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이들의 스승
“게으른 사람아 개미에게 가서 그들이 사는 것을 살펴보고 지혜를 얻어라”(잠6:6)
게으름은 기독교 역사의 오래 전부터 일곱 가지 큰 죄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게으름은 기독교 역사의 오래 전부터 일곱 가지 큰 죄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우선 가장 실용적인 이유에서 게으름이 빈곤을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빈곤에 처한 사람들은 이웃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게으른 사람들은 나누고 주는 자가 아닌, 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고치는 처방의 본으로 개미를 제시합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고치는 처방의 본으로 개미를 제시합니다.
개미의 근면함이 바로 창조주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처음부터 노동의 본을 보이시고 노동을 명하시고 가르치신 분이셨습니다.
창조와 섭리는 그가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고,
그는 첫 사람에게 에덴동산의 경작과 관리를 명하셨습니다.
지혜자는 우리에게 관찰과 학습을 명합니다. 개미를 스승으로 관찰하고 학습하라고 가르칩니다.
지혜자는 우리에게 관찰과 학습을 명합니다. 개미를 스승으로 관찰하고 학습하라고 가르칩니다.
‘살펴봄’은 관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고, 지혜를 얻음은 학습의 결과입니다.
개미는 현재 지형적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입니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절제하고 준비할 줄 아는 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인 개미를 관찰하고 학습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기독교 문명이 꽃피우는 곳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개선하는 긍정적인 기여가 있어왔습니다.
기독교 문명이 꽃피우는 곳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개선하는 긍정적인 기여가 있어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창조주의 뜻을 따른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할 수 없는 인생들을 구제하는 것은 성경적인 덕목이지만,
일 할수 있는 이들에게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약속하는 것은 성경적인 미래가 아닙니다.
기도
주님, 우리 사회가 게으름을 극복하는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
기도
주님, 우리 사회가 게으름을 극복하는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
다시 한번 창조주의 의도를 관찰하고 학습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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