부터 마차와 기사들이 도착한 것을 보았다.   
성은 잡다한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깃발들이 지붕위에 펄럭이고 음악이 성의 뜰에서 울렸다.   
저녁이 되자 호수는 즐거운 곤돌라로 활기를 띠었고, 
남자들의 노랫소리가 물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창을 통해 
그 노래에 귀를 모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에도 여전히 북적대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손님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저녁 늦게 나는 궁중 고문관의 마차마저 
혼자 시  를 향해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혼자 있다는 것을, 
그녀도 나를 생각하며 내가 오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악수조차 한 번 않고 이별을 견디었노라고, 
내일 아침은 우리를 깨워 새로운 행복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또 하룻밤을 흘려 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녀의 창문에 불이 켜진 것이 보였다.   
왜 그녀는 혼자 있어야 하는가?   
왜 나는 한순간이라도 그녀의 존재를 느껴서는 안되는가?   
어느 틈에 나는 성에 다가서 있었다.   
그리고 초인종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문득 멈춰서머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니야!   약하게 굴지 말아!   밤도둑처럼 부끄럽게 그녀 앞에 설 테냐?   
내일 아침 일찍, 전장에서 돌아오는 장군처럼 당당하게 그녀 앞에 서는 거다.   
지금 그녀는 그 장군의 머리에 씌워 줄 사랑의 관을 엮고 있을 거다.
아침이 왔고, 나는 그녀에게 갔다 - 실재로 그녀에게 갔다.
오, 육체 없이도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정신을 들먹이지 말라! 
완전한 현존, 완전한 의식, 
완전한 기쁨이란 오로지 정신과 육체가 하나인 곳에만 있을 수 있다.   
육화된 정신, 영화된 육체로만, 육체없는 정신이란 존재치 않는다 - 
그렇다면 그건 한낱 유령일 뿐.   
정신없는 육체란 존재치 않는다 - 
그렇다면 그건 한낱 시체일 뿐.   
들판에 핀 꽃이라고 정신을 갖지 않을까?   
그 꽃은 그 생명과 현존을 부여하고 지켜 주시는 신의 뜻, 
곧 창조주의 생각으로부터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곧 꽃의 정신이다.   
다만, 그 정신이 인간의 경우에는 언어로 나타나는 반면, 
꽃의 경우에는 침묵할 뿐, 
실재하는 삶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삶이요, 
실재하는 향유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향유이다.   
또한 실재하는 만남이란 어디에서든 육체적 정신적 만남인 것이다.
그녀 앞에 서서 실재로 그녀 곁에 있게 되자, 
그토록 행복하게 지냈던 이틀간의 회상의 세계가 
한낱 그림자처럼, 무 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이마, 눈, 뺨을 손으로 감촉해 보며 
그녀가 실재함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밤낮으로 내 앞에 어른거리는 심상이 아니라 엄연한 존재임을.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당연히 나의 것이어야 하며, 
나의 것이고자 원하는 존재임을, 
내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 
나와 동떨어져 있지만 나자신보다 더 가까운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나의 생명은 이미 생명이 아니며
나의 죽음조차 이미 죽음이 아닌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내 가엾은 현존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말 
그 존재를 -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이같은 생각과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 부어지자, 
그 순간이 내 생의 축복으로 충일됨이 느껴졌다. - 
전신에 한 줄기 전율이 흘렀다.   
죽음을 머리에 떠올렸지만, 
이미 죽음에는 아무 공포심도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죽음으로 파괴될 수 없을뿐더러 - 
오히려 죽음을 통해 정화되고 승화되어 
불멸의 것으로 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더불어 침묵하고 있는 시간은 실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영혼의 깊이가 그대로 내비친 그녀의 얼굴 -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내면 깊이 감추어져 
생동하는 모든 것을 듣고 보았다.   
당신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요 라고 그녀는 말하고 싶으면서도 
그 소리를 입밖에 내려 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또 만났지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불평하지 말아요! 
원망도하지 마세요! 
반가와요! 
나한테 화내지 말아요! 
이 모든 말이 그녀의 눈에서 배어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이 행복한 평화를 감히 입을 열어 깰 엄두를 못 내었다.
의사 선생님한테서 편지 못 받으셨나요? 
이 질문이 그녀가 한 첫마디였다.   
한마디씩 말을 이을 때마다 음성이 떨려 나왔다.
아니오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