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때미는 그에게서 초월을 느꼈다.
중동의 사막 지역을 여행하다가 독충에 물려 고생을 한 적이 있다. 피부가 상해 있을 때 뜨거운 온탕에 몸을 담근 후 때를 밀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작은 일상의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가끔 대중목욕탕에서 때를 민다. 습기찬 욕탕 안에서 하루 종일 때를 미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할까.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은 아니라고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죽은 사람을 씻어주는 장의사는 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감사할 지도 모른다. 그런 데 다른 사람의 몸을 닦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러 종류인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독특한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적막감이 흐르는 새벽의 상가에 누군가 커다란 돌을 던져 유리 진열장을 박살내곤 했다. 일정한 기간마다 그 행위는 계속됐다. 마침내 범인이 잡혔다. 그는 평생을 지하의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왔다고 했다. 어둡고 습기찬 공간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았다. 몇 년 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때를 미는 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스트레스를 주는 수치이고 절망이었을까? 그런 의식이 변하는 것 같았다. 강남의 한 대형 목욕탕에서였다. 벽에 ‘달인’이라는 표지와 함께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때를 미는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방송국에서 ‘달인’이라는 칭호를 광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달인’에게 때를 밀어달라고 부탁 했다.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주 능숙했다. 그런데 나의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의 손길에 정성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냥 숙련된 기능공같았다. 언론이 띄워주는 ‘달인’이라는 명칭에 취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동해 바닷가에 있는 실버타운 목욕탕에서 나는 종종 때를 민다. 육십대 후반쯤의 때를 미는 남자는 나름대로 자기의 꼼꼼한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때가 잘 밀릴 수 있도록 탕에 들어가 충분히 몸을 불리게 기다린다. 작업을 시작하면 시간에 상관없이 온몸을 구석구석 차근차근 닦는다. 마치 정성스레 기계를 닦고 면봉으로 손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깨끗하게 하는 성실한 기계공의 손놀림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지막에는 작업대에 누운 사람을 일으켜 앉히고 다시 그 자세에서 등을 또 민다. 샴프로 머리를 감기고 그 다음에는 비누로 세수까지 시켜준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 줄 때는 유년시절 엄마가 세수를 시켜주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에게서 때를 밀 때 나의 피부는 그 정성을 감지한다. 그는 때만 미는 게 아니었다. 목욕탕에서 나오는 산더미 같은 수건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그걸 하나하나 접는다. 목욕탕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탕내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닦아서 쌓아놓았다. 시간이 조금만 나면 실버타운의 쓰레기를 치우고 밭에 나가 감자를 캐기도 한다. 그의 자세에 나는 감동했다. 나는 그에게 한번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어제저녁 어둠이 짙어질 무렵 나는 일을 끝낸 그와 묵호 뒷골목의 작고 허름한 식당에 있었다. 수십년전 사용하던 무쇠 난로가 놓여있고 검은 연탄에서 파란불이 날름거리고 있었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덕에서 두툼한 삼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소주 한잔을 권한 후에 물었다.
“어떻게 나이를 먹고도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합니까?”
그는 때미는 손님이 없는 시간은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기도 했다.
“노동이 나의 수행방법입니다.”
그가 걸쭉하 목소리로 말했다. 대머리에 사무라이 같이 눈썹이 치켜져 올라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무슨 일을 하든 신명이 나면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십여년전부터 여기서 그렇게 일을 해 왔습니다. 새벽에 내 방에서 먼저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순간순간 노인들의 몸을 닦아 주면서 덕을 쌓아 나갑니다.”
신념 내지 종교의 힘은 무서운 것 같다. 똑 같은 일을 하는 데도 세상의 속물적 잣대로 재는 사람은 삶의 비애를 맛보고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초월을 느끼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큰 일을 하려고 한다. 정말 큰 일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 큰 일이란 존재하지 않고 위대한 작은 일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를 보면서 작은 일이 오히려 큰 일일 수 있다는 역설을 깨닫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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