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204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서가를 정리하다가 소설가 최인호씨가 수덕사에 묵으면서 쓴 에세이집을 발견했다. 그가 죽기 몇 년 전 쓴 글 같았다. 아마도 암이 발견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투병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쯤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런 주책없는 늙은이, 위로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전혀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그는 지금은 땅속에서 한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개인의 신비체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개인의 신비체험      그날 저녁 체험은 특이하고 신비했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네비화면이 활짝 켜지더니 어딘가를 안내하고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은 익숙한 곳이라 네비의 안내가 필요 없는 곳이었다. 나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간 곳에서 일을 보고 다시 차에 탔을 때였다. 잠들었던 엔진이 몸을 살짝 떨면서 깨어났다. 네비 화면이 다시 켜지면서 나에게 그가 안내하는데로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오작동일지 몰라 내가 한 목적지 설정을 찾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네비한테 놀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진주에 있는 장례식장을 갔다 밤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네비가 그 부근의 산을 몇 바퀴 빙..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서울 아파트의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동해 바닷가에 마련한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다. 책장에는 내가 읽고 언젠가 또 읽으려고 선정해서 보물같이 보관한 책들이 들어차 있다. 그 책들을 읽고 진한 감동을 받고 인생의 궤도를 바꾼 것 들이다. 이미 몇 차례 가진 책들을 기부하고 그중 중요한 것들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문득 저 책들을 다시 읽기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미 한쪽 눈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다른 쪽 눈은 노안으로 침침하다. 내 눈은 더 이상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밧데리의 한 눈금 같은 내 삶의 남은 에너지도 그 책들을 읽을 용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책들을 하나하나 포기한다. 그리고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의 집짓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의 집짓기     다섯달에 걸친 집짓기가 끝이 났다. 낡은 집을 사서 지붕과 벽체만 남기고 다시 지은 셈이다. 일용잡부와 함께 직접 벽지들을 뜯고 쓰레기를 치웠다. 조적공, 배관공, 타일공, 전기공, 온돌놓는 사람들을 인력센터에서 직접 불러 함께 일을 했다. 시멘트부터 벽돌부터 전등까지 직접 사러 다녔다. 하나하나 유튜브로 배우면서 처음 한 일이라 애를 많이 먹었다. 나이 칠십 가까운 아내도 완전히 속칭 노가다가 됐다. 나는 요즈음 완성된 빈 집에 가서 매일 청소포로 집 전체를 깨끗이 닦는다. 내 손길이 어느 한 부분도 빠진 곳이 없이 닿게 하려고 한다. 소박하게 흰 칠로 마감한 벽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사랑이 스며들게 한다.정직하고 깨끗한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똑똑한 노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똑똑한 노인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서 나이 아흔 살의 점잖게 생긴 노인이 있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젊은 날 꽤 미남이었을 것 같다. 나이답지 않게 눈빛이 총명해 보인다. 그가 말한 대충의 과거는 이랬다. 서울태생의 그는 부유한 집 아들이었다. 명문 학교를 나온 그는 육이오 전쟁 당시 장교로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방송국 생활을 잠시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무역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했을 당시 그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재미교포였다. 그는 당시 서울에 오면 사람들이 존경해 주면서 식당에서 설렁탕 값도 받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나이를 먹고 고향인 한국에서 죽으려고 귀국해 동해 바닷가의 실버타운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곱게 늙어간다는 것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곱게 늙어간다는 것    실버타운에서 이년이 넘게 생활을 했다. 실버타운은 어떻게 늙어갈지를 배운 좋은 교육장이었다고 할까.노인들의 성품도 여러 종류였다. 잘 익은 과일같이 단물이 흐르는 곱게 늙은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말이 없이 조용했다. 온화한 얼굴에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자신의 생일 같은 날이 오면 이웃 노인들에게 떡이나 과일을 돌려 함께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학벌이나 재산이나 지위에 관해서 철저히 침묵했다. 그래도 암암리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들은 겸손한 사람인지를 뒤늦게 알았다.전문직이란 노후에 좋은 직업인 것 같다. 팔십대 중반의 의사 출신 노인이 실버타운에 묵고 있었다. 의원을 개설하고 평생 일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명의 교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명의 교주     어느 날 교도소의 접견실에서였다. 죄수복을 입은 그 신흥종교의 교주가 대기실에서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콧등이 아래로 죽 뻗어있고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신도들은 그를 재림예수라고 믿고 열광했다. 수만의 한국신도들뿐만이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가 기도하던 산 밑에 세웠다는 궁전 같은 곳에 그의 성전에 가 본 적이 있다. 그 궁전에서 왕이었던 그는 감옥의 대기실에서 돋보기를 쓰고 자신에 대한 기소장에 밑줄을 치면서 읽고 있었다.변호사를 하다보면 종교단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의뢰받거나 그 단체가 파열되는 내부 분쟁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가 있었다. 법은 표면에 이는 횡령이나 배임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가수 송창식씨가 화면에서 벙글거리며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부르던 노래 ‘고래사냥’은 우리세대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그가 처참했던 젊은 시절을 얘기하고 있었다.“노숙자생활을 했었어요. 겨울에 너무 추웠어요. 몸에서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찬 공기가 들어오는 게 싫었죠. 그래서 숨을 아주 천천히 쉬는 연습을 했죠. 그게 노래를 부르는 호흡 훈련으로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노숙자일 때 여름에도 겨울옷을 껴입고 다녔죠. 그렇게라도 옷을 가지고 있어야 다시 겨울이 오면 견딜 수 있었으니까. 세시봉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도 거기서 밥을 먹여준다고 하니까 갔어요. 다른 이유가 없었어요.”그는 성공한 대단한 가수다. 어떻게 자기를 저렇..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팥 빵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팥 빵       내가 열살무렵이었다. 동네 골목길에 작은 빵집이 있었다. 빵집 주변은 고소하고 달콤한 공기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냄새에 잡혀 맑고 투명한 진열장을 통해 빵집 주인이 팥빵을 만드는 걸 구경하곤 했다. 빵집 주인은 노릇노릇하게 갓 구워진 빵에 붓으로 달걀의 노른자를 바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빵에서 반짝거리는 윤기가 났다. 갓 구워진 빵을 하나 얻어먹을 때 나는 행복했다. 녹을 듯 부드러운 껍질을 한입 베어 물면 열기가 남아있는 ‘앙꼬’의 상큼한 단맛과 향기가 은은하게 입속에 퍼졌다.중학 입시에서 합격했을 때 엄마는 내게 소원을 물었다. 나는 팥빵을 실컷 먹어보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신설동 로터리에 제과점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팥빵을 사주었다. 아마 열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얼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얼굴         나는 감옥 안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변호사 접견실에서 감옥의 어둠침침한 통로 쪽을 보면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코너를 돌아올 때였다. 나는 그가 어슴푸레한 하얀 빛을 뿜으며 오는 걸 분명히 봤다. 안개 같은 반투명의 하얀 빛이었다. 그게 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어떤 하얀 유체와 썩여있다고 할까. 그는 공과대학교수를 하는 과학자였다. 동시에 항상 기도로 성령을 부르는 목사이기도 했다. 그의 발명품을 노린 사업가가 대형로펌을 동원해 그를 사기범으로 모략했다. 그는 일심에서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신 같은 얘기가 될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서 나오는 신비로운 빛을 보고 그가 결백한 사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별의 기술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이별의 기술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법정에서 판사가 선고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온 변호사였다. 지난 십년 동안 부부 사이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게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부인이었던 사람이 먼저 나가고 나는 가방을 챙겨서 남편과 그 법정을 나왔다. 법원 복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제는 남이 된 여자를 보았다.“잠깐만요”내가 여자을 불렀다.“이제는 모든 싸움이 끝나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됐습니다. 이별의 순간 마지막 인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악수라도 하고 헤어지시는 게 어떨지.”결혼생활의 막이 내렸다. 치열한 권투경기에서도 찢어지고 멍든 얼굴로 상대방과 껴안고 마무리를 한다. 나는 두 사람의 마지막은 진흙탕물이 가라앉길 바라면서 말했다. 여자가 손을 내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친구가 생겼다. 십오년 전에 옥계의 해변가로 내려와 작은 집을 짓고 거기서 시를 쓰며 사는 분이다. 바닷가 산책길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내가 글을 보냈더니 그가 이런 시를 보내왔다.‘석양은 끝도 없이 아름다운데 다만 석양이 너무 가까이 있구나’나이 팔십이 넘은 그의 감상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글이었다. 노년에 만났지만 진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영혼의 친구인 것 같다.또 다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리산 자락에 낡은 집을 구해 십이년간을 참선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며 지내는 분이었다. 그는 차박을 하면서 전국을 흐르기도 한다. 그가 보낸 카톡 내용은 이렇다.‘어떤 남자가 주차장에서 멋진 차를 타려는 순간 노숙자가 다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주는 즐거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주는 즐거움       점심때 동해시의 작은 소머리국밥집에 갔다. 우연히 거기서 같은 실버타운에 있는 아흔다섯살의 노인을 봤다. 간병인과 함께 국밥을 먹고 있었다.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들이를 하러 온 것 같았다. 말이 없으면서도 환하고 밝은 미소가 아름다운 노인이었다. 마음도 넉넉해 보였다. 혼자 살면서 생일에는 떡 한덩어리라도 다른 노인들에게 돌렸다. 나는 갑자기 그 노인에게 밥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올 때 카운터에서 그 노인과 간병인의 밥값을 조용히 치렀다. 기분이 좋았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친구들한테서 짜장면이나 곰탕같은 걸 자주 얻어먹었다. 감사했다. 그렇지만 빚진 것 처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었다. 젊어서는 접대를 하느라고 남에게 밥을 산 적이 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장사꾼 대통령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장사꾼 대통령       몇 년 전 칠월의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어느날이었다. 일이 있어 서울구치소를 갔을 때였다. 우연히 만난 한 교도관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사동의 삼층에 있는데 뜨거운 사우나통 안에 있는 것 같을걸요. 노인이 죽지 않을지 몰라. 슬라브 건물 삼층이 태양열을 직통으로 받아서 불덩어리예요. 예전 같으면 아래층으로 바꾸어 주는데 주변에서 특별대우라고 난리 치니까 이젠 그렇게도 못해요.”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찜통 속에 있는 걸 알았다. 대통령을 그만두고 징역 생활을 하느라고 고생이 심한 것 같았다. 대통령마다 공이 있고 과도 있을 것이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와 능력이 다를 것이다. 정말 잘못한 것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화면 속에서 평론가 김갑수씨가 신랄하게 부패한 교회의 행태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성경의 과학적 역사적 증명의 결여와 논리적 헛점을 지적했다. 영혼이 없는 좀비가 되어 목사를 숭배하는 신도들을 말했다. 그리고 그런 부패를 외면하고 자기만 깨끗하면 되는 것 같이 행동하는 다른 교회와 교인들의 비겁성을 직선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논쟁의 상대방인 고도원씨가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성경을 열심히 말하고 있지만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목사도 거의 말이 없었다. 지성적인 김갑수씨의 말중에 틀린 게 없는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는 교회 사건들을 많이 다루었다. 사이비 이단이라는 단체와도 싸우기도 했다. 성직자들의 성폭행, 횡령, 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