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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내산은 사우디에 있다

Joyfule 2012. 8. 11. 11:07

 

원문출처 : CEO와 영이

지금 기독교계에서는 모세가 출애굽하면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의 위치가 화제입니다.

지금까지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며, 실제로는 사우디 아라비아 북쪽에 있다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김승학씨가 '떨기나무'(두란노)란 책에서 이처럼 놀라운 사실을 수많은 증거 자료와 함께 제시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사서 정독을 했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교계에서 받아들여지던 시내산의 위치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로를 수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해도,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십시오.

위험을 무릅쓴 저자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래 기사는 기독교 전문지에 게재된 저자 김승학씨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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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내산은 사우디에 있다"

 

 

김승학 박애병원 행정원장 주장…"시나이반도 시내산은 가짜"

 

양봉식 sunyang@amennews.com">sunyang@amennews.com

 

   
▲ 김승학 원장이 주장하는, 모세가 친 호렙산 반석이다. 왼쪽 옆으로 김 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 반석은 뒷 쪽에서 찍은 것으로 그 크기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시내산이라고 믿고 순례하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은 시내산이 아닙니다. 진짜 시내산은 사우디 아리비아에 있는 라오즈 산입니다.”

김승학 원장(박애병원 행정원장)의 주장은 그동안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무사산을 시내산이라고 믿고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로마 가톨릭이 정한 시내산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것은 시내산 지경에는 애굽을 탈출한 25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승학 원장이 주장하는 라오즈산은 그런 고민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김승학 원장을 세 번 만나면서 사라졌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김승학 원장이 라오즈산을 탐험하면서 기록한 탐사 이야기를 담은 <떨기나무>(두란노)라는 책 때문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탐정 소설 갈은 이야기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탐독하고 다시 김 원장을 만나야 했다. 그의 책 속에 담긴 것들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궁금했던 것을 인터뷰했다.

- 한국 사람으로서 사우디에 20년 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무엇인가?

   
▲ 김승학 원장이 시내산의 탐사를 기록한 <떨기나무> 책.
“1987년 해외개발공사가 사우디 진출을 희망하는 의료요원들을 선발해 영어 통역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사우디 지잔 파드립 병원에서 최초로 침구과를 운영했다. 당시 나는 침술 전문가였다. 사우디에서는 침 하나로 사람이 병을 고치는 것을 신기해했다. 1988년 제다지역에 있는 제다종합병원에서 침구과를 개설했다. 이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사우디 일간지에서 내가 하는 침술의 우수성을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고 이슬람 메카 주지사(이슬람 총재)였던 마지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어 곧 수술을 할 예정이었는데 내 침술 기사를 보고 혹시 하는 마음에서 나를 찾은 것이다. 침 하나로 하나님은 그의 목 디스크를 낫게 하셨다. 그것이 계기가 돼 왕자 주치의로 2003년까지 지냈다. 그리고 왕자가 간경화로 사망하자 압달라 국왕으로부터 국왕 주치의 제안을 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2006년 8월 3일 출국까지 9차례 더 성지탐사를 하고 모든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귀국했다.”

- 사우디의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생각은 언제 했는가? 라오즈산을 탐험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그 산이 정말 시내산이라고 하면 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사우디 왕실의 왕자 주치의가 되었을 때 솔직히 나는 하나님께서 왕자를 전도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2000년에 왕자의 약제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길에 한국을 잠깐 들렀다.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갔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을 가보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 너무 달라 당혹스러웠다면서 어떤 분으로부터 입수한 테이프를 보여주셨다. 그 비디오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론 와트와 그의 아들이 찍은 <디스커버리>라는 제목의 비디오였다."

-그 비디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가? 조작된 비디오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디오에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반도 방향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라비아 북서부의 홍해 횡단 기념기둥과 진짜 시내산이라는 라오즈산이 금송아지 제단도 촬영되어 있었다. 탐험가인 론 와트는 금송아지 제단에서 없앤 금을 땅에 묻었다는 전설을 믿고 그 보물을 캐기 위해 요르단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에 밀입국했다. 그는 라오즈산을 탐사하다가 출애굽에서 말하는 지형과 너무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찰에 적발당해 모든 자료를 빼앗기고 추방당했다. 1989년의 일이다. 그 이후에 아들과 함께 다시 잠입하여 남긴 것이 비디오테이프였다.”

- 그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된 적이 있는가?
“론 와트는 촬영한 비디오를 영국 BBC 방송국을 통해 방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테이프에 대해 성경학자들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이유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는 그 비디오를 본 뒤로 하나님이 왜 나를 16억 이슬람 지도자인 왕자의 주치의라는 사회적 직분을 주셨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늘 출애굽 기사에서 고민했던 것이 모세는 분명히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오라고 했지만 정작 시내산은 미디안 땅에 있지 않고 시나이반도에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리고 실제로 시나이반도 시내산에 올랐을 때, 그 시내산은 온통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어 25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 앉아 있었을까라는 난감한 기억이 있다.”

- 비디오를 본 뒤에 어떤 일을 시작했는가?

   
   ▲ 성경을 들어 시내산을 설명하는 김승학 원장
“하나님이 분명히 내게 시내산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믿었다. 시내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정밀하고 자세하게 반복해서 보았다. 그리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사우디는 이슬람국가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어떤 서적도 접할 수 없다. 인터넷 웹 사이트로 함부로 검색할 수 없다. 정부는 대형 안테나가 있는 전파 감시국을 통해 전화, 팩스, 무선 교신들을 도청하고, 인터넷 대형 단말기에 감시용 서버를 부착해 섹스, 인권, 타종교와 관련한 사이트 접근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출애굽과 관련한 기독교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왕자의 건강이 악화되어 나는 사우디를 벗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미국 등지를 다닐 수 있었다. 해외에서 왕자를 돌보며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정독하고 시내산이 미디안 땅에 있다는 관련 자료를 모았다. 또한 론 와트 외에 미 특수부대 요원이었던 로버트 코루눅 박사와 아폴로 15호에 동승했던 짐 래리라는 사람이 라오즈산(시내산)을 정탐했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이 사우디에서 강제추방당하고 그 후에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주장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라오즈 산은 언제 가보았는가? 왜 그 산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인가?
“1987년이다. 왕자가 휴가를 가던 때에 나도 휴가를 얻어 첫 탐사를 시작해서 2006년 8월까지 모두 12차례 탐사를 했다. 7년 동안 하나님은 라오즈산을 탐사하도록 하셨다. 그 지역은 군사경계지역으로 왕실의 허가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다. 미사일 기지가 있고 그 정상에서는 이스라엘도 보인다.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고고학 지역을 묶어 놓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돼있다. 첫 탐사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함께했다. 그곳은 낮의 온도가 40도에서 50도가 넘는다. 오랜 동안 준비했지만 첫 탐사부터 우리는 벽에 부딪쳐야 했다. 생전 가보지 못한 지역에 3천키로가 넘는 곳을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곳에는 특수부대, 비밀경찰, 그리고 훈련된 유목민들이 세 겹으로 감시했다. 사막지역이라 차로 움직이면 금방 포착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감기기도 하고 또 왕자 주치의라는 신분을 요긴하게 쓰이도록 하셨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가짜이고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사에서 한번도 현재의 시내산을 의심하지 않았지 않는가?
“지금의 시내산은 기원 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성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시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성스러운 시내산은 찾을 수 없었다. 요세푸스는 성경을 근거로 아라비안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배기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다.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 라오즈 산을 배경으로 바위에 새겨진 많은 암각화 중에 하나다. 김 원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일곱촛대의 그림이다. 밑으로는 고대 히브리문자가 새겨져 있다.
- 그렇지만 기독교도 현재의 산을 시내산이라고 믿고 성지순례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기독교의 고고학자들은 가톨릭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점에서 기독교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내산이라고 부를 만한 산을 찾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나이반도는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침공 당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점령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애굽 땅이다.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해 점령하여 1982년 4월까지 15년 동안 했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은 지금의 시내산(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조상의 흔적을 찾아내고 시나이반도에 시내산이 있었다면 절대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 그렇다면 그들은 어느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 만나를 갈아먹은 맷돌로 보이는 것. 이런 맷돌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시내산은 예전에 애굽 땅이었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산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동안 애굽 땅인 시나이반도를 떠돌아 다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을 떠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의 시내산이 아닌 다른 곳에 시내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 홍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홍해를 건넌 것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존이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에는 결코 홍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여기서부터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홍해는 수심이 1천2백미터나 된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생긴 깊숙한 절벽의 바다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설령 하나님이 그곳을 갈랐다고 해도 건널 수 없다. 1천2백미터나 되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 다시 그 건너편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 홍해 기사를 읽고 그 현장을 갔을 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남께서는 홍해의 한 곳에 바닷길을 내셨다. 그 바닷길은 솔로몬이 자신의 조상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을 기념해서 양편에 기념기둥을 세웠다. 그 곳에는 유일하게 삼각주처럼 모래해변이 12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사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착하도록 했다. 이곳의 바다 수심은 120미터로 경사 6도의 완만한 유일한 바닷길이다. 하나님은 이곳의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가게 하셨다.”

   
▲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다는 홍해, 양 편으로 솔로론 기둥이 서 있고 이곳이 유일하게 수면의 깊이가 120m다. 하나님은 이곳을 가르시고 그의 백성을 건너게 하셨다. 론 와트 탐험가는 이 곳을 뒤져 애굽의 말굽과 병거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솔로몬 기둥이 증거의 전부인가?
“그렇지 않다. 시나이 편에는 기둥이 서 있지만 사우디 쪽에는 깃발만 꽂혀 있다. 사우디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기둥을 잘라 바다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론 와트는 만약 그 지역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곳이라면 바다 속에 그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바다 속을 탐사했다. 그리고 그 바다 속에서 애굽의 말굽과 애굽의 병거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지금 애굽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살았다. 왕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던 그는 애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도 구리와 터키석을 비롯한 광산이 있는 시나이의 시내산(무사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왜냐면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사흘 길을 걸어 누웨이바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홍해를 건넜던 것이다.”

- 라오즈 산을 탐사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자료들은 무엇인가?

   
▲ 성경에는 만나를 맺돌이나 절구에 찧어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라오즈 산 아래서 발견한 돌절구 중 하나다.
“만약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면 성경에 기록한 대로 있어야 할 것을 적어보았다. 엘리야 동굴(열왕기 상 19: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쌓은 지경(출 19:12), 성막을 친 장소(출애굽기 26장), 아론의 금송아지 단(출 32장), 광야 산에 흐르는 물(신 9:21), 모세가 친 므리바 반석 등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라오즈 산을 오르면서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누가 꾸며놓았다고 할 만큼 라오즈 주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라오즈라는 뜻은 아몬드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시내산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더구나 마실 물이 없어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셨다고 했는데 현재 시내산인 호렙산과 르비딤은 거리가 매우 멀다.
“라오즈란 뜻은 바로 아몬드란 뜻이다. 실제로 그 산은 아몬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에 번역된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는 살구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이나 영어 성경은 아몬드 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너무 신기한 일이 아닌가? 라오즈 산을 탐사했을 때 우리는 그 곳에서 호렙산의 반석을 목격했다. 목말라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게 하셨다(출 17:6). 그 반석은 구릉이 있는 가운데 높게 쏟아 있었다. 높이는 8층 높이 정도로 약 22미터 정도였다. 그 반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그 틈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다. 물론 물이 반석에서 솟구쳤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 만큼 바위는 구릉에서 우뚝 서 있었다. 현재 시내산은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성경과 다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이 반석 밑으로 산 단을 발견했다. 그곳은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 한 뒤에 세운 단(출 17:15)이었다. 바로 반석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 다른 흔적에 대해 알고 싶다. 가령 지경이나 이스라엘의 주거 흔적 같은 것이 있었는가?
“물론이다. 그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하나님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이곳을 잘 보존하게 하셨다. 이곳은 바로 7년에서 10년에 한 번 정도 내릴 정도로 메말라 있다. 이곳에 사는 유목민들 스스로가 이곳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나간 곳이라고 말한다. 라오즈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암각화들이 그려져 있다. 고대 히브리문자는 물론 이집트의 각종 신들의 형상도 있다. 또한 만나를 갈아먹거나 찧어 먹기 위해 사용된 수많은 맷돌과 돌절구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나도 그곳에서 맷돌과 절구를 가져왔다. 홍해를 바라보는 쪽으로 지경이 넓게 쌓여 있다. 또한 천막을 친 주거 형태의 돌이 당시 그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천막을 친 주거흔적으로 보이는 것. 김 원장이 천막 입구에 출입문을 표시한 곳에 서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곳에서 천막을 세우고 돌들을 천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고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그대로 천막만 거두었다. 이런 주거 흔적이 너무 많다고 한다.
- 이번 자료들과 라오즈산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하다.
“라오즈에 대한 자료들은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자료를 처음 한국에 공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한 교수를 만났을 때 내게 ‘아직도 출애굽을 믿고 있느냐’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일부 자료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보냈다. 그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기존의 성지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보지 못한 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들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라오즈 산에서 아론의 금송아지 재단도 보았다. 또 그곳의 지명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명이었으며 성경과 일치했다. 미디안 땅, 그리고 모세의 장인의 집인 이드로의 집도 가 보았다. 명백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경이롭게 보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