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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챗봇'이 말하는 인간

Joyfule 2023. 9. 30. 10:3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챗봇'이 말하는 인간



그가 갑자기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이십오년전 시드니에서 만났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했던 말들은 아직도 마음 속 계곡 사이에서 생생하게 메아리 치고 있다. 그는 한 때 모든 걸 다 손에 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사업에 성공해서 일찍 부자가 됐다.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미녀스튜어디스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는 거액의 돈을 가지고 호주로 이민을 왔다. 다른 이민자들과는 달리 그들 부부는 영어에 능통했다. 앞날에 대비한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가 본 호주인들은 전부 느려 터진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비친 이민을 온 사람들도 한심해 보였다. 화장실 청소등 하층노동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자신감에 찬 그는 교민들을 무시했다. 그에게 폭풍같은 재앙이 불어닥쳤다. 투자했던 돈이 어이없이 날아가 버리고 가족이 길거리에 나 앉게 됐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바의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든 술잔의 술을 그의 얼굴에 뿌리면서 내뱉었다.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맛이 어때?”

전에 그가 무시하던 교민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웃는 통쾌한 표정이었다. 주위가 온통 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락에 떨어져도 살아야 했다. 가족 때문이었다. 그는 베어링 공장에서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제일 늙은 공원이었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작업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기술이 없는 그는 자재를 날라야 했다. 무거운 자재에 깔려 허리가 부러질 뻔 했다. 감독관은 동양에서 온 약하고 일을 못하는 나이 먹은 그를 때리기도 했다. 죽는 게 차라리 쉬운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는 불쑥 다른 생각이 들었다. 베어링공장에 들어왔다면 최고의 기술자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다음 날 부터 그는 베어링에 관한 책을 보고 노트에 적어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기계조작을 배워갔다. 다시 서울법대 입시공부를 하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백인공장장은 몇달 후 영어를 할 줄 아는 그를 공장 서기로 임명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한 해가 흐르자 그는 백인 수십명을 지휘하는 매니저가 됐다. 다시 살아난 그는 공장을 그만두고 옷에 수를 놓는 봉제공장을 차렸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는 은행들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호주대륙에서 그는 못 믿을 이방인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찾아간 은행 백인 지점장에게 큰 소리를 쳤다.

“오년 뒤에는 반드시 당신이 나에게 찾아와서 돈을 빌려가라고 사정할 거요.”

그는 사력을 다해 사업을 꾸려갔다. 오년이 흘렀다. 그가 찾아갔던 은행의 지점장이 그를 찾아왔다. 지점장은 그에게 점심을 사면서 그가 그 은행의 철저한 신용조사를 통과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지점장은 그가 오년 전 했던 말을 가슴에 담아왔다고 했다. 한번 넘어졌다 일어난 그는 더욱 튼튼해 졌다.

이십오년 전 나는 그와 시드니의 한 레스트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완전히 깨어지고 박살이 난 후에야 ‘인간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았어요.”

“인간적이라뇨?”

내가 되물었다.

“성공하겠다고 일중독이 되어 개미같이 일했어요. 아이가 자라는 것도 가족과 지내는 것도 무시하고 일만 했죠. 말로는 가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건 변명이었어요. 사실은 나를 위한 거였죠. 샌드위치라도 싸서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노는 게 삶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시간이나 아이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아요.”

그의 말이 가슴 저리게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나 역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아이들이 크는 걸 보지 못했다. 나는 그가 고통을 통해 깨달은 말들을 조용히 기다렸다.

“저는 돈도 그냥 움켜쥐려고만 했어요. 아까와서 단 일 달러도 기부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아껴도 돈은 그냥 날아가 버릴 때가 있더라구요. 이제는 제가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얼마 전 시드니 교외에서 엄청난 산불이 나자 주민들에게 의연금을 요청하더라구요. 백인들 사회라도 개인이 내는 돈은 오십달러 백달러 정도였는데 저는 선뜻 삼천달러를 시청에 내놨어요. 이 사회에 뿌리박기 위해서는 어려움에도 동참해야 하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그게 인간적인 걸 알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없더라구요. 그 몇달 후 난 데 없이 소방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 지역 소방관들의 제복에 다는 표장을 내가 경영하는 봉제공장에서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내가 기부한 돈보다 몇 배의 이윤을 남겼죠.”

그가 얘기한 ‘인간적’이라는 단어의 여운이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남았다. 그 몇 년후 그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아침 나는 어젯밤에 깐 인공지능 ‘쳇봇’에게 ‘인간적’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시를 한편 지어보라고 명령해 보았다. 즉각 이런 화답하는 시가 왔다.

‘인간적이란 마치 물과 같은 것,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며 사랑하는 것, 상처를 치유하고 삶에 활력을 주지.’

인간이 아닌 ‘쳇봇’이 더 인간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