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증 및 창조과학회 21세기의 비전 (3) |
| 임번삼 명지대학교 외래교수 전 대상그룹 식품당당 대표이사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
I. 우리 문자의 기원설
그러면, 우리 말의 경우는 어떠 할까요? 잘 알려져 있듯이 통일신라 시대에 설총이 한자의 음과 뜻을 따서 간편하게 만든 이두(吏讀)가 향가에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 가나(假名)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집현전(集賢殿) 학자들을 통해 만드신 28자의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비롯된 것임은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훈민정음이 옛 전자(篆宇)를 본받아 만든 것이라고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의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과연 옛 전자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몇 가지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 세종대왕 친제설
이 주장은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본(세종 28년 9월 1O일)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기원설로 확고하게 우리나라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지요. 이 책에 의하면 '초성글자의 기본자는 天.地.人의 3재(三材)를 본 떠 만들었다.' 고 명백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조선조의 제 4대 성군인 세종이 집현전을 개설하고 그 곳에서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의 학자들로 하여금 한자와는 다르면서도 사용하기에 쉽고 간편한 글자(諺文)를 만들도록 하여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세종시대 이전에는 어떠한 형태의 문자도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따르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에 의한 독창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설이지요.
(2) 산스크리트어(梵字) 유래설
조선조의 제9대왕인 성종때 제기된 설인데. 성현이라는 학자는 '용재총화'라는 저서에서 '초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12자의 글자모양은 범자의 글자모양에 기대어 만들었다.' 고 하여 처음으로 범자기원설을 제기하였죠. 그 후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문글자의 모양은 모두 범자를 본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3) 파스파 유래설
파스파문자는 인도계의 티베트문자에서 파생한 것으로 원나라 세조(쿠빌라이)때 훈민정음보다는 170년이 앞서 제정된 것으로 중국 내륙지방에서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조 후기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원(元)의 파스파는 소리글자며 중국글자는 모양을 주로한 글자이므로 우리 언문과 가까운 글은 몽고글자이지 중국글자가 아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실 때 명나라 학사인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어 질문하게 하였는데 13번이나 왕래하게 하였다. 이 때가 원이 망한지 겨우 79년이 지난 때이므로 황찬이 우리나라에 전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몽고글자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유희는 언문지(諺文誌)에서, 또 최근엔 이근수 박사(훈민정음 신연구, PP. 185~192, 1995)가 파스파문자와 훈민정음 두 문자간의 창제배경과 목적이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학자인 레드야드 역시 고전(古篆)의 뜻을 몽고전자(蒙古篆宇) 의 약자로 보고 이것이 곧 파스파문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장한바 있습니다. 본설의 강점은 세종 당시에 잘 알려진 창제문자라는 점, 글자의 모양이 네모꼴로 유사하며, 특히 ㄱ, ㄴ, ㅂ, ㅅ의 모양이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원리와 운용이 비슷한 점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고전(古篆)기원설
전서(篆書)란 BC 3세기경 중국에서 사용하였던 한자의 한 형태인데, 이것을 모델로 하여 한글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정인지의 훈민정음서문, 최만리의 언문창제반대상소문,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등에서 주장되었던 설이지요.
이 밖에도 서장문자기원설, 창호상형(窓戶象形)기원설(에카르트,1928), 太極事象기원설, 거란 여진문자기원설, 일본의 神代文字기원설, 팔리문자기원설 등이 있으나, 이보다는 다음에 소개하는 가림토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있게 대두되고 있으므로 그 개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5) 가림토(加臨土/加臨多文) 유래설
이 설은 고려말 이암(李庵, 1297-1364)이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기록되어 있는 정음(正音) 28자가 가림토문자라는 설입니다. 그리고, 그의 현손인 이백(李佰, 1455-1528)이 중종때 찬수관(撰修官)이 되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에도 가림토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속에는 태백교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逸新考)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군조선의 민족사를 편찬하는 과정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다시 제기가 된 것은 83년 10월에 열렸던 제2회 한국사 학술대회에서 재야 사학자인 안호상 박사 등에 의해서 입니다. 그는 단군세기를 인용하여, 3세 단군인 가륵(嘉勒)이 재위 2년(BC 2181)에 삼랑 을보륵(Z普勒)에게 명하여 正音 38자의 가림토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38자에서 10자를 제외한 28자가 훈민정음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자의 위세에 눌려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으나 일본에서는 신대문자(神代文字)의 일종인 아히루문자(アヒル文字)로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엔 개천학회 회장이었던 송호수 박사(광장,84.1월호)도 세종 이전에도 가림토문자가 이미 존재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BC 2181년이라면 수메르상형이나 이집트상형문자가 있었을뿐 중국의 갑골문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인데 어떻게 음소문자인 가림토가 생겨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요. 더구나, 가림토기원설의 출처인 단군세기(檀君世紀)는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한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이것이 고려말에 쓰여진 이암의 단군세기 원본의 내용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근수 교수는 단군세기 원본에는 가림토의 내용이 없는데 후일에 가필하여 첨가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림토문자는 11-17세기에 중국에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들이 히브리어를 본떠 만들었다는 조철수씨(신동아, 97년5월호, PP.360-381)의 주장과 세종이전, 어쩌면 단군조선 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졌었다는 두 설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Ⅱ. 훈민정음, 가림토문자, 히브리어의 유사성
그러면, 조철수씨의 가림토기원설(신동아, 97년 5월호, PP.360 373)에 대한 개요를 좀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11-17세기에 걸쳐 중국에 거주해 왔던 유대인들이 1489년에 개봉부(開封府)지방에 중국 유태교인 청진교(淸眞敎 또는 桃筋敎)의 예배당인 청진사(淸眞寺 또는 禮拜寺)를 중건하면서 이를 기념하여 세운 한자로 기록한 석비(重建淸 眞寺記)에 의하면 그들은 아담의 19대손인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천축(天竺)에서 하늘의 명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17세기까지도 녕하(寧夏), 운남(雲南), 광동, 북경 등지에 수만명이 중국의 높은 관직에 오르며 살았으나 18세기부터는 그들의 회당터(17m), 비석(4개). 성서두루마리와 기도문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조철수씨의 주장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중국계 유태인이 만들었다는 가림토문자에서 왔으며, 이 가림토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먼저, 자음을 보면, 히브리어는 22자, 가림토는 38자, 훈민정음은 28자 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훈민정음과 가림토의 자음은 서로 닮은 글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서문에서 훈민정음 초성의 음운체계는 5음(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이 기본인데 여기에 반설음, 반치음을 합하여 중국처럼(宋 ; 洪武正韻序) 7음체계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음운체계는 7음이면서도 그 기본은 히브리어처럼 5음체계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의 해설은 성리대전(性理大全), 절운지장도(사마광; 切韻指掌圖,1019-1086)등의 역리에 따라 초성을 풀이했습니다. 즉, 사람의 성음(聲音)을 5행(五行)에 근본을 두고 오음(五音), 사시(四時), 음악의 오음(五音), 방위(方位)등과 관련지어 설명을 한 것입니다. 중국의 오음은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목화토금수)이나 훈민정음은 후아설치순(喉牙舌齒脣: 수목화금토)으로서 히브리의 '창조서'와 그 순서가 일치하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창조서에서도 음운체계를 사방(四方), 사시(四時), 오모음(五母音)등 숫자와 역리로 풀이한다는 것이죠.
히브리어의 음운서인 창조서(쎄페르 예찌라, AD 200-400)는 자음 22개의 신비함을 역리로 해석한 책이라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자음은 BC 3세기에, 모음부호는 AD 9-1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이 창조서중 가온(Saadia Gaon, AD 950-1000)이 편찬한 기도문을 중국내의 유태인들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2장 3절에 22개 히브리 자음에 대한 5음체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개의 기본자는 3모자(母字)와 7복자(復字) 및 12보통자(普通字)로 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 모자는 불(sh; 하늘), 물(mayim; 땅), 바람(avir; 사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셋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그 하나에서 셋을 알고 셋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태백교의 근본철학인 삼일신고의 주장과도 상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 닮은 데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조박사의 이론에 반대하는 이론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창호상형설을 주장했던 에카르트는 히브리문자와 한글의 글자꼴이 완벽히 닮은 것이 아니라 하였고, 권재선 교수는 가림토가 조선조말기에 중국말 표기를 위해 만들어진 한글의 변형체라 했으며, 김정수 교수는 히브리어에서 한글로의 발전과정이 없이 비약한 점이 비논리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이기림; 신동아, PP.376-381,97년 5월호).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문자들이 기본적으로는 중동지방에서 유래하여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데,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수메르문자로부터 이집트상형문자로, 이집트문자에서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그리스와 아람문자로, 그리스문자에서 라틴계와 슬라브계 문자로, 아람문자에서 인도/아리안문자와 시리아, 위글, 몽고, 만주문자 및 아라비아문자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류의 기원은 중동지방에서 출발했으며 그 곳으로부터 인류는 문자의 발달과정에 나타났던 루우트를 따라서 이동해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한자의 기원이 문제가 되는데, 갑골문자의 출현 자체가 BC 1600년경으로 수메르나 이집트문자에 비하면 1700여년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일단은 한자의 기원 역시 중동으로 추리하여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Ⅲ. 한국창조과학회의 비전
창세기에 기초하여 하나님에 의한 천지와 만물의 창조를 믿는 우리 창조과학회의 사명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수주의, 종교, 이념, 학문적 편견 등으로 왜곡되어 온 세계사를 바로 잡고 있었던 그대로의 정사(正史)를 바르게 복원하는 일은 바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과제라 생각합니다. 역사가 정사로 복원될 때 우리 앞에는 하나님을 반역하다 무너져 내린 바벨탑이 나타나 보일 것이며, 그 너머로는 아라랏산에 정박했던 노아의 방주가, 또 그 너머로는 패역했던 인류에게 내리셨던 무시무시한 홍수의 물결이, 선악과를 따먹고 울면서 낙원에서 쫓겨났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이, 그리고, 마침내는 저 웅장했던 천지창조의 장면과 마침내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선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광경을 학문을 통해 바라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며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창조과학회가 앞으로 가져야 할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진화론으로 왜곡된 학문을 바로 잡아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밝힌다.
2) 인간존엄성의 회복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바른 인생관을 갖도록 인도한다.
3) 굴절된 역사를 바르게 복원하여 성경기록의 역사성을 증거한다.
4)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연/인문/사회과학 분야간의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한다.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몇 가지의 구체적인 과제로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검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러한 일은 본 학회와 한국창조사학회가 주관이 되어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더욱 효과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과 창조과학적인 해답제시
2) 저술활동의 활성화(각 전문분과별)
3) 교육계에 커리큘럼 확대
4) 본 학회의 본격적인 학술활동 활성화
5) 창조과학을 통한 선교활동 시도
6) 창조과학관〈자연사박물관)의 건립운영
7) 창조과학 홍보활동의 강화
지금까지 긴 시간을 경청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만 저의 강연을 끝맺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성경과 기독교/고고학과 언어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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