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 작은 새의 죽음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간 날 어스름이 끼던 저녁무렵이었다. 시퍼런 동해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고 물결은 차가운 것 같았다. 나는 해안마을 언덕길 한쪽에 작은 스파크를 세워놓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의 겨울은 적막인 것 같았다.
“여보 저게 뭐지?”
옆에 있던 아내가 도로 한 가운데를 보며 말했다. 까치 한 마리가 아스팔트 도로 가운데서 뭔가 작은 물체 위에 올라타 부리로 그걸 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 까치 아래 작은 새가 깔려있네. 까치가 저렇게 자기보다 작은 새를 잡아먹나?”
까치가 부리로 부지런히 깔고 있는 새의 털을 잡아뜯고 있는 것 같았다. 빠진 털뭉치들이 바람에 밀려 길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까치가 죽은 새를 먹는 것은 자연의 청소 아닐까?”
내가 말했다.
“아니야. 깔린 새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시력이 나쁜 나는 까치가 깔고 있는 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주 작은 나무토막 같아 보였다. 움직임도 느낄 수 없었다. 그때였다. 겨울 허공을 날카롭게 가르는 새의 절규 가 들려왔다. 까치가 있는 옆의 전신주 줄에 앉은 작은 새가 까치 발 밑에 있는 새를 보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것 같다고 진작 말하지.”
나는 차 문을 열고 나가 걸어갔다. 나를 본 까치는 놀라서 화들짝 날개를 치면서 허공으로 올랐다.
까치가 떠난 자리에 작은 새가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갈색의 털을 가진 새였다. 목 부분의 털이 다 뽑히고 그 자리에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새는 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이 촛점 없이 앞을 향하고 있었다. 생명력이 이미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구해주기에는 늦었다. 차라리 빨리 죽는 게 새에게는 편안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잠시 후 전기줄에서 절규하던 새가 그 자리로 포르르 내려왔다. 그 새는 부리로 죽어가는 새의 깃털을 물고 어딘가로 옮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죽은 새가 조금씩 도로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자연에 간섭하지 않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해안로에 내가 짓고 있는 집의 문으로 들어갈 때였다. 문 옆 바닥에 어제의 그 새가 죽어있었다. 그 새의 깃털을 물고 옮기려던 다른 새도 포기하고 가버린 것 같았다. 나는 삽을 가지고 그 새를 들고 옆에 있는 교회의 빈 땅에 가서 새를 묻어주고 위에 몇 개의 돌을 덮어주었다. 자연의 법칙대로 그 새가 다른 큰 새의 먹이가 되는 것이 옳은지 내가 묻어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작은 새의 죽음을 보면서 엉뚱하게 몇 년 전 실종된 어린 시절 동네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착한 모범생이었던 그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소박하게 살던 그는 투자사기꾼에게 걸려들어 살아가야 할 돈을 날렸다. 절망한 그는 어느 날 혼자 남해의 작은 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의 수사가 있었다. 그가 섬으로 들어갈 때의 모습이 선착장 씨씨티브이에는 있지만 그 후로는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을을 다 수색한 경찰은 그가 바다로 들어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나는 죽은 그 친구가 까치에게 잡혀 먹는 작은 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상에도 까치 같은 존재가 있고 잡아먹히는 작은 새 같은 존재가 있다. 인간에게 돈은 짐승으로 치면 그 살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겉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나는 가끔 그 영혼들에서 여러 가지 동물들의 모습을 느끼곤 한다. 사기범들에게서 뱀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고 절도범들에게서 쥐의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폭력범에게서는 포학한 개의 혼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반면 사기를 당하거나 얻어맞는 사람들에게서는 토끼나 양의 영혼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나는 왜 새가 새를 잡아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더구나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세상을 허락하는 그 분의 섭리는 더 알 수가 없다. 예언서에 나오는 것 같이 사자가 양과 같이 초원에서 노는 세상이 정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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