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다가 독특한 삶을 발견했다. 꽃집을 하면서 일본어를 번역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돈가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 접시로 고기, 채소, 밥등 영양을 골고루 갖추었고 먹고 나면 든든하다고 했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으라고 한다면 그는 맛과 영양이 있는 ‘돈가스’를 먹겠다고 했다. 그는 블로그에 돈가스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고 돈가스 맛집을 소개하는 책자를 내기도 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인 것 같았다. 뭐 이렇게 아름다운 인생이 있어?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해에도 독특한 미니멀 라이프를 목표로 낭만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작가와 책 공예가가 만나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동해에 정착해서 작은 책방을 하는 경우도 봤다. 남편은 황혼의 빨간 등대나 동해바다의 일출을 예쁜 엽서로 만들어 책방 서가 옆에 진열해 팔기도 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 오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돈가스’라는 음식 하나에 그렇게 매니아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다. 나의 상념은 어느새 오십오년 세월 저쪽으로 순간이동을 해 광화문 뒷골목의 허름한 돈가스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네살인 내가 처음으로 본 ‘돈가스’라는 음식 앞에 앉아 있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쉭쉭 끓는 기름에 바로 튀겨낸 음식이었다. 노릇노릇한 돈가스 표면에는 빵가루들이 튀어나갈 듯 알알이 서 있었다. 소년인 나는 처음 잡아보는 반짝거리는 포크로 돈가스를 고정시키고 나이프로 작게 조각을 냈다. 입에 들어간 돈가스의 껍질은 바삭바삭했고 그 속에서 육즙이 풍부한 고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고기의 독특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하얀 접시의 고기조각들 옆에는 잘게 체 썬 양배추가 분홍색 소스를 덮고 있었다. 아삭거리는 양배추에 고급한 단맛의 소스가 섞여 상큼한 느낌이었다. 으깬 감자와 따뜻한 빵도 있었다. 그 시절 돈가스집 주인 은 밥과 빵 중에 어떤 걸 먹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당연히 빵을 선택했다. 그래야 양식을 제대로 먹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먹어 보는 스프도 신기했다. 흰 접시 바닥에 감질나게 조금 부어진 부드럽고 고소한 스프의 맛을 보면서 마치 천상의 음식을 맛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돈가스는 유년 시절의 질감을 한 단계 높인 음식이었다. 중학시절 어느 추석명절 같은 동네 사는 형과 사먹던 돈가스집 풍경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명절에 개봉한 외국영화 한 편을 보고 거리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을지로 뒷골목의 경양식집으로 갔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의 탁자에 앉아 우리는 점잖게 ‘돈가스’를 시켰다. 잠시 후 흰접시에 풀죽 같은 스프와 돈가스가 나왔다. 우리는 서양영화 속의 화려한 식탁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환상에 빠져 한 단계 업그레이된 느낌이었다고 할까. 서양의 커틀릿이 일본에서 돈가스로 변하고 진화해 왔다. 두꺼운 돈가스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잘라서 밥과 함께 먹는 정식으로 만들었다. 대개가 돈가스 된장국 생양배추 흰쌀밥으로 되어있다.
한국의 돈가스는 돼지등심을 얇게 펴서 튀긴 다음 자르지 않고 그대로 준다. 일본의 된장국이 아니라 미역국, 콩나물국, 어묵복음, 김치등 곁들여 내는 국과 반찬이 다양하다.
정년퇴직을 한 내가 아는 분이 ‘돈가스 집’을 냈었다. 그는 제이의 인생을 ‘돈가스’로 승부를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질 좋은 돼지등심을 밑간을 해서 여러시간 숙성시켜 튀겨냈다. 소스를 찍지 않아도 맛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빵도 직접 굽고 스프도 직접 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한가지 작은 아이템을 잡고 깊이 들어가는 게 요즈음의 경향같이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후포항의 뒷골목에 있는 ‘문어짬뽕’집을 간 적이 있다. 후미진 곳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라도 관광객들이 바글거렸다. 동해에도 젊은 사람들이 문어로 만드는 탕수육집이 성황을 이룬다. 재료가 있는 만큼만 하고 싶은 시간 만큼만 영업을 한다. 전문직도 그렇게 다양해 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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