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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결혼을 앞둔 삼십대 남성이 글을 보내왔다. 누구와 결혼해서 어떻게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예뻤으면 좋겠고 집안도 학벌도 직업도 좋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결혼관이 궁금하다고 했다. 정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관념이나 추상이 아닌 내 경험을 조심해서 말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십년이 넘는 기간 결혼생활을 하고 또 변호사로 수많은 이혼소송을 하면서 그들이 금이 가고 깨지는 모습을 보았다.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재벌집 사위로 들어가 후계자가 되는 설정이 더러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신데렐라 같은 신분상승이다. 재벌의 딸은 미모나 학벌 직업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결혼은 어떨까?예쁜 재벌집 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손자의 마음 밭 갈기       “깍두기공책에 시편 23장을 한번 쓰는 데 천원 주마”초등학교 사학년인 손자와 계약을 맺었다. 엄지 도장을 찍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수고하고 받는 돈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상을 심어주려는 할아버지의 의도다. 나는 손자에게 요즈음 내가 시편 23장을 쓰고 있는 공책을 샘플로 보여주면서 덧붙였다.“한 글자 한 글자 할아버지가 쓴 것 같이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대충 쓰면 불량제품이니까 돈을 안 줄거야.”“알았어요, 할아버지 학교 쉬는 시간에 써 볼께요.”손자의 얼굴에 의지가 떠올랐다. 나는 동기유발을 위해 상을 하나 더 걸었다.“시편 23장을 쓰는 게 삼백번째 됐을 때 보너스로 네가 가지고 싶어 하는 아이패드를 사주마.”“감사 감사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떤 여행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떤 여행길       오래전 유럽으로 삼십명 가량이 가는 패키지 관광여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여행이 중반쯤 됐을 무렵이었다. 그 중의 두 남자가 눈에 거슬렸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단체나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날 일정을 마친 후 두 남자가 호텔 로비의 구석에서 잠시 얘기좀 하자고 했다. 그중 한명이 이런 제의를 했다.“내가 여행사에 컴플레인을 하겠습니다. 우리 단체가 단결을 해서 어느날 보이코트를 하면 본사에서 자기네 신용도 있고 하니까 다른 해외여행을 공짜로 할 기회를 주고 무마하려고 할 겁니다. 제가 여행을 많이 해 봐서 압니다. 제가 다른 분들은 다 설득해 놨으니까 그렇게 하시죠.”나는 순간 생각해 보았다. 불평이나 불..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의 돈 쓰는 방법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의 돈 쓰는 방법       칠십년대 중반 강남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포니라는 국산 자동차가 탄생했다. 그 시절 강남에 있는 친구의 열일곱평짜리 아파트를 가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고 깨끗한 변기를 보고 이런 집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나는 재래식 변소에 무너져 가는 낡고 추운 일본식 목조주택에서 컸다. 꿈이 생겼다. ‘열일곱평 아파트와 포니’였다. 그것만 가진다면 으스대며 행복하게 살 것 같았다.그로부터 오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젊은 사람들의 꿈을 들었다.서울에 있는 삼십평대의 아파트에 벤츠 이클래스 정도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빨리 퇴직을 하고 자유롭게 살려면 삼십억원쯤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돈을 만들려면 연봉이 괜찮아도 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순간 순간 몰입하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순간 순간 몰입하기     거리를 걷다 보면 유리창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커피숍을 지나친다. 탁자를 앞에 놓고 마주 앉은 사람들이 대화 없이 각자 자신의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들이 만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각자에게 앞의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그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오래 전이다. 한 모임에서 좌장이 되는 선배가 수시로 핸드폰을 보고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말 한마디 하는둥 마는 둥하고 다시 핸드폰을 들고 뭔가 열심히 써서 보내는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우리들은 관심 밖이거나 무시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같이 있던 친구가 그 선배를 보고 화를 냈다. 선배가 사과했지만 뭔가 찌꺼기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왜 어렵게 시간을 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먼지 덮인 수필집으로 남은 남자       어제 자그마한 댓글 하나를 봤다. 그가 이십대 시절 남산도서관에서 우연히 나의 책을 읽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나의 책이 어떻게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감사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좀 더 깊고 완전한 글을 쓰지 못한 미안함이라고 할까.몇 년 전 법정에서 상대방 변호사와 논쟁을 하는 소송을 하고 나올 때였다. 그 변호사는 젊고 미남이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이런 말을 했다.“저희 아버님이 목사이신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아버님 서재에서 엄 변호사님 책을 봤어요. 오늘 이렇게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그가 공손하게 얘기하면서 책의 제목을 얘기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그 책을 다시 읽어보니 곳곳..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버지 제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버지 제사       내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가는 붓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라고 돌아가신 조상의 지방을 쓰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이 찾아온다는 새벽 한시경 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가느다란 향 연기를 타고 머나먼 곳에서 조상의 영이 찾아와 음식을 드시는 것 같았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우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상이 흠향하시도록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지방문을 태워 그 재를 날렸다. 거기 담겼던 조상이 다시 밤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결혼을 하고 우리 가족은 크리스챤이 됐다. 조상의 기일이 되면 꽃과 십자가를 상 위에 올려놓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한식과 추석이 되면 공원묘지에 있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속을 털어놓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속을 털어놓기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리고 가정환경도 비참했다. 책임지지 못할거면서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소년이었다. 그는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 일년 을 벌어 일 년을 다녔다. 팔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그는 무역업으로 성공했다. 뉴욕과 홍콩 여의도에 부동산을 가진 부자가 됐다. 주로 외국에서 살기 때문에 거의 보지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친구 관계가 옅어지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내가 적극적으로 그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그는 어린 시절 나의 추억이었다. 그나 나나 나이가 어느새 나이 육십대 중반을 넘겼을 때였다. 그가 어떤 아름다운 색깔로 노년의 여백을 채우는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반전의 묘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반전의 묘미       내가 탄 카니발이 좁은 농로를 아슬아슬하게 가고 있었다. 마주 오는 차가 있을 경우 아주 난감할 것 같았다. 옆은 턱이진 논이었다. 교행할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구불구불한 길을 후진해서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런 길을 한 참 간 후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있는 산자락에 쑥색 단층집 이 보였다. 나를 초청한 친구의 집이었다. 크고 작은 돌로 공들여 쌓은 야트막한 돌담 안으로 단아한 건물이었다. 건물 옆으로 늙고 마른 소나무가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곳에 서 친구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고무장화에 완전한 농군이 된 차림이었다. 평생 공직에 있던 그는 퇴직을 한 후 주변에 인가가 없는 양평의 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성공과 승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성공과 승리   기독교 교단의 최고성직자의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정치판과 비슷하게 종교계도 지도자의 스캔들을 만들어 진흙탕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예수는 반역죄로 억울하게 고소당하고 십자가를 졌다. 부처는 여성과의 스캔들이 있는 것처럼 모함을 당했지만 침묵했다. 지금 세상은 침묵하면 긍정이 되는 면이 있다. 교단의 대표인 회장목사는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인 진술에 변호사로서 입회했다. 조사가 끝난 후 회장 목사가 말했다.“사무실까지 차로 모셔다 드릴테니 타시죠.”그를 수행하는 비서 목사가 두 명 있었다. 회장목사 승용차의 운전석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탔다.차가 신설동 로터리 부근을 지날 때 회장목사가 말했다.“우리 교단의 교인이 수백만입니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정사진 속의 표정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영정사진 속의 표정들       어제밤 장례식장을 갔다. 커다란 안내판에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 있었다. 오래전에 잠시 만났던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안내판의 얼굴 중 한 사람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아래 적힌 이름을 보니 그가 맞았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죽은 사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경험을 받는다. 영정사진에서 죽은 영혼이 가지는 느낌을 전달받는다고나 할까. 살아있을 무심히 찍었을 사진에서 죽은 이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는 게 말이 될까.암으로 죽은 두 변호사의 장례식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한 변호사는 안내판 속의 영정사진에서 미소를 짓고 웃고 있었다. 저승길을 가면서 어떤 아쉬움이나 회한이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변호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세 가지 선택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세 가지 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산다는 것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벼운 선택조차 스스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떤 옷을 입을지, 뭘 먹을지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내의 결정에 따랐다. 중대한 선택과 결단 앞에서 나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다.먼저 내 주제를 겸손하게 파악할 것 같다. 누구와는 배우자의 선택이고 무엇을 하며는 직업의 선택이고 어떻게 살까는 인생관의 선택이다.나는 우선 직업 선택의 기준이 잘못됐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이었다.어머니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의사의 본질인 사명감은 생각하지 못..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의 작은 맛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의 작은 맛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를 만났다. 인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 알고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내 나이 어느새 일흔일곱살이야. 마지막 남은 시간을 뭘로 채웠으면 좋을까?”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 분은 수재로 최고의 학벌이었다. 관료로 갈 만큼 갔다. 학자적 자질이 있어 유학을 하고 학위도 땄다. 연구소의 책임자로 있었던 적도 있다. 외형적으로는 이 사회에서 선택받은 극소수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문득 그가 삶의 자잘한 맛들을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작은 기쁨들이 원자 같은 삶의 본질이고 그것들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두 손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두 손님       천구백구십년 늦가을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었다. 퇴근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가 사는 아파트동으로 가려는데 소방차들이 경광등을 번쩍이고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고 있는게 보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동의 계단을 타고 재가 섞인 검은 물이 위에서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동에서 불이 난 것 같았다.“어느 집에서 불이 났습니까?”입구에 서 있는 구경꾼에게 물었다.“육백팔호에서요”‘그게 어느집이더라’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악’하고 소리지를 뻔했다. 바로 우리집이었다. 순간 불에 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나는 용수철 같이 육층으로 튀어 올라갔다. 문이 열려있고 소방관과 경찰관 그리고 구경꾼들로 집안이 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 무대는 연습이 없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 무대는 연습이 없다  잠시 아마츄어로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재연드라마를 활용한 시사프로그램의 사회자 역할이었다. 드라마 속에 잠시 들어가 해설해 주는 역할이었다. 한 프로에서 다섯 장면 정도를 내가 맡았다.그날은 월미도 선착장에서의 촬영이었다. 촬영팀의 이동은 큰 부대의 이동 같았다. 피디와 탈랜트, 스텝진과 엑스트라가 탄 버스가 있고 그 뒤로 크레인 트럭, 조명트럭, 레일등 촬영 도구를 실은 트럭들이 따르고 있었다. 나는 전날 대사를 외우느라고 고생했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다. 에이포 용지 다섯장 정도의 분량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암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백번 정도 반복을 해도 외워지지 않았다. 암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게 입에 달라붙어야 했다.월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