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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서를 이해하려면

Joyfule 2024. 1. 28. 22:20

 

 

욥기서를 이해하려면   

 

 

욥기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욥기서의 가장 커다란 핵심은 '신정론'에 관한 문제입니다.
쉽게 이야기 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시고, 이 세상을 주관 하신다면,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저주와 고난은 어찌된 일이며,
악하게 사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은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라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 믿음, 등의 정의에 대해서 먼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성서에서, 특히 욥기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정의는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함에 있어서 어떤 조건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잘믿으면 복 주시기 때문에,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천국에 가기 때문에,,,,,
잘 믿어도 복을 안주신다면,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천국에 갈 수 없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하다면, 만약에 그러한 조건에 기인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조건을 떠난 믿음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뒷바라지를 잘 못해 주셨어도,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와 신뢰를 갖는것이 당연한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완전한 신뢰와 믿음을 갖는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 바로,
욥을 포함한 욥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과응보식 축복신앙관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관은 현대의 신앙인들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몇 천년전에 기록된 욥기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건 사실 놀라운 일이지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단편적인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더욱 귀한 말씀이 되고요.
 

아무튼, 이러한 인과응보식 신앙관을 탈피해서,
제대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런데 정작 위험스러운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과응보식 신앙관을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다른이에게 강요하고, 이해 시키려하고, 심지어는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가지고 있는 특성을 통해서 말입니다.
 

어떤이는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어떤이는 도덕적인 관점을 가지고서...
또 어떤이는 자신의 독선을 가지고 다른이의 의견을 무시한채 우격다짐하면서,
그리고 어떤이는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가지고... 바로 욥의 친구들이 그러했거든요.
 


욥의 친구 중 엘리바스는 신비주의자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기에서는 신비주의가 잘못되었슴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엘리바스가 욥에게 이야기한 신비적인 경험들이 과연 하나님을 통한 계시며 체험이냐,
아니면 자신 스스로의 어떤 환각이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신비로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빌닷과 같은 도덕주의자의 관점도, 소발과 같은 독선주의자의 관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과 윤리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하나님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발처럼 그것이 그르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독선이 마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것인양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책을 읽기 위해서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욥의 세 친구들의 실수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비와 자신의 도덕과 자신의 독선을 가지고, 욥의 내면세계를 외면했던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죄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되는것입니다.(42장 7절)


결론적으로 욥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간단하게 몇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동일하게 사랑하신다는것이고 그 인간 중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은 선한 행위에 대한 조건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것입니다.
선물은 주든지 말든지 주는이의 마음에 달린것이지요,
안 줬다고 해서 마치 빚쟁이가 빚을 독촉하는거처럼, 따질 수는 없는것이지요.
하나님앞에서 똑같이 죄인인 자가, 주제넘게 복받을 기준을 정하는건 참 오버가 아니겠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만난 후 완전한 믿음에 이르기 전에는 바로 이러한 두가지 부분에 대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죄하다고 생각했고, 인과응보식의 축복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일회적이며, 그러한 심판은 바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이러한 몇가지 원칙을 가지고 이해할때, 욥기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부분을 통해서 시나리오를 쓰시고자 하는 부분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대충 살펴보니까 욥의 친구들이 축복신앙관을 가지고
욥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것에 대한 욥의 항변이 대부분인것 같습니다.


17장 같은 경우는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16장에 이은 두번째 답변으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중보에 대한 호소,
그리고 소망이 없는 자신의 삶과 처지에 대한 탄식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9절 말씀인데, 이 9절 말씀은 욥의 신앙관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바로 인과응보식의 축복신앙관입니다.


19장 1~22절까지는 빌닷에 대한 욥의 답변으로, 친구들과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나타냅니다.

34장과 35장은 신학적인 통찰력이 있는 엘리후의 욥에 대한 변론입니다.
엘리후는 오히려 욥보다도 더 하나님을 잘 이해했을 정도로 신학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이해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나하면 그는 욥의 내면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욥이 받은 고난이 죄에 기인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는건 당연한 거지요?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실 몇시간을 두고 이야기 해도 모자란데,
여러가지 여건상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한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기도하시면서 준비하시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