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205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검은 은혜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검은 은혜   기억의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고통의 기억들이 마음속 강물 위를 둥둥 떠내려오고 있다. 마주하는 첫번째 고통의 얼음덩어리 속에는 이십대가 스산하게 저물어갈 무렵의 내가 들어 있었다. 나는 부천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의 맨 뒷좌석에서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짙은 절망감이 검은 안개처럼 온 몸에 퍼지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이 나의 꿈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남들이 대학생이 되어 즐겁게 어울려 놀 때 어둠침침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고시원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사랑대신 야망을 품고 암자의 뒷방에서 뒹굴었다. 더 이상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들판에 홀로 남겨진 허수아비처럼 나만 덩그라니 혼자 남아 지나가는 바람에게 절망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성공의 진짜 비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성공의 진짜 비결   사업을 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고교 동창이 있다. 그의 고급 별장에 동창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사업이 어려운 친구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학문을 하는 친구들의 연구비도 지원하고 사회단체에도 큰돈을 기부하곤 했다. 고등학교시절 그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나는 자그마하던 그가 그냥 모범생이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공인회계사가 되어 대형로펌에 고용되어 일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어느 날 그가 나의 사무실로 놀러 왔다. 격의없이 다가가는 성격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호기심으로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됐어?”​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내적인 자기완성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내적인 자기완성 원로 탈랜트인 정한용과 점심을 먹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친구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바닷가 한적한 실버타운에서 고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걸 실감해. 내가 탈랜트를 하고 또 국회의원을 해서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졌지만 내면은 고독해. 너는 연극배우들이 막이 내린 후에 텅 빈 객석을 보면서 느끼는 공허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뜯을 때 배우들이 막 울기도 한다구. 나도 내 공허를 메꾸기 위해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고 떠들고 그래. 그래도 그 속에서 나는 짙은 외로움을 느끼는 거야”​ 인간의 내면은 겉이 어떻든 보랏빛 노을인 것 같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기차를 타고 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기까지 하고 싶은 일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기까지 하고 싶은 일 화면에 유명한 여성 연극배우가 나와서 앉아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세월에 풍화되는 존재인 것 같다. 죽음을 앞 두고 있는 듯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일주일을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어요. 무대 위의 나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죽기 전에 ‘짠’하고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이어서 그녀는 자신이 연습한 아리랑을 몇 소절 청승맞게 불러제꼈다. 그녀가 덧붙였다.​ “우리 엄마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일해야지’라고 하셨죠.”​ 오래전 소송업무관계로 그녀의 오피스텔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서가에 연극 대본들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새로운 자본주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새로운 자본주의 묵호역 플랫폼 주위는 엷은 어둠이 출렁거렸다. 밤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군데군데 서너명씩 서 있었다. 그들 사이에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공동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그녀가 끼어 있었다. 시골출신인 그녀는 열 살부터 밥을 지어 아버지가 일하는 밭으로 가지고 갔었다고 했다. 그렇게 밥짓는 일과 인연이 되어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평생 밥 짓는 일을 해 왔다는 것이다. 낮에 식당에서 봤었는데 한밤의 플랫폼에서 만나니까 느낌이 다르다. 평소에 입이 무거운 그녀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이십년 전 황량한 묵호의 산골짜기 실버타운으로 와서 밥을 하기 전에는 서울의 충무로에서 작은 밥집을 했었어요. 영화판인 그 동네에는 끼니때 밥을 사 먹을 돈이 없는 배우들이 많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받아들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받아들임 법무장교생활을 같이 한 친구가 있었다. 일주일에 영어소설 한 권씩을 읽는 노력파였다. 그가 낸 번역서도 여러 권 있었다. 그가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그는 갑자기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다. 미세한 기생충알이 뇌수가 흘러내리는 관을 막아 뇌압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뇌수술을 받았다. 뇌수술 후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친구인 그를 데리고 서울대 안과로 갔었다. 안과의사는 실명을 선언했다. 나는 그래도 입원을 시켜서 수술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의사에게 부탁했다. 담당의사는 그를 입원시키면 회복이 가능한 두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섭섭했지만 의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실..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글 빵을 처음 산 손님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글 빵을 처음 산 손님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한 시사잡지로 부터 수필의 원고청탁을 받았다. 나는 고심하며 며칠간 썼다. 문학적인 글은 처음이지만 잘 썼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판결문, 변론문도 써 봤는데 붓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을 못 쓰겠나 싶었다. 며칠간 고심해서 쓴 원고를 가지고 잡지사 편집장에게 갔다. 그가 내 원고를 잠시 훑어보곤 입을 열었다. ​ “저하고 잠깐만 저리로 가시죠”​ 그는 잡지사 구석에 있는 칸막이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가 탁자 위에 나의 원고를 놓더니 의견을 얘기했다.​ “저는 우리 잡지의 귀한 지면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글의 도입 부분을 보니까 공자를 인용하셨네요. 왜 본인만의 것을 담지 않으십니까? 다시 써보시죠.”​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손실위험이 없는 투자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손실위험이 없는 투자 살아오면서 어떤 순간이 즐거웠을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순간적인 연애도 달콤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묵은 된장같이 깊은 맛을 내게 준 것이 책읽기다. 세월 저쪽에 있던 기억 한 장면이 꿈틀거리면서 기어 나오고 있다. 이십대 중반 신촌역 부근의 쪽방에 세 들어 살 때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추리소설에 빠져있었다. 점심 무렵 석유풍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인스턴트 우동을 한 그릇 끓여먹으며 소설을 계속보고 있었다. ​ 죽은 아내의 복수를 한 주인공이 경찰에 쫓겨 골목길로 도망치고 있었다. 감정이입이 된 나는 고독한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오후에 책을 다 읽었다. 비는 계속 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의 벗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의 벗 중학교 삼학년 시절 나는 무기정학을 당했다. 학교의 게시판에 처벌내용이 붙었다. 모범생들만 다닌다고 알려진 당시 명문중학교에서 그런 처분은 명예의 사형선고 비슷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정학기간 동안 어떤 학생도 나를 찾거나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옛날의 선비들의 귀양중의 위리안치(圍籬安置)비슷하다고 할까.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지냈다. 나는 뚜껑이 덮인 깊고 깜깜한 우물 아래 축축한 흙바닥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누군가 뚜껑을 조금 열고 들여다 보아 주기라도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빛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학교의 금지명령을 어기고 나를 찾아와준 친구가 있었다.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무기정학처분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은밀한 기쁨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은밀한 기쁨 내가 아마 아홉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어느날 이웃 항남이네 집으로 갔다. 그 집 아이들 일곱명 바글거렸다. 그 시절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막 한글을 배웠을 때였다. 동네 전봇대에는 ‘생긴대로 다 낳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골목어귀 회벽에 나란히 붙어있던 선거벽보 중에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갈아치자’라는 구호가 지금도 희미하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 좁은 골목 어둠침침한 항남이네 집 안방에는 항남이 엄마와 그 집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방바닥의 작은 도마 위에는 얇은 어묵 한 장과 간장 종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어묵을 보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항남이 엄마는 칼로 예술품을 다루듯..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들의 기본자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우리들의 기본자세 화가 김씨와 박씨는 서로 다른 유파에 속해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해 김씨가 미술대전에 작품을 냈는데 마침 박씨가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박씨는 김씨의 대선배였다. 심사는 막바지에 이르러 마침내 최종심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박씨의 낙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순간인 것이다. 박씨는 문득 김씨의 작품 앞에 멈추어 섰다. 순간 박씨의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 듯 잔뜩 찌푸려지면서 “개새끼”라는 욕을 내뱉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사람들은 김씨가 결국 낙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그를 동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음순간 심사위원장인 박씨는 “개새끼, 그래도 그림 하나는 잘 그린단 말이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김씨의 작품이 입상했음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왜?’라는 질문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왜?’라는 질문 언론이 부장검사와 카지노업자와의 유착관계를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그 검사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재학중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삼십대에 지청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뇌물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레스트랑에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집사람과 친한 호텔 사장 부인이 있었어요.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남편을 알게 됐죠. 부부끼리 같이 나자로 마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종종 밥도 같이 먹었죠. 명절 때 친해진 호텔 사장이 와인 두 병이 든 선물을 보냈는데 거절하기 힘들었어요. 호의로 보냈는데 내가 검사라는 직위를 내세우면서 그걸 돌려보내면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학교폭력의 흉터치유법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학교폭력의 흉터치유법 조선일보에 이십대 여성 사진과 함께 독특한 기사제목이 떴다. ​ 학교폭력과 이를 복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학교폭력의 피해를 당한 뒤 유튜브등을 통해 이를 고발했던 표예림씨가 한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에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습니다 이젠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어요. 삶을 지속해야 할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다’라고 자살을 암시하는 영상을 올렸다. 증오와 보복 그리고 절망이라는 감정이 뒤얽혀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린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중학교 삼학년인 내 손녀는 혹시나?하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나역시 십대에 학교에서 폭력의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우쭐대는 성격의 재..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무기수와 권력가의 용서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무기수와 권력가의 용서 한 무기수로 부터 들은 얘기다. 그는 주먹이 강하고 몸이 날렵해 사채업자의 심복으로 있었다. 감옥 안에서 그를 유난히 괴롭히는 교도관이 있었다. 밤이면 아무도 없는 방에 그를 끌어다 놓고 괴롭혔다. 벽에 밀어 부치고 목을 조르고 쓰러지면 밟고 짓이겼다. 찌는 듯한 한 여름에는 재래식 똥통에 머리를 쳐 박고 있게 했다. 그는 괴롭힘을 당하면서 언젠가는 그를 잔인하게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는 어느 날 작업장에서 쇠톱 조각 하나를 감추어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감방에는 몇 명이 함께 있었다. 그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꾸준히 창에 붙어있는 쇠막대를 조금씩 쇠톱으로 잘랐다. 감방에 있는 다른 죄수들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작업이었다. 감방 벽의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달팽이 인간의 마지막 도착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달팽이 인간의 마지막 도착지 나와 친한 고교선배가 있다. 나이 팔십을 바라보는 그는 컴퓨터의 자판조차 치지 못한다고 했다. 고위직 법관으로 있을 때 비서가 다 해주는 바람에 배우지 못했다고 얼마 전 만난 그 선배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그 나이에 주민센터 컴퓨터 교육반에 등록했어요.아침 열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점심도 먹지 않고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어요.”​ 노인이 하루에 여덟시간 이상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원래 그런 기질이었다. 고시 공부 시절 삼복 더위에 다락방에서 옷을 벗고 공부하다가 궁둥이 살이 뭉개지면서 팬티의 섬유와 뒤섞인 채 굳어져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그는 사법고시 수석합격자였다. 노력뿐 아니라 그는 좋은 머리도 물려받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