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고치 - 최해숙

Joyfule 2015. 4. 15. 08:29

 

 

2009 평사리 토지문학상 당선작

 

누에고치 

 

고치 - 최해숙


 몸을 흔든다. 허공을 향해 머리를 든 채 기다란 몸을 흔든다. 마지막 잠을 자고 난 누에가 몸을 흐느적거릴 때마다 한을 쏟아내는 듯 긴긴 명주실을 내어놓는다. 망사처럼 엷은 막이 어느새 딱딱한 고치로 변한다. 누에는 자신이 내놓은 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누에를 삼킨 고치를 보고 있자니 오랜 세월 나를 가두고 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 하얀 고치 속에 번데기처럼 몸을 웅크린 내가 있다.

 

 오래전, 중학생이었던 어느 해 여러 달이 지나도록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그 여파가 내게까지 미쳤다. 몇 달을 눈치 공부를 하며 근근이 버텼지만, 집안 형편은 쉬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날마다 육성회비며 준비물 살 돈을 달라고 조르는 동생들을 달래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더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양말 공장에 취직했다.

 

 가정집의 한쪽에 차린 그 공장 안에는 양말을 짜는 기계와 실을 감는 기계가 마주하고 있었다. 초보인 내가 하는 일은 실을 감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낮일이었지만 밤에 쓸 것까지 감아 놓아야 했다. 고되긴 해도 단순한 일이라 바지런히 하면 제 시간에 퇴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기계를 세워야 하는 걱정 때문에 늘 안절부절 해야만 했다. 밤새도록 돌아가는 양말 기계와 실 감는 기계의 피댓줄이 같은 동력 축에 걸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쪽 기계를 멈추게 하려면 전체 전원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계를 멈췄다가 재가동을 하려면 꼬인 실을 손질해야 하니 기계를 맡아보는 기사는 전원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전기를 차단하지 않고 피댓줄을 걷어내는 일은 외줄 타는 곡예만큼이나 간을 졸이게 했다.

 

 그날도 용기를 내어 전기 스위치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기사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냥 줄을 벗기고 가라며 짜증을 냈다. 가슴이 두근두근 마음이 불안했지만, 집에 가기 위해서는 기사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막대를 피댓줄에 갖다 댔다. 금세라도 몸이 빨려 들 것 같았다. 휘익 휘파람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가는 피댓줄을 힘껏 밀쳤지만, 줄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쏠리다 말고 어느새 제자리를 맴돌았다. 입을 앙다물고 다시 막대를 갖다 대는 순간 피댓줄이 내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였지만 너무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금방 벌건 피 뭉텅이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허둥대며 근처 병원을 찾았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을 우왕좌왕 헤매다가 먼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사태파악을 하더니 떨어져 나간 손가락을 찾아오라고 했다. 누군가가 되돌아가서 챙겨왔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려서 신경은 살아 있지 않았다. 어른들은 남아있는 한 마디를 마저 없애는 것이 살아가는데 편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살점 없이 뼈만 남은 한마디라도 온전히 지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처음에는 사태를 깊이 실감할 수 없었다. 상처가 웬만큼 아물어 갈 때쯤 가슴속은 흘러넘치기 직전의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가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은, 나약한 심성의 사춘기 소녀에게는 채 펴지 못한 꿈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 어떤 좋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들은 멀쩡하게 학교도 잘 다니는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과 이어진 끈을 놓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해졌다. 그 유혹이 너무도 강했지만, 상심할 부모님 생각에 삶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안으로 가둔 채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 몸도 마음도 말 할 수 없이 시렸다. 그대로 있다가는 영원히 따스한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질 것만 같았다. 생각 끝에 손가락에 하얀 붕대로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 보호막이 내 시린 마음까지 감싸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나를 제 안에 가두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세상을 활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일에도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다가가기보다 자신을 움츠려 마음을 닫았다. 무얼 배우고 싶어도 손가락 때문에 될까 주저하다가 포기하고, 취직시험에 합격을 하고도 면접을 치를 수 없었다. 언제나 뒷자리, 뒷줄을 택했다. 사는 것이 힘이 들 때면 어리석은 자신을 탓하기보다 애꿎은 손가락을 보며 한탄을 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하는 게 세월이던가. 뒷걸음치는 내게도 인연이 있었던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다. 이제 나약한 사춘기 계집아이인 채로 뒷걸음질만 하며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움츠리고 숨기보다는 당당히 앞으로 나가는 엄마의 모습이어야 했다. 그 절실한 바람만큼 성큼 앞서 갈 수는 없었지만, 한 발 한 발 아이와 함께 걷다보니 몸도 마음도 예전만큼 춥고 어둡지만은 않게 되었다.

 

 오랫동안 나약한 내 심사까지 감싸느라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접근을 꺼렸던 하얀 손가락이 고치를 닮았다. 하지만  누에는 나처럼 제 아픔을 감추려고 고치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겠지. 고치는 누에의 마음을 헤아려 제 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화羽化는 오로지 누에의 몫이기에 담담히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나를 가두었던 그 고치 속에서 나는 어떤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세상을 피해 숨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 갑갑한 고치 속에서 빠져나올 꿈도, 넓은 세상을 비행할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자식이라는, 내가 함께 걸어야 할 꿈을 보았기에 반이나마 탈피를 하지 않았을까.  

 늦었지만 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야문 꿈 하나 품어보련다. 그 꿈이 제대로 영글면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는 고치를 찢고 힘껏 날갯짓을 해보련다. 행여 힘이 부족해서 날 수 없더라도 넓은 세상을 향한 날갯짓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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