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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벧세메스 (Beth-shemesh)

Joyfule 2016. 3. 5. 23:50

 

텔 벧세메스 (Beth-shem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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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세메스(Beth-shmesh)    (출처- http://blog.naver.com/sincerestar/120071061127)


히브리어로 태양의 집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서남쪽 약 25㎞ 지점에 있으며 고대에 아이셈스(태양의 샘), 사마슈(태양신) 숭배가 행해져 이 지명을 갖게 됐다.블레셋 사람들이 에그론에서 돌려보낸 법궤를 이곳으로 가져왔을 때 주민들이 불평해 벌을 받았으며,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유다왕 아마샤를 사로잡은 곳이다.최근 발굴된 도자기로 보아 주전 2000∼600년에 주민이 살았으며 견고한 요새였지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 당시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올리브와 포도의 즙을 짜는 기계들이 발견되어지는 이곳은 이스라엘 시대에 염색업과 주조업이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7,8세기 유물로 여호야긴의 신하 엘리아김의 인장이 찍힌 항아리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벧세메스는 유다 지파와 단 지파가 맞닿아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성경은 이를 유다 지파에게 속한 곳으로 보기도 하고(수 15:10), 단 지파에게 할당된 곳으로 보기도 한다(수 19:41).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주어졌다(수 21:16). 엘리 대제사장이 실로에서 섬기고 있을 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언약궤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다. 블레셋 족속은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두었지만, 하나님께서 다곤 신상은 물론 아스돗 주민을 심판하시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그리고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겼다(삼상 5장).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으로 두려움에 빠진 블레셋 족속은 결국 언약궤를 되돌려보내기로 결정했는데, 그 방법은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 나는 소 두 마리가 끌게 해서 곧바로 벧세메스로 가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자신들을 심판하신 것으로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젖 나는 암소 두 마리는 새끼를 물리친 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직행해서 블레셋 족속의 성읍들에 내린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입증했다(삼상 6:1-18). 언약궤를 인계받은 벧세메스 주민들은 언약궤를 들여다보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였으며, 결국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졌다(삼상 6:19-7:2). 블레셋 족속이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보낸 것은 그 성읍이 사무엘 시대에 유다 지파와 블레셋 족속의 접경 성읍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시대에 벧세메스는 솔로몬 왕의 두 번째 행정구역이 되었다(왕상 4:9). 분열왕국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이곳에서 남유다 왕 아마샤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했다(왕하 14:11-14; 대하 25:17-24). 남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벧세메스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다(대하 28:18).

 

법궤 운반과정


법궤는 맨 처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모세의 주관하에 시내산에서 만들어졌다(주전 1446년). 이후 광야 40여년의 유랑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정복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스라엘의 본영인 '길갈'에 안치됐다. 7년여에 걸친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그 땅을 12지파에 분배할 시기에 법궤는 '실로'로 옮겨졌다(수 18:1). 이후 법궤는 사사시대 말엽인 엘리 시대까지 300년 이상 실로의 회막에 안치돼 있었다. 그러던 중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갔다가 블레셋에 빼앗겨 7개월 동안 블레셋 땅을 전전했다(삼상 6:1). 결국 법궤를 감당치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냈는데, 돌려진 법궤는 처음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 땅의 아비나답의 집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삼상 7:1, 주전 1075년). 그로부터 70여년이 흐른 후,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 왕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1차 운반의 실패로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두었고, 3개월 후 2차로 시도해 마침내 법궤를 다윗 성으로 운반했다(주전 1003년).

 

벧세메스와 소렉골짜기

 

텔  벧세메스(Beth-shmesh)

 

 벧세메스, 멀리 중앙 튀어나온곳이 삼손의 고향          (출처- http://blog.daum.net/past50/955455)

 

텔 벧세메스          (출처- http://blog.naver.com/sincerestar/120071061127)

 

12세기 고대 인장

 

텔아비브 연구팀이 텔 벧세메스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한 12세기 인장으로 삼손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와 사자가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인장의 크기는 약 15mm이다.

 

텔 벧세메스

 

텔  벧세메스(Beth-shmesh), 삼손의 무덤 정상                (출처- http://blog.naver.com/panem/70137866660)

                       

삼손의 무덤(가묘) 정상                           (출처- http://blog.naver.com/panem/70137866660)

 

삼손의 무덤(가묘) 정상                           (출처- http://blog.naver.com/panem/70137866660)

 

삼손의 무덤(가묘) 정상                           (출처- http://blog.naver.com/panem/70137866660)